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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앗

충격의 전부 사람에 대한 충격이 나의 전부였다 득실대는 사람들에 그 가볍지 않은 무게 하나하나가 지하철 문 안으로 구겨 넣어질 때 가볍지 않은 인생들의 압축을 보았다 사람에 대한 충격이 전부였다 네가 나타났을 때 너의 손을 잡았을 때 그리고 네가 처음으로 카페에서 먼저 일어났을 때 가볍디 가벼운 애정의 압축을 보았다 사람에 대한 충격 뿐이었다 나라는 존재의 가벼움에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의 무거움에 그럼에도 아직 살아있음에 매일 아침이 충격이었다 네가 살아있음에 그럼에도 만날 수 없음에 하루하루가 기다림의 압축이었다 더보기
2012년 1월 이십 몇 일 비틀비틀 지하철이 나를 흔들고 처음엔 목이 마르고 다음엔 몸이 마르고 잊고 있었던 하지만 여전히 나를 잇고 있었던 네 손길 이건 떠오르는대로 체 건져 올린 도시의 기억들 거절의 순간보다 더 떨렸던 건 아무 말이 없던 우리 둘 사이를 가르던 시간 더보기
송광사에서 봄에는 꽃이 피고 가을에는 달이 밝네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 겨울에는 흰 눈 부질없는 일로 가슴 졸이지 않으면 인간의 좋은 시절 바로 그것이니라 -순천 송광사 '이 달의 선시', 무문선사 시 중- :::::::::::::::::::::::::::::::::::::::::::::::::::::::::::::::::::::::::::::::::::::::: 얼음 위의 돌 사람소리 아랑곳 않네 봄이 오면 묵언 수행을 끝내고 열반에 들리라 더보기
작금의 정신상태, 장마의 개막에 즈음한 구름의 각질들이 땅에 내린다 가장 가장자리에 자리한 각질들부터 떨어져내린다 가벼워진 구름은 때를 벗겨낸 마음으로 목욕재계한다 잘 갖추어진 하수도 시설로 굴러 떨어져간 구름의 세포들은 영문만 모른 채 땅의 그림자 밑에서 시냇물 소리로 흘러간다 가장 뒤늦게 떨어져 나온 각질들은 대기 중에 기화하여 기괴한 냄새가 되고 땀이 되고 땀냄새가 된다 그 냄새는 다시 액체가 되고 물이 되고 구름 비슷한 것이 된다 장마는 만남이다 아주 오랜 만남 부비고 부벼서 격렬하게 각질들은 떨어져 나온다 잠이 오지만 잠이 들지 않는 밤에 잠을 들었다 놨다 괴롭힌다 옛날 집의 모기 핏자국이라도 그리워해야 미쳐버리지 않을 밤의 시작이다 더보기
무한 권력의 사진사 그는 권력자다. 모두가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순간에도, 총수의 말을 듣는 순간에도, 그는 자유로이 돌아다닌다. 국가주의와 관료주의는 그에게 돈벌이를 위한 모델일 뿐. 그는 과감하게 단상에 선 권력자를 향해 빛의 투망을 던진다. 누구도 그 앞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 엄숙한 순간에 더 자유로워지는, 어떤 권력자도 그의 앞에선 웃게 만드는 그가 진정한 권력자다. 더보기
먼지가 된다 먼지를 쓴다 방안의 먼지를 쓸어낸다 먼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쌓인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더 소복히 쌓인다 먼지는 벽에서 온다 가장자리의 힘없는 분자 덩어리들이 떨어져 나온다 몸에서도 떨어져 나온다 죽어버린 각질들이 낙엽 떨어지듯 소리없이 떨어진다 먼지는 신발에서도 떨어진다 파인 홈으로 땅의 부스러기들이 박힌다 그래서 방안의 먼지 속에는 내가 사는 곳의 경계와 내 육체의 국경과 내가 걸어온 길이 가루진다 나의 자취를 쓸어 담는다 그 무엇의 가장 약했던 경계들의 모임 미련 없이 탁탁 털어 휴지통에 비우고 미처 남아있는 시간들을 걸레로 닦아냈다 물을 머금은 기억들을 배수구로 씻어낸다 별 일 아니다 보이지 않는 안 쪽 경계에서 떨어져 나온 문장일 뿐이다 더보기
