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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일생을 두시간짜리 영화로 만든다면?



아래글은 '스팸뮤직'으로 보냈던 글을 수정한 것이다. 음악에 관한 부분과 부대 사람들에 관한 부분은 편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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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르네'라는 작품을 봤습니다. 한 사람의 37년 인생 중 20년을 직접 촬영하여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르네는 교도소를 밥먹듯이 드나드는 사람인데, 그럼에도 똑똑함과 영민함으로 책까지 냅니다. 르네의 독특함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20년 동안 한 사람을 영화를 위해 촬영했다는 것, 그 자체가 대단하고 의미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한 사람의 인생을 영화로 만드는 것은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보는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예전부터 내 인생을 영화로 만들면 어떤 장면들이 필름을 차지할까 궁금했습니다. 영화 '트루먼쇼'처럼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사실 다 나를 위해 존재하는 조연들이고, 곳곳에 있는 카메라가 나를 여러 방면으로 촬영하고 있고, 흐릿하게 재구성 된 기억이 아닌 또렷한 화질로 내 인생이 남겨질 거라는 상상도 했습니다.

각자의 인생을 영화로 만든다면 어떤 영화가 만들어 질 지 생각해보는 것은 재밌습니다. 위대한 정치인의 일생도 아니고, 음악가의 일생도 아닌 나 자신의 일생을 영화로 만든다는 것. 생각만해도 설레지 않습니까? 개개인의 영화에서는 당연히 자신이 주인공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설사 가족일지라도 영화의 배경이 되고, 서사를 만들어가는 조연들입니다. 우리는 모두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영화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지금 한 순간 한 순간이 나중 두시간 짜리 영화를 위해 촬영되고 있는 것이라 상상해 봅시다. (나중에 연기자가 재연하는 영화가 아니라 말입니다.)

두시간짜리 영화 속에 얼마나 많은 조연이 출연할 것 같습니까. 가족, 절친한 친구, 간절했던 애인 그 외에 몇명이나 포함될 것 같습니까. 단체씬에서 잠깐 모습을 보일 친구도 있을 것이고, '그 이후로도 X명의 애인을 만났다'는 자막속에만 표현될 헤어진 애인도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자신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영화에 엑스트라로라도 출연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이 친구의 영화에는 비중있는 인물로 나오겠지 생각했지만 목소리도 안 나올 수 있고, 예상치 못한 인물의 영화에 나올 수도 있습니다. 한 사람이 애인과 헤어지고 질질 짜면서 길을 걸어갈 때가 있었다면, 그리고 자신이 우연히 지나가다 어깨가 부딪쳤다면 그 사람의 영화에 엑스트라로 출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단 1초라도 출연할 수 있는 친구가 몇명이나 되는 것 같습니까.

영화를 만든다면 대부분의 날들은 통편집 될 것입니다. 제 영화에선 아마 어제도 통편집 됐을 것입니다. 오늘도 별일이 없다면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군생활은 제 인생에서 몇분이나 나올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하루에 얼마나 의미있는 일들을 하며 잠자리에 듭니까.

우리의 인생 영화의 장르는 멜로, 코미디, 액션, 범죄 스릴러, 에로 포함하지 않는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럼 그 복합적 장르 속에서 어떤 영화를 만들고 계신 것 같습니까. 우여곡절의 기막힌 서사의 영화? 대사 없이 이미지로 설명하는 영화? 반전이 있는 것도 감동적인 대사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잔잔하게 마음을 울리는 영화? 아니면 그냥 무미건조하게 현실을 표현한 영화?

어떤 것도 좋습니다.
그 어떤 삶도 본인에게는 평범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어떤 장면도 편집하기 아까울 것입니다.
 
모든 인생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삶만 가지고 두시간 영화를 만든다면 앞으로의 인생은 여운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영화를 볼 때는 언제나 궁금하던 그 뒷이야기, 어쩌면 너무 많은 걸 알려주지 말아야 여운이 오래 남는 영화의 특성처럼, 남은 인생도 그렇게 베일에 싸여진 채 있기에 더 기대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