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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하루하루가 랜덤이라면 페이스북 뜨는 "나는 OOO였다면 누구?"와 같은 어플들은 근거가 없는 거야 당연하거고 알고리즘조차 만들지 않고 그냥 랜덤하게 나오도록 한 성의 없는 어플들이 많다 . 어차피 재미로 보는 거기 때문에 그걸 알면서도 클릭하고 마음에 드는 것이 나오면 좋아하며 게시한다. 우리의 선택과 훗날의 미래가 그 어플처럼 랜덤하게 정해지는 것들이라면 어떨까. 인과관계나 노력 보상 따위는 없고 다음 날의 하루는 랜덤한 조건에서 다시 시작하는 그런 인생. 그런 인생이 더 낫겠다 생각하는 건 지금의 한발 한발이 힙겹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노력 보상 체계가 무너져 버린 것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도 재밌을 것 같다. iLife shuffle 같은 게 있다면. 더보기
삶, 메모. 이방인에서 드러내는 삶의 부조리. 무의미성. 쉽게 말해 우리 삶엔 목적이 없다는 것. 신을 믿지 않는다면 존재의 의미는 없다. 진화의 과정에서 발생된 존재, 멋진 절경을 가진 바위와 하등 다를 게 없는 존재. 본질적으로 무의미하다. 흔히 기독교에서 말하는 '소명'이라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자유롭다. 그러나 진화가 남긴 제약조건 때문에 그리 자유롭지도 않다. 더보기
기투(project)된 존재? "기투project는 현재를 넘어서 미래를 향해 자기를 "던지는" 인간 실존의 존재 방식을 의미하는 말로서, 하이데거 존재론의 중요한 개념이자 또한 사르트르 실존주의 철학의 기본을 이루는 개념이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한편으로 인간은 자신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이 세상 속에 "던져진" 존재, 즉 피투된 존재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인간은 미래를 향해 스스로를 "던짐으로써"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존재, 즉 기투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러한 피투와 기투는 사르트르의 인간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그 어떤 이유도 없이 이 세상에 피투된 존재, 따라서 본래적이라고 할 만한 그 어떤 본질도 없는 "부조리한" 존재이기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인간은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존재이다. 즉 그의 말을.. 더보기
오답노트 - 머리말 고등학교 때 온 에너지를 쏟아 공부를 할 때도 오답노트는 거의 쓰지 않았다. 수학은 오답노트가 도움이 많이 된다고 해서 만든 적이 있지만 10페이지를 넘거지 않고 끝이 났다. 귀찮았다. 만약 귀찮음을 극복하고 오답노트에 적힌 내용을 여러번 반복해서 본다면 한 번 틀린 문제를 또 틀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당시 나는 오답노트 대신 그게 필요없을 정도로 반복해서 문제를 많이 풀었다. 오답노트를 썼다면 더 효율적인 공부가 되었을 지도 모르지만 어찌됐든 결과적으로 오답노트의 필요성을 느끼지는 않았다. 오답노트가 진짜 필요한 것은 수학문제보다 삶에서의 선택이다. 기록. 그 많은 인문학 고전들이 삶의 오답노트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중대한 선택이라면 오답노트를 쓴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과거로 돌아갈 순 없기 때문.. 더보기