무제 눈은 두 개라 물체의 원근을 잴 수 있고 귀도 두 개라 소리의 좌우를 느낄 수 있는데 이 놈의 하나 뿐인 심장은 그것도 한쪽으로 치우친 이 심장은 너와 나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먼지도 알지 못한 채 마냥 이렇게 너를 담아 두고 있다 더보기
짝사랑 두 사람이 함께 한 일이 한 명에겐 추억이 되고 다른 한 사람에겐 기억이 되는 것 더보기
메마른 감정의 자국을 걸레로 닦아내며 바람도 이전같지 않습니다 사람도 예전같지 않습니다 술을 담그듯 오래가는 감정은 더이상 없습니다 공장에서 찍어낸 화학으로 만든 술처럼 연예전략서에 쓰여진 글처럼 감정의 선혈은 더 이상 없습니다 적응해 가는거라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모든게 내탓이라 말하기 쉽지 않습니다 치워지지 않은 책상 위 지우개 가루를 보며 그렇게 찌꺼기만 남아버린 감정을 느끼기 보단 기술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보기
동정 어딘가 낯이 많이 익다 전생에 연이 있었나 기억의 파편인가 세상의 슬픔을 다 쥐고 산다는 듯한 표정 그러나 결국 자기 고민일 것이다 애써 무관심 척 하고 싶지만 굴러가는 눈을 돌릴 수 없다 절대 사랑할 수 없는 연민이 느껴진다 거울 속 그 남자 더보기
당신을 사랑한 죄인 환상이라는 감옥속에 갇혀 현실이라는 교도관의 감시를 받으며 꿈이라는 배식을 받고 평생을 무기징역으로 살아가는 자 더보기
Guard Force 오늘도 구름이 태양을 가려줄까 기대해 봤지만 결국 그 많던 구름을 다 태워버리고야 만다 천사가 버리고 간 날개까지 태워버리고 시간은 어디론가 도망간 아침에 오늘도 빈 껍데기 총을 들어야 했다 잔인한 태양은 땅을 마르게 하고 내 몸은 젖게 만든다 에라 모르겠다 이것도 선(禪)이다 그냥 퍼질러 서서 생각의 물이나 길으자 .... 정오 가지 끝에 앉아 합장을 하고 명상을 하는 나비에게 말을 걸어보지만 타다 남은 구름만 바람에 날릴 뿐이다 언젠간 내가 흘린 땀이 저기 구름이 되는 날도 더보기
나무 새는 나무를 찾아온다 소리없이 반가운 나무는 지저귀는 새의 소리에 혹시나 혹여나 해보지만 그 새 또한 이내 떠나 버릴 것을 뿌리깊이 알고있다 새에겐 그저 잠시 쉴 곳이 필요했을 뿐 그러나 그것만이라도 고맙다 먹을 것을 주고 보금자리를 내주고 그러나 그냥 떠나버리는 새이지만 그것 만으로도 고맙다 그것이 자신의 운명이라는 사실 또한 뿌리깊게 알고 있기에 더보기
Starry Night 얘야 신은 밤이 되면 하늘을 까만 보자기로 씌운단다 그리고 저기 반짝이는 것들은 보자기에 붙어 있는 먼지일 뿐이지 우주는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니란다 더보기
2007년 3월 23일 겨울 옷을 입고 밖에 나갔다 봄이 땀을 통해 스며 들어왔다 이만리 넘어 타국에 소포를 붙이고 겉 옷을 벗었다 날 닮아 소심한 소포가 물어물어 잘 도착 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달라진 공기를 다시 한 번 들이쉬고 들이 쉰 공기를 다시 뎁혀 내뱉었다 아무리 봄이라지만 내 숨보다 따뜻하랴 아파트 샛길 입구에 지키고 서 있는 목련이 벌써 지려 한다 흰 봄은 가고 샛노란 봄이 찾아 올 것이다 내 숨보다 따뜻한 분홍빛 봄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