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휴가기간이다.
휴가를 나가기 며칠 전부터 휴가 때 뭐할지를 생각해봤는데,
항상 외박을 나가기 때문에 외박 때는 할 수 없는 무언가를 하고 싶었고,
편히 쉬면서 미뤄왔던 일들을 하나씩 끌어안으려고 했다.
친구들과 만나면서 술 먹는데 돈을 쓰고 싶진 않았고, (이건 외박 때도 할 수 있으니까)
혼자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고 싶어서 깨작깨작 견적도 내보고 그랬다.
그러던 찰나에 친구가 지난달에 못 간 제주도를 이번 달에 가자고 그랬고,
옳다거니, 다른 모든 계획을 취소하고 제주도를 가려고 했다.
그런데 제주도에 가기로 했던 계획이 배편으로 말미암아 물거품이 되면서 계획의 전면 수정이 필요했다.
우선 휴가의 주제를 설정했고, 세부적인 계획을 문서로까지 만들어 인쇄까지 했다. -_-
지금까지는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는 중이다.
미뤄왔던 일들을 끌어안았고, 집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계획대로 해가고 있다.
(다만, 연락처까지 닫아 놓고 극단적인 대인기피노선을 걷고 있다는 게 문제인데, 만날 얼굴 보는 친구가 불편해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름의 사정이 있다.)
휴가 동안 할 일 중에 돈 버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도 있었다. 요즘 돈을 벌고 싶다는 갈망이 심장을 강하게 펌프질하고 있다. 물론 군인으로서의 월급을 받고 있긴 하지만, 완전한 경제 독립을 희망한다. 현재는 군대 월급과 집에서 매달 주는 용돈으로 생활하고 있다. 그런데 해가 지날수록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인 독립을 해야 한다는 압박은 배로 커진다.
경제적인 의존은 독립적인 의사결정권을 가져다줄 수 없다. 경제적인 것을 보장해주는 사람과 그것을 받는 사람은 어떠한 형식으로든 지배와 종속의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회사와 회사원의 관계는 당연하고, 용돈을 주고받는 부모-자식 관계, (겉치레일지라도) 직원과 손님의 관계도 돈을 지급해주는 쪽과 받는 쪽에 따라 결정권이 나뉜다. 내가 만약 경제적으로 완벽히 독립할 수 있다면, 그리고 오히려 내가 용돈을 주는 상황이라면, 부모님과의 사이에서 나 자신의 목소리는 훨씬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군대라는 조직을 보면 이 경제적 종속의 양상이 아주 재미있게 드러나는데, 내가 속한 부대를 일반화시킬 수는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두며 예를 들겠다.
선임과 후임이 바깥에 밥을 먹으러 가면, 보통 선임은 후임에게 밥을 사주고, 후임은 물을 떠 오고 수저를 정리해서 놓아둔다든지 뒤치다꺼리를 한다. 군대에서 선임과 후임과의 사이는 법적인 종속 관계가 아니다. 분대장을 제외한 병사가 다른 병사에게 명령, 강요를 할 수 없다. 다만, 연공서열을 뜻하는 '짬'이라는 군대에서의 관습적인 상징자본(?)이 선임에게 훨씬 우월한 의사 결정권과 권력을 가질 수 있게 한다. ("선임이 까라면 까야지."라는 말은 선임의 절대적인 의사 결정권을 뜻한다) 그런데 이것이 법적 강제력이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속한 부대는 타 육군부대만큼 선임에 대한 복종을 과도하게 강요하지는 않기 때문에 후임이 선임의 말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법적인 근거도 관습적인 제약도 비교적 약하다. 그렇지만, 선임이 돈을 지불한다는 또 다른 관습이 경제적인 종속을 만들고, 이는 복종에의 근거를 강화시킨다. (밥을 많이 사준 선임의 말은 잘 따를 수밖에 없게 된다) 만약 선임이 돈을 내는 관습이 사라지고, 후임과 같이 돈을 내거나 혹은 후임에게 돈을 내는 것을 전담시킨다면 계급체계는 무너진다.
군 제대하신 분들이 하나같이 하시는 말씀이 "자기가 나올 때쯤 빡셌던 거 다 편해졌고, 이 상태로 전쟁 났다가는 망한다"는 계급 위기론이다. 후임이 선임들의 말을 예전처럼 잘 안 듣는다는 것이다. 군대에서 '짬'이라는 것이 어느 수준까지의 권력을 가져야 하느냐는 것은 애매한 점도 많고, 복잡한 면도 많아서 이에 대해서는 따로 말을 붙여야 하겠지만, 그러한 '짬'의 위상의 변화는 경제적인 면에서 곧바로 드러나게 되리라는 것은 흥미롭다. 후임이 정말로 선임의 말을 안 듣게 될 때가 오면 더는 후임이 선임에게서 얻어먹으려 하지 않을 것이고, 선임도 후임 대신 돈을 내주지 않을 것이다.
경제적인 빚을 진 사람(채무자)과 채권자와의 권력관계로 일반화 시킬 수도 있을 것이고, 모든 경제적인 문제에서 이러한 권력관계를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주고받는 양이 동등하지 못하다면 그 사이에 권력관계는 생기기 마련인데, 재화나 노동의 가치를 어떻게 수치로 매겨 주고받는 양을 비교하느냐 하는 것은 실제 노동사회의 문제이다.
종속에의 탈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적인 문제이고,
나도 결국 내 경제생활뿐만 아니라 그 외의 결정권을 키우려면 경제적인 독립이 필요하다.
언제까지 부모님께 빚만 내고 있을 순 없지 않은가.
