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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년만에 개안수술을 한 맹인에 관한 연구

태어날 때부터 맹인인 사람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볼까. 그리고 그가 눈을 떴을 때 세상은 자신이 인지하던 것과 어떻게 다를까.

아래 글은 맹인으로 태어나 살다 52년만에 개안수술을 한 환자 S. B. 에 관한 내용을 축약한 것이다.


 R. L. Gregory가 그의 동료와 연구한 개안수술을 한 어른의 경우를 살펴보자(Gregory, 1972). 환자 S. B.는 맹인으로 52세에 안구 기증에 의해 개안 수술을 하게 되었다. 그는 개안을 시술한 의사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는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얼굴을 돌렸다. 그러나 그는 의사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의사의 얼굴이 눈의 망막에 비추어지고 이 정보가 시각중추로 제대로 가는데도 불구하고 대상을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며칠이 지나면서 그는 대상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상한 현상들이 나타났다. (1) 그는 높은 층의 병실에 있으면서도 창문으로 몸을 내리면 자신의 발이 바로 땅에 달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만져 보지 않고는 거리 추정이 잘 안 되는 것이었다. 그는 하늘의 달을 보고는 매우 놀라워했다. 달이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창문에 어떤 물체가 반사된 것으로 생각했고, (2) 달이 반달(quartermoon)이었는데 'quartermoon'은 케이크를 열심자로 4등분한 모양의 달로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또한 대상들을 그림으로 그리라고 했을 때, 이전에 맹인으로서 촉감을 통해 알지 못했던 것은 그리기 힘들어했다. (3) 촉감을 통해서 과거에 경험하지 않은 것은 통합된 지식의 표현으로 잘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밝은 색깔을 좋아했고, 건물이나 물건들의 페인트 색깔이 바래거나 흠집이 있거나 하는 것에 대해 정서적으로 참지 못하는 반응을 보였다. (4) 그는 세상 대상의 색깔들이 자기가 맹인으로서 생각했던 것보다 산뜻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맹인으로서 자기가 놓쳤던 일 등에 대한 생각으로 점차 우울증에 빠졌고, 결국 개안 후 3년 만에 우울증으로 사망했다. (이정모 외, 2009: 42)


 단 한 사람의 사례만으로 맹인들이 어떻게 시각적으로 인지를 하는지 단정할 순 없다. 그래도 겉을 햝아보자.


 (1) 그의 사례를 통해 깊이지각은 선천적으로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촉각과 시각의 연합에 의해서 거리에 대한 지각은 가능해지며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경험을 통해 두려움을 획득한다. Gibson과 Walker의 시각벼랑 실험에 따르면 깊이지각은 생후 6개월 경에 생기는 것으로 보인다. 영아가 길 수 있게 되면서 넘어지거나 떨어지는 경험을 통해 깊이지각을 획득하는 것으로 보인다. 같은 또래라도 길 수 있는 영아가 높은 곳에서 더 두려움을 느끼는 것을 확인한 실험 결과가 있다 (정옥분, 2009: 210-211). 개안 수술한 맹인의 경우를 통해서도 깊이지각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촉각과 시각의 연합이 필수적임을 확인할 수 있다.


(2) 한번도 quartermoon이 무엇인지 보지 못한 사람으로서는 케이크를 사등분 한 모양이었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게 오히려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처음부터 quartermoon이 무엇인지 알고 그 단어를 습득한 사람은 그런 상상을 할 수 없지 않았을까. 꼭 맹인이 아니더라도 어떤 것인지 모르고 배운 단어들은 갖가지 상상의 산물을 만든다. 그것이 오히려 기발할 때도 있다. 


(3) S.B. 는 손으로 만져볼 수 없었던 것들은 그림으로 그려낼 수 없었다. 시각을 획득한 후 그것들을 볼 수 있음에도 그림 속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촉감을 통해서 경험하지 않으면 눈에 보이더라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왜 그러한지에 대해서는 <인지심리학>의 뒷부분을 더 읽으면 나올지 모르겠다. 촉감을 통해서 한 번 형성된 지식은 다른 감각을 통해 보완되더라도 이미 강력하게 형성되어 수정할 수가 없는 것일까. 처음 지식화할 때의 순서가 중요한 것일까.


(4) 세상이 더 산뜻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그의 성격 때문일 수 있다. 그는 맹인일 때는 매우 활동적인 사람이었다. 실제보다 더 선명하게 상상함을 맹인들의 일반적인 특징이라고 단정할 순 없다. 재미있는 점은 색을 어떻게 상상하고 있었느냐다. 그는 빨간색을 빨간색으로 상상하고 있었을까 (물론 맹인이 아닌 사람들이 빨간색을 모두 같은 색으로 보고 있느냐 또한 확신할 수 없다). 빨간색을 맹인에게 설명해 줄 때 불의 따뜻함이라고 설명해주었다면 맹인이 그 말을 듣고 상상한 빨간색은 실제의 빨간색과 같았을까. 궁금하다.




 *참고서적

  1. 이정모 외, <인지심리학>, 학지사, 2009
  2. 정옥분, <발달심리학>, 학지사, 2009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