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여행을 남기기 위해 사진을 찍는 건지, 사진을 남기기 위해 여행을 가는 건지, 흔들린 사진처럼 알 수 없다. 경건한 성당안의 고통스런 예수도 믿음이 없는 사람에겐 한낱 사진 노리개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 모습이 가슴까지만 나오게 해달라나. 가만히 최소한 삼십분이라도 앉아서 분위기에 취할 순 없는 걸까. 여행책자를 만드는 사람처럼 돌아다니며 사진만 찍는 한국관광객들이 그리 곱게 봐지지 않는다. 나 또한 마찬가지려나. 믿음이 없는 나에게도 예수와 마리아의 모습은 사진을 찍고 싶은 충동을 주고, 실제로도 찍었다. 나 또한 가슴의 경건함을 사진에 가둬 버린게 아닐까 의심이 간다.
책에서만 봐오던 사진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찍을 수 있다는, 거기에 자신의 모습까지 같이 얹을 수 있다는 에고이즘의 투영일 뿐이다. 여행책자에 나와있는 모든 것을 다 볼 수 없을지라도 한 곳에 오래 머물며 그곳이 어떤 곳인지 가슴으로 느껴보려 해야 할 것이다. 아무런 감성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그 때 일어나도 늦지 않다.
10.
인생은 객관식이다. 누가 인생은 주관식이라고 했는가. 당면한 문제에 내가 처할 수 있는 방안은 몇개 되지 않는다. 선택의 기로. 거기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두개나 세개 중 하나로 좁혀진다. 문제의 정답을 잘 모르겠다면, '보기 중 답이 없다' 혹은 '모두 정답이다'를 찍어라. 인생에 있어 문제의 대부분은 위의 두개 중 하나가 정답이다. 보기의 문장이 길다고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마라. 시험과 다르게 짧을 수록 정답일 가능성이 크다. 두 개를 놓고 고민하게 될 때 기억은 도움이 되주지 않는다.
11.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들리는지도 모르고 산다. 우리는 뒤집어진 거울의 모습에 익숙하고 골성이 포함되어 변형된 목소리를 자기목소리로 안다. 그래도 자신의 모습과 목소리는 카메라와 녹음기로 깨달을 수 있다. 정작 안타까운 것은 환상속에 사는 자신을 죽을 때까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
12.
에너지의 변환이란 무엇인가. 에너지가 변환 가능하다는 사실을 물리학자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에너지의 변환은 얼마나 드라마틱하게 일어나는가. 흑연들이 종이위에 자신의 자리를 찾아간다. 한꺼풀씩, 종이 분자들 틈에 스며든다. 손가락의 움직임은 종이와 흑연의 접착에너지로 바뀌었다. 나는 곧 이 글을 컴퓨터로 옮길 것이다. 종이에 부딪치는 형광등의 빛은 반사되어 나의 눈에 들어온다. 나의 망막에 흡수된 빛은 visual transduction을 통해 후두엽에 도착하여 측두엽을 따라 흘러가 키보드에서 흘러가는 전기신호는 전자기 에너지로 전환된다. 이는 다시 모니터를 통해 빛에너지로 변환되어 당신의 눈의 visual transduction을 통해 전해져 당신의 뉴런들 사이의 전자들은 춤을 춘다.
13.
사람들은 두리번거리다 누군가의 눈마다 시선을 멈춘다. 그러다 우연히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면 그들은 서로를 피한다. 왜 그들은 계속 서로를 바라 보지 않을까. 눈만으로 얼마나 많은 대화가 오고 갈 수 있는지를 모르는 걸까. 아니다. 그들은 알고 있다. 그들은 대화를 피하고 있다. 끊임없이 대화의 상대를 찾으면서 대화를 두려워한다. 상대방의 가슴이나 다리를 보는 것은 자기만의 즐거움을 위함이지만 상대방의 눈을 보는 것은 대화를 원함이다.
캐나다에서의 잡상들, 일기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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