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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기억을 백업해드립니다. 트위터를 잠시 접기 위해 백업하면서 내 기억들도 백업하고 싶더라. 언제라도 꺼내볼 수 있게 밀봉을 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편하게 잊고 새로 시작할 수 있을텐데. 나쁜 기억과 추억이 뒤범벅이 되어 지금처럼 괴롭히진 않을텐데. 혹시나 잃을까 혹시나 잊을까 하는 두려움에 조심스레 꺼내보는 습관들이 사라질텐데. 타임캡슐처럼 지금까지의 기억을 모두 압축하여 그 타임캡슐의 위치만 기억하고 모두 잊고 새로 시작할 수 있다면 좋겠다. 내가 남기고 싶은 기억은 용량이 얼마나 될까. 더보기
망각 초등학생들이 기숙사 식당에 단체로 왔다. 식당 앞 마당에서 웃고 뛰고 돌 위에 오른다. 그들의 의식은 명료하며 어른의 그것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나는 그 시절의 기억들을 떠올릴 수 없다. 사진처럼 기억의 파편들이 남아있을 뿐이다. 어차피 거의 다 잊을 것이라면 유년시절은 왜 필요할까. 저기 웃고 뛰고 돌 위에 오르며 노는 시간들은 기억되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주 일부분만 기억된다면 왜 아팠던 기억들이 즐거웠던 기억들보다 더 남아있을까. 왜 각인은 그런 기억들에만 남을까. 지금의 시간은 글로 남기기 떄문에 언젠간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시간들은 왜 필요한 걸까. 왜 모든 걸 기억할 수 없으면서 전생애를 살아야할까. 기억할 수 있는 파편화된 시간들만 압축하여.. 더보기
심장이 멈췄다고 죽은 건 아니다.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질 때, 그 사람은 죽은 것이다. (2005년 1월 작성) 인생이란 결국 우리가 현재에 느끼는 감각 인상들과 그 감각 인상들이 남긴 기억과 기억의 재조합인 상상으로 환원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뇌가 정지하게 되면, 그 사람의 인생은 끝이 나는 게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니, 인생이 너무 허무한 것 같았다. 재작년 같은 반 친구가 세상을 떠난 후, 반 애들끼리 모인 술자리가 있었다. 대화를 나누던 중 한 친구가 사람은 모두의 기억에서 잊혀질 때, 진짜로 죽은 것이라는 말을 하였다. 아마, 술 자리에서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 얘기가 많이 나오지 않은 것에 섭섭했던 모양이었다. 그 땐 그냥 끄덕여줬던 말이, 갑자기 생각났다. 그리고 우리의 뇌가 정지하게 된다 해도, 인생은 끝이 나는게 아니라고 생각을 바꿨다. 인생이 정말 감각 인상들의 집합일 뿐이라 할 때, 자신의 .. 더보기
아주 오랜 엊그제 만들기 아래글은 스팸뮤직을 통해 썼던 글이다. 노래 신청 부분은 지우고, 실명 거론 부분도 지우고, 일부 문단의 순서를 수정했다. ::::::::::::::::::::::::::::::::::::::::::::::::::::::::::::::::::::::::::::::::::::::::::::::::::::::::::::::::::::::::::::::::::::::::::::::::::::::::::::::::::::::::::::::: 일정한 간격으로 고동을 치다가 가끔씩 빨라지기도 하면서 심장은 계속 펌프질을 합니다. 그리고 그 리듬이 끝이 나면 뇌 속의 기억들은 휘발되어버리고 '나'는 없어집니다. 마치 아주 긴 변주곡이 끝을 맺듯이 리듬이 끝남과 동시에 생도 끝이 납니다. 가슴에 잠시 손을 얹고 그 음.. 더보기
사진이 기억을 독재하다 사진이 발명되기 전까지 기억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었다. 자신의 변하는 모습이란 상상할 수 없었고, 화가에게 그림을 맡길 수 있는 귀족들이나 늙어가는 모습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역치 이하의 변화되는 이미지는 기억이 담아내지 못했다. 희미해지는 기억을 붙잡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고, 뿌연 꿈 속의 장면이 되었다. 대신 기억은 공정했다. 인상적인 장면은 기억에 오래 남고, 일상적인 일은 추상적인 기억으로, 의미없는 시간들은 망각의 배수구로 빨려나갔다. 첫경험, 충격정도, 감정상태, 그 일의 중요성, 당시의 신경생리상태, 기억의 회상 횟수, 연상의 용이함 등에 따라 기억의 선명함은 결정된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사진의 기억 독재 속에 살고 있다. 사진의 그 완벽한 선명성은 어떤 기억도 뛰어 넘을 수 없다. 사.. 더보기
사진과 기억의 주객전도 '스위트피' 3집의 '사진 속의 우리'라는 노래의 클라이막스 부분 가사는 이렇다. "사진 속의 넌 이렇게 웃고 있는데 웃고 있지만 뭐가 그리도 좋은지 난 아무런 어떤 기억도" 기억은 부서지고 흐려지고 덮어진다. 자폐증 환자 중 일부가 비정상적인 기억력이 있는 걸 보면, 지금보다 훨씬 더 자세히 그리고 오랫동안 기억하는 능력을 갖출 수 있었을텐데도 인간은 그렇게 진화하지 않았다. 기억은 왜곡되고 잊혀지고 선택된다. 그래서 사진이라는 보조 기억을 통해 지난 날을 회상하고 기억을 유지한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현실 속에서 순간을 찍어낸 사진은 정지된 기억을 준다. 시간이 흘러서 기억이 점점 희미해 질 때, 사진으로 기억을 보충하려 하고 잊혀지는 기억을 사진에 의지하다 보면 결국 그 순간의 살아있던 기억은 사라지.. 더보기