찰나의 인생 (<무지개를 풀며> 메모) 깨달았다고 일컬어지는 자들은 자아란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는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마치 영혼과 같은 것이 존재해 살아있다고 느끼는 것은 환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에 존재하라고 한다. 그들은 자아를 부정하지만 삶은 부정하지 않으며, 현재에 존재할 수 있다면 삶은 축복이라고 얘기한다. 리처드 도킨스는 삶을 어떻게 아름답게 설명할까. 그가 실제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과학적인 사고로도 충분히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1장에서 그는 우리가 얼마나 행운아인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억 세기 전보다 지구는 노쇠했다. 얼마 안 있으면 태양이 거대한 붉은 덩어리가 되어 지구를 집어삼킬 것이다. 이전의 수억 세대와 앞의 모든 시간들은 '현세'로.. 더보기
극도의 허무감 자연은 무심하다. 어떤 이에게는 지독히 냉정할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공평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인간의 생각일 뿐, 자연은 무심하다는 말도 의미가 없을 정도로 단지 그냥 존재할 뿐이다. 거기에 정의가 있을 필요도, 공평함이 있을 필요도 없으며, 자비는 더더욱이고 조화라는 것도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다. 존재할 확률이 높은 것들이 존재할 뿐, 그게 전부다. 나는 남들과 다를 거라는 생각은 첫째 그것이 아마 착각이기 때문에 의미가 없으며, 둘째 설사 그 생각이 맞더라도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무의미하다. 그 지독한 무의미와 허무함이 쾌락을 쫓는데 온 정력을 쏟게 하거나 현실을 도피하거나 초월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 어떤 발버둥도 세상을 바꿀 순 없고 잠시 존재하다 사라질 것이다.. 더보기
생기일 살 때는 난 날을 기억하고 죽은 뒤엔 간 날을 기억한다 더보기
양치기 소년 이야기의 주인공은 마을 사람들이다. (2005년 4월 작성) 어느 마을 거짓말 잘 하는 양치기 소년.. 양치기 소년에 속은 마을사람들.. 마을사람들의 불신으로 늑대에게 양을 잃은 소년.. 봄 가을.. 세월이 지나가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양치기 소년의 입장 일때보다 마을사람들의 입장일 때가 인생에선 훨씬 많다. 사람에 속고, 사랑에 속고, 자기자신에게 속고, 속을 줄 알면서도, 또 속고.. 그러다 학습된 무기력으로.. 이젠 진짜 기회가 와도, 진짜 사랑이 찾아와도 알아채지 못할 것 같다.. 주인공의 정의를 우리가 감정이입을 하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인물로 생각한다면, 마을 사람들이 주인공이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더보기
심장이 멈췄다고 죽은 건 아니다.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질 때, 그 사람은 죽은 것이다. (2005년 1월 작성) 인생이란 결국 우리가 현재에 느끼는 감각 인상들과 그 감각 인상들이 남긴 기억과 기억의 재조합인 상상으로 환원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뇌가 정지하게 되면, 그 사람의 인생은 끝이 나는 게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니, 인생이 너무 허무한 것 같았다. 재작년 같은 반 친구가 세상을 떠난 후, 반 애들끼리 모인 술자리가 있었다. 대화를 나누던 중 한 친구가 사람은 모두의 기억에서 잊혀질 때, 진짜로 죽은 것이라는 말을 하였다. 아마, 술 자리에서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 얘기가 많이 나오지 않은 것에 섭섭했던 모양이었다. 그 땐 그냥 끄덕여줬던 말이, 갑자기 생각났다. 그리고 우리의 뇌가 정지하게 된다 해도, 인생은 끝이 나는게 아니라고 생각을 바꿨다. 인생이 정말 감각 인상들의 집합일 뿐이라 할 때, 자신의 .. 더보기
인생이 한 권의 시집이 된다면 대부분의 시집의 제목은 그 시집 속의 시 한 편의 제목을 딴다. 한순간 한순간의 사진처럼 동영상처럼 그러나 사실 김서린 유리창에 찍은 손자국처럼 인상의 자국들을 기억한다. 제목이 될 인상은 나에겐 어떤 기억일까. 어느 창에 찍은 손자국일까. 더보기
