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서울로 올라가 4개월 정도 보냈었다. 좋은 기억보다는 나의 무지와 무용(無用)함에 대한 기억이 대부분이라 별로 기억하고 싶은 시간은 아니지만, 어쨌든 이것 저것 해보려고 발버둥쳤던 시간이다.
안정적이게 발 붙일 곳을 찾다가 인문학을 공부하는 연구실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인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름만 들으면 알 정도의 곳이었다. 나는 어떤 곳인지 거의 알지 못한 채로 찾아간 셈인데, '서울에 있을 때는 무엇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한 공간을 물색하던 중 가게 된 것이다.
여러 세미나 중에 미학 관련 세미나를 신청했다. (그냥 막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돈을 내야한다.)
제대 말년에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를 읽었기 때문에 말 그대로 필이 꽂혀서 간 것이고, 더 정확히 말하면 마땅히 갈 곳이 없어서 선택했다. 아는 철학자가 있어야지 말이다. 오래된 철학자의 책을 한번도 완독한 적이 없으니, 그나마 가장 최근에 읽었던 '미학'에 또 우쭐한 마음에 신청해버렸다.
공부하는 책은 메를로 퐁티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었는데. 우와, 미학 오디세이만 달랑 읽고 간 내가 도저히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책이었다. 게다가 그 책은 미학 관련 서적도 아니고, 메를로 퐁티가 미학에 관련해 썼던 책도 아니고, 그냥 철학책이었다. 알고보니, 처음 세미나를 시작할 때는 그림을 보면서 미학 관련 책을 공부하였지만, 이것 저것 하고 이제 더 깊이 들어가고자 철학책을 골랐다는 것이다. 메를로 퐁티 하면 나는 '살(chair)'밖에 모른다. 나는 그림 보면서 아름다움에 대해서 얘기할 줄 알았는데, 이거 완전 제대로 피볼 것 같았다. 책값도 3만원이나 했는데, 이미 사버렸다.
나는 정말 한 문장 한 문장 뭔소리 하는 건지를 모르겠는데, 어쩔 수 없이 꾹 참아가며 두시간 정도를 보냈던 것 같다. 결국 그 날 하루가 처음이자 마지막 방문이었고, 그 책은 책상 서랍에 무료하게 꽂혀있다.
그 두 시간 동안 속으로 쉰 한숨이 한둘이 아니지만, 나에게도 말할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물리학부생이면서 인문학 연구실을 찾아 온 것을 신기해하던 일원이 양자영학에 대한 얘기를 꺼냈기 때문이다. 비록 양자 수업은 겨우겨우 막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숨넘기기도 어려웠고, 내가 도대체 무슨 문제를 풀었는지 아직도 긴가 민가 하지만, 그래도 비전공자보다야 할 말이 많지 않을까.
세미나에 참석한 한 분은 양자물리에 대한 얘기를 난생 처음 듣는 자리였고, 황당해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서 나도 잘 알지 못하는 내용들을 우쭐한 마음에 신나게 얘기했다. 미시 세계로 가면 물질들이 확률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 운동량과 위치를 동시에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는 사실 등이 그 분에게는 적지 않은 충격이었던 것 같았다. 물질과 파동의 이중성은 누구나 처음 들을 땐 충격적일 것이다. 수업시간에 계속 듣다보면 나도 모르게 그러려니가 되어 버리지만, 처음 수업을 들을 때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어찌됐든 그분의 표정은 마치 그동안의 삶에 대해 회의를 느낀다고 할 정도의 당황스러움이었다.
그때였는지, 아니면 그 이후 집에 가면서 생각한 것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어쨌든 생각한 것이, 존재에 대해서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아니 더 좁게 최소한 철학책을 읽는 사람들이라면 최소한의 물리학적 지식은 알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 전까지 세미나에서) 세계가 주름처럼 생겼으며, 그 주름 사이는 세상에서 가려진 면이며 하는 도통 알 수 없는 (어쨌든) 철학적인 내용을 다루다가 양자물리의 잠정적 결론 하나에 존재의 형상을 그려오던 기반이 무너진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양자물리의 내용들도 어디선가 뚝 떨어졌거나, 어느 천재가 명시적으로 제시한 것이 아닌, 수많은 논란과 수많은 검증과 토론에 의해서 조금씩 정립되어온 것이다. 그 누구라도 물리적인 제약을 벗어날 수 없다면, 그 물리적 제약 조건들, 그리고 우주의 물질적인 법칙들을 기본적인 개념으로라도 알고 있어야지, 철학을 제대로 할 수 있지 않을까.
다른 예를 들자면, 우주가 결국 생명체가 살 수 없는 공간으로 변할 것이라는, 그리고 (비록 상상하기 어려운 먼 미래일지언정) 인간도 미래의 어느 지점에서 (생물학적으로)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물리적 제약을 모르고, 인류를 말하고, 학문의 의미를 말한다면, 죽음을 가정하지 않고 삶의 의미를 설명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철학을 하는 사람들과 삶과 존재에 대해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최소한의 물리학 이론을 말하자면, 양자 역학, 상대성 이론, 우주의 역사와 미래론 정도가 있을 것이다. 잘 쓰여진 교양과학서 정도의 내용만을 알더라도 충분할 것 같다. 이것들 없이 존재를 얘기할 순 없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과학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필요한 최소한의 철학적 혹은 인문학적 지식이 있지 않을까. 앞서의 경우가 철학자의 물리적 제약 때문이라면, 이번에는 과학자의 인간적 제약 때문이다. 어떤 것들이 있을까. 내가 그것들을 알 정도로 유식하다면 그 세미나에서 그렇게 속으로 한숨 쉬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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