걱정 말란다.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고, 그래서 헤어져도 헤어진 것 같지 않다. 떨어져 있는 것과 헤어지는 것의 차이점이라고 하면 마음의 변화일 것인데, 지갑 속 사진도 그대로고, 웹 상의 흔적들도 그대로고, 표면상으론 달라진 것이 없다. 그래서 오늘 다시 한번 그런 상상을 했다. 이 기억들이 사실은 존재하지 않았던 환상이지 않을까 하고. 매번 열등감과 자학에 시달리던 내가, 그 고통을 견뎌내기 위해 자폐적으로 만들어낸 꿈은 아닐런지. 그런데 진짜로 그렇다면 너무 슬프겠지. '사랑둥이'(그사람이 만들어줬던 인형)이 그건 아니니 걱정 말란다.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더보기
파도 망각의 파도가 치면, 모래에 쓴 아픔의 기억들도 스러져버리겠지 더보기
보조 기억 상실증 그동안 내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 outlook에 정리해 놓았던 쪽지들이 통째로 날아가버렸다. 서버에 있는 메시지들을 하드 디스크로 옮기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다. 일을 배울 때 마다 처리 절차를 정리해 놓았는데, 그 양이 적지 않았다. 이런 일이 한 번 있고 나면 모든 일에 대한 의욕이 떨어진다. 다시 살려보려고 휴지통을 기웃 거리고, 원시적인 믿음을 가지고 컴퓨터를 껐다 켜보기도 한다. 그러나 도려낸 파일은 이미 가루가 되버리고 없다. 물론 검찰들이나 쓰는 방법으로 도려낸 자리에 음각의 판화를 하여 복구할 수는 있겠지만, 그러려면 목보다 목젖이 더 크다. 사실 이런 일은 누구나 한번씩은 겪는다. 제때제때 저장을 안 시켰다가 리포트의 일부를 날린다거나, 실컷 블로그나 카페에 글 쓰다가 뒤로 버튼을 잘.. 더보기
습관이라는 굳은살 너무나도 일상적인 일은 내가 하고도 기억을 못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열쇠를 잠궜나, 가스 밸브를 잠궜나 하는 걱정들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평소 습관대로 해놓고 기억을 못한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를 다닐 때, 한참 길을 가다가 깜짝 놀랜 적이 있다. 교복바지로 안 갈아입고, 잠옷을 입고 나온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가슴이 철렁하면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나도 모르게 교복 바지를 입고 있었다. 나는 정말 기억이 없는데 말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자주 있었다. 군대에 와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수고하십시오'라는 인사를 했는지, 관등성명을 댔는지 기억이 안 나서 조마조마할 때가 많다. 그런데 이건 원 교복바지처럼 확인할 수도 없다. 관등성명을 댔는지 물어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 앞의 경우.. 더보기
오늘의 내가 전부라면.. 예전에 이런 상상을 한 적이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기억은 사실 하루밤 사이에 외계인이 와서 주입시켜 놓은 게 아닐까라는. 설사 엄마 뱃속에서의 나이를 합해 스물 셋을 살았다는 기억이 감쪽같은 속임수에 불과하다고 할지라도 그걸 알아 낼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가족들, 주위 친구들을 통해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것이다. (트루먼쇼처럼 이 모든 것이 다 나를 위해 꾸며진 공간이고 등장하는 사람도 모두 나를 위해 연기하는 것이고, 뇌는 사실 어딘가에 둥둥 떠 있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극단적인 관념론 내지, 환상론까지 가고 싶진 않다. 다만 나는 기억이 하룻밤 사이에 주입되었다 하더라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라는 가정일 뿐.) 오늘은 저녁이 될 때까지 집에 혼자 있었다. 11시쯤에 .. 더보기
기억 어떤 일은 그 일을 기억할 때마다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어떤 일은 그 때의 특별한 감정만이 기억으로 남는다. 더보기
세상이 지금보다 두배 컸을 때 워드 검정 시험을 치려면 상공회의소를 가야 된다. 상공회의소를 타려면 5번 버스를 타야 된다. 5번 버스는 이전에 살던 곳 망미동을 지나 상공회의소에 도착한다. 지금은 조각나버린 13살까지의 기억들을 이루는 망미동이다. 간간히 꿈속에 등장하여, 몽환적인 느낌으로 기억되는 그곳이다. 시험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그곳에 들렸다. 꿈속에 나왔던 몽환적인 거리를 직접 하나하나 확인해보고 싶었다. 처음 나를 당황하게 했던건, 눈 앞에 보였던 골목길들이 내 기억속의 그 길보다, 훨씬 좁았다는 것이다. 내가 그 때보다 두배 커진 만큼 세상은 반으로 줄어 있었다. 살던 집에서부터 무한히 넓은 운동장으로 기억되던 초등학교까지, 그리고 어렸을 적부터 궁금했고, 꿈속에선 미지로 숨겨진 높은 언덕까지 둘러보았다. 아주 오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