자신의 일생을 두시간짜리 영화로 만든다면? 아래글은 '스팸뮤직'으로 보냈던 글을 수정한 것이다. 음악에 관한 부분과 부대 사람들에 관한 부분은 편집하였다. =========================================================================================== 제 1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르네'라는 작품을 봤습니다. 한 사람의 37년 인생 중 20년을 직접 촬영하여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르네는 교도소를 밥먹듯이 드나드는 사람인데, 그럼에도 똑똑함과 영민함으로 책까지 냅니다. 르네의 독특함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20년 동안 한 사람을 영화를 위해 촬영했다는 것, 그 자체가 대단하고 의미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한 사람의 인생을 영화로 만드는 것은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보는 것 같습니.. 더보기
남기고 싶은 것은 유전자 만이 아니다. 유전자 하나만 남겨놓아도 될텐데, 우리는 유전자 이외의 다른 것들도 남기고 싶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다. 그것이 어떻게 유전자의 생존에 유리함을 줬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뭔가를 끊임없이 남기려 한다. 자기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으려 한다. 무엇이라도 남겨두고 싶다. 누군가의 기억속에서 점점 사라져간다는 것은 고통스럽고, 존재감이 없어진다는 것은 존재하기 위해 태어난 우리들에게 가장 큰 상처로 다가온다. 미움보다 더 큰 상처가 된다. 누군가의 기억속에서, 컴퓨터 웹 속 어딘가에서 나는 나를 남기려 한다. 그 지독한 집착은 블로그를 만들었다. 블로그는 에고의 결정체이다. '나'라는 공간을 만들고, '나'의 시간들을 기록하고, '나' 그 자체로 인식한다. 만약 어떤 이유로 이 블로그의 글들의 일부가 날아가거나,.. 더보기
내 좌우명, 그리고 인생의 목적 1. 어제 지원대장님으로부터 네 좌우명은 뭐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이전부터 머리속에 넣고 다니던 좌우명을 말했다. "최고보다 최초가 되자." 입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나는 좌우명이 없다. 위의 저 문장은 한 번도 실천해본적이 없다. 겁많은 내가 무슨 새로운 도전을 해봤겠는가. 저 좌우명은 뭔가 나도 좌우명이 있긴 있어야겠고(어제처럼 누가 물으면 대답할 수 있게), 그러다 어느 날 저 문장이 생각이 났고, 그냥 저걸로 하기로 했다. 날치기 통과. 그리고 뻔하긴 하지만, 나름 그럴싸한 좌우명의 이유도 생각해놓았다. 누군가 왜 그걸 좌우명으로 했느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작정이다. "최고는 항상 변하지만, 최초는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상황에 따라 불필요한 말을 덧붙인다면, "저는 최.. 더보기
나이를 먹는 것은 가능성을 하나씩 잃어가는 것 누구나 어렸을 땐 유망주이다. 누구나 어렸을 땐 가능성(potential)을 지니고 있다. 물론 그 잠재력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러나 그것은 알 수 없다. 시간은 돈과 같은 교환 가치이다. 우리는 우리의 가능성(potential)을 팔아, 시간을 산다. 그리고 그 시간을 이용해 그 가능성을 더 이상 '가능성'이 아닌 '가능'으로 바꾸어 간다. 그러나 그렇게 가능성을 팔아서 얻은 시간을 흥청망청 써버린다면, 나는 해낼 수 있는 존재도,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존재도 아니게 될 것이다.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택권을 벗어나 끊임없이 우리의 가능성(potential)을 판다. 가능성을 잃고 '가능'을 얻을 것이냐. 가능성을 잃고 그대로 끝일 것이냐는 우리의 선택이다. 조심해야 할 것이 .. 더보기
링 밖의 삶 (2005년 11월 15일 작성) 누군가가 세상은 프로레슬링과 비슷하다고 했지. 그럴 듯 해보이지만 사실은 쇼라고, 그렇지만 쇼라해서 안 아픈건 아니라고, 과장된 행동으로, 과장된 감정으로 참는 거라고, 규칙이란 것이 있지만, 암묵적으로 반칙이 허용되고, 그 와중에 승자와 패자가 결정된다고. 사실.. 링 밖의 세상도 링 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