휴가를 나가기 며칠 전부터 휴가 때 뭐할지를 생각해봤는데,
항상 외박을 나가기 때문에 외박 때는 할 수 없는 무언가를 하고 싶었고,
편히 쉬면서 미뤄왔던 일들을 하나씩 끌어안으려고 했다.
친구들과 만나면서 술 먹는데 돈을 쓰고 싶진 않았고, (이건 외박 때도 할 수 있으니까)
혼자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고 싶어서 깨작깨작 견적도 내보고 그랬다.
그러던 찰나에 친구가 지난달에 못 간 제주도를 이번 달에 가자고 그랬고,
옳다거니, 다른 모든 계획을 취소하고 제주도를 가려고 했다.
그런데 제주도에 가기로 했던 계획이 배편으로 말미암아 물거품이 되면서 계획의 전면 수정이 필요했다.
우선 휴가의 주제를 설정했고, 세부적인 계획을 문서로까지 만들어 인쇄까지 했다. -_-
지금까지는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는 중이다.
미뤄왔던 일들을 끌어안았고, 집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계획대로 해가고 있다.
(다만, 연락처까지 닫아 놓고 극단적인 대인기피노선을 걷고 있다는 게 문제인데, 만날 얼굴 보는 친구가 불편해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름의 사정이 있다.)
휴가 동안 할 일 중에 돈 버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도 있었다. 요즘 돈을 벌고 싶다는 갈망이 심장을 강하게 펌프질하고 있다. 물론 군인으로서의 월급을 받고 있긴 하지만, 완전한 경제 독립을 희망한다. 현재는 군대 월급과 집에서 매달 주는 용돈으로 생활하고 있다. 그런데 해가 지날수록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인 독립을 해야 한다는 압박은 배로 커진다.
경제적인 의존은 독립적인 의사결정권을 가져다줄 수 없다. 경제적인 것을 보장해주는 사람과 그것을 받는 사람은 어떠한 형식으로든 지배와 종속의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회사와 회사원의 관계는 당연하고, 용돈을 주고받는 부모-자식 관계, (겉치레일지라도) 직원과 손님의 관계도 돈을 지급해주는 쪽과 받는 쪽에 따라 결정권이 나뉜다. 내가 만약 경제적으로 완벽히 독립할 수 있다면, 그리고 오히려 내가 용돈을 주는 상황이라면, 부모님과의 사이에서 나 자신의 목소리는 훨씬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군대라는 조직을 보면 이 경제적 종속의 양상이 아주 재미있게 드러나는데, 내가 속한 부대를 일반화시킬 수는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두며 예를 들겠다.
선임과 후임이 바깥에 밥을 먹으러 가면, 보통 선임은 후임에게 밥을 사주고, 후임은 물을 떠 오고 수저를 정리해서 놓아둔다든지 뒤치다꺼리를 한다. 군대에서 선임과 후임과의 사이는 법적인 종속 관계가 아니다. 분대장을 제외한 병사가 다른 병사에게 명령, 강요를 할 수 없다. 다만, 연공서열을 뜻하는 '짬'이라는 군대에서의 관습적인 상징자본(?)이 선임에게 훨씬 우월한 의사 결정권과 권력을 가질 수 있게 한다. ("선임이 까라면 까야지."라는 말은 선임의 절대적인 의사 결정권을 뜻한다) 그런데 이것이 법적 강제력이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속한 부대는 타 육군부대만큼 선임에 대한 복종을 과도하게 강요하지는 않기 때문에 후임이 선임의 말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법적인 근거도 관습적인 제약도 비교적 약하다. 그렇지만, 선임이 돈을 지불한다는 또 다른 관습이 경제적인 종속을 만들고, 이는 복종에의 근거를 강화시킨다. (밥을 많이 사준 선임의 말은 잘 따를 수밖에 없게 된다) 만약 선임이 돈을 내는 관습이 사라지고, 후임과 같이 돈을 내거나 혹은 후임에게 돈을 내는 것을 전담시킨다면 계급체계는 무너진다.
군 제대하신 분들이 하나같이 하시는 말씀이 "자기가 나올 때쯤 빡셌던 거 다 편해졌고, 이 상태로 전쟁 났다가는 망한다"는 계급 위기론이다. 후임이 선임들의 말을 예전처럼 잘 안 듣는다는 것이다. 군대에서 '짬'이라는 것이 어느 수준까지의 권력을 가져야 하느냐는 것은 애매한 점도 많고, 복잡한 면도 많아서 이에 대해서는 따로 말을 붙여야 하겠지만, 그러한 '짬'의 위상의 변화는 경제적인 면에서 곧바로 드러나게 되리라는 것은 흥미롭다. 후임이 정말로 선임의 말을 안 듣게 될 때가 오면 더는 후임이 선임에게서 얻어먹으려 하지 않을 것이고, 선임도 후임 대신 돈을 내주지 않을 것이다.
경제적인 빚을 진 사람(채무자)과 채권자와의 권력관계로 일반화 시킬 수도 있을 것이고, 모든 경제적인 문제에서 이러한 권력관계를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주고받는 양이 동등하지 못하다면 그 사이에 권력관계는 생기기 마련인데, 재화나 노동의 가치를 어떻게 수치로 매겨 주고받는 양을 비교하느냐 하는 것은 실제 노동사회의 문제이다.
종속에의 탈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적인 문제이고,
나도 결국 내 경제생활뿐만 아니라 그 외의 결정권을 키우려면 경제적인 독립이 필요하다.
언제까지 부모님께 빚만 내고 있을 순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