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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기억의 주객전도

'스위트피' 3집의 '사진 속의 우리'라는 노래의 클라이막스 부분 가사는 이렇다.


"사진 속의 넌 이렇게 웃고 있는데 웃고 있지만
뭐가 그리도 좋은지 난 아무런 어떤 기억도"


기억은 부서지고 흐려지고 덮어진다.
자폐증 환자 중 일부가 비정상적인 기억력이 있는 걸 보면, 지금보다 훨씬 더 자세히 그리고 오랫동안 기억하는 능력을 갖출 수 있었을텐데도 인간은 그렇게 진화하지 않았다.
기억은 왜곡되고 잊혀지고 선택된다.

그래서 사진이라는 보조 기억을 통해 지난 날을 회상하고 기억을 유지한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현실 속에서 순간을 찍어낸 사진은 정지된 기억을 준다.
시간이 흘러서 기억이 점점 희미해 질 때, 사진으로 기억을 보충하려 하고 잊혀지는 기억을 사진에 의지하다 보면 결국 그 순간의 살아있던 기억은 사라지고 사진만 남게 된다. 사진 속의 장면들이 내가 겪었던 장면들이고, 사진 속의 표정들이 내가 지었던 표정들이다. 차라리 사진을 찍지 않았다면 기억은 공평하게 분배되었겠지만, 사진이 남아 있는 경우에는 그 사진을 중심으로 기억이 재구성된다.

대부분의 사진은 행복한 장면을 담는다. 슬펐던 때, 싸웠던 일, 헤어지는 순간은 사진으로 담지 않는다. 그런 순간에 기억을 보조한답시고 사진을 찍으면 얼마나 웃기겠는가.

지나간 기억의 사진을 보면 볼수록 현실간의 괴리감에 더 우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