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조금 덜하지만 여전히 지난 선택에 대한 후회는 완전히 가시지 않는다. 깨어있을 때는 그런 생각이 들면 차단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늪에 빠지지 않지만, 꿈에 등장하는 후회는 어쩔 수 없다. 아마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것이고 앞으로도 없애기 쉽지 않을 것이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보면 거의 병적인 수준이라고 생각할 정도다.
나는 왜 이렇게 후회를 많이 할까, 왜 나만 더 심할까를 알고 싶어 선택과 후회에 관련된 책을 뒤졌다. 어떤 심리학 분과에서 설명을 하는지 감이 오지 않아서 교양 심리학 책을 뒤져보았다. <선택의 심리학>, <If의 심리학> 등의 제목들이 검색 되었고, <선택의 심리학>부터 빌렸다. 원제는 <선택의 패러독스>이고 처음에 번역될 때는 그 제목으로 출간되었지만 <~의 심리학>이라는 제목이 유행하면서 <선택의 심리학>으로 다시 판을 냈다.
<선택의 심리학>은 내가 바로 원하던 답을 모두 담았다. 책에 묘사되어 있는 후회를 많이 하는 사람은 나를 따라다니며 관찰한 것처럼 나와 100% 일치했다. 과장 없이 100%. 물론 후회는 누구나 하기에 그런 성향은 모두가 가지는 것이지만 지금 내가 왜 이렇게 지난 선택에 힘들어하는지에 대한 정답을 제시한다. 자신의 괴로움을 관찰하고 객관화하여 고통을 극복하는 방어기제를 지성화라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심리적 상황은 이전보다 많이 나아졌다. 물론 심리적 괴로움의 근본적인 원인은 바뀐 것이 없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은 심리적인 대응법이다.
조금 거칠지만 이 책에서는 사람을 크게 두 부류로 구분한다. '극대화자'와 '만족자'. '극대화자'는 모든 선택이 최선이어야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들은 괜찮은 선택을 하더라도 끊임없이 더 나은 선택이 없나를 탐색한다. 그 탐색은 미래를 향할 뿐만 아니라 과거를 향하기도 한다. 그 탐색이 과거를 향할 때 극대화자는 후회를 한다.
이 책의 핵심 내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선택의 자유가 극대화된 현대 사회는 우리를 더 불행하게 한다"는 것이다. 선택의 자유가 넓어지면 우리는 흔히 더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능한 후보들이 다양하고 선택이 자유롭다면 우리가 가장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더 불행해졌을까.
첫째, 선택이 대안이 너무 많아 우리는 만족스런 선택을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 가장 자주 겪을 때가 쇼핑을 할 때다.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든 인터넷으로 쇼핑을 하든 너무 많은 선택의 후보들에 우리는 어느 하나를 고르질 못한다. 내 맘에 쏙 드는 게 없거나 반대로 사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다 살 수 없다. 어딘가 더 맘에 드는 옷이 있을 것 같고 심지어 그것은 사실이지만 선택의 가짓수에 질려 결국 사지 못하거나 사도 아쉬울 때가 많다. 너무 많은 대안들에 짓눌러 우리는 선택을 하는 데 에너지를 과도하게 소비한다. 시간을 더 많이 들였으니 들인만큼 보상을 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만약 시간을 더 들여 탁월한 선택을 하지 못했다면 만족도는 내려간다. 선택을 위해 들이는 시간은 일종의 수수료다. 아주 가끔 우리는 시간을 더 들여 탁월한 선택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조금 더 나을 뿐이며 이는 시간을 들이면 들일수록 더 만족도가 떨어지게 한다.
둘째, 선택의 대안이 많을 때 우리는 선택하지 않은 대안의 기회비용으로 괴로워한다. 물론 최고의 선택을 한다면 기회비용은 최소화가 될 것이다. 그러나 심지어 그런 경우에도 대안이 적은 경우보다 기회비용에 대한 생각은 우릴 괴롭힌다. 그것이 작동하는 원리는 이렇다.
기회비용이라는 것은 우리가 한 대안을 선택함으로써 얻을 수 없는 다른 이점들을 말한다.
기회비용을 최소화하는 것이 좋은 선택일 것이다. 그런데 선택의 대안이 많아지면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든 놓치는 것이 많다고 여긴다. 가령 세가지의 보기 A, B, C 중에서 최선인 A를 선택했다고 치자. A라는 선택에서 a라는 이점을 얻은 대신 우리는 B라는 대안에서 b라는 이점을 놓치고, C라는 대안에서 c라는 이점을 놓쳤다고 생각한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우리는 B라는 대안을 선택했어도 a와 c라는 이점을 놓쳤을테고 만약 a>b 이고 a>c 라면 우리는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b와 c를 동시에 가질 수 없음에도 우리가 느끼는 기회비용은 b와 c를 더한 것이다. 그럼 선택의 대안이 많아지면 어떻게 될까. A-Z까지의 대안이 있고 a라는 이점이 가장 크기 때문에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하더라도 b-z까지의 이점들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b-z를 모두 얻을 수 있는 대안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상상속에서 그러한 대안을 만들어낸다. 즉 대안이 많아질 수록 우리가 '느끼는' 기회비용은 커지고 어떤 것도 선택하기 망설여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러한 선택 상황에서 만족자와 극대화자는 다른 반응을 보인다. 만족자는 일단 아쉽게 고르더라도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완벽하지 않은 선택임을 알고 있음에도 만족한다 (최소한 그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극대화자는 이미 선택을 한 후에도 고르지 않았던 수많은 다른 대안들을 생각하며 만족하지 못한다. 그리고 만족자는 선택을 위해 대안들을 검토하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지 않고 일단 자신이 정한 기준선을 넘으면 선택하지만 극대화자는 오직 최고만을 원하므로 선택을 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 객관적으로는 극대화자가 더 나은 선택을 하더라도 주관적으로는 언제나 만족자보다 불행하다. 그리고 선택을 고려하는데 소비한 시간까지 고려한다면 극대화자가 객관적으로도 더 나은 선택을 한다고 볼 수 없다.
이 책이 권고하는 것은 결국 우리는 완벽한 선택을 할 수 없으며 만족자가 되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하라는 것이다. 가능한 대안의 숫자가 많더라도 그것을 두개 내지 세개로 줄인다. 자신의 기준을 정하고 그 기준을 넘어설 정도로 만족하면 그냥 선택한다. 더 나은 것은 분명 있을 것이고 노력하면 찾을 수도 있겠지만 무시한다. 핵심은 수많은 대안들을 다 고려하지 말고 무시하라는 것이다. 무시하는 연습, 적은 대안에서 고르는 연습을 하면서 점점 적당한 것에 만족하는 심리적 습관을 기르는 것이다. 아, 제일 중요한 걸 빠뜨릴 뻔했다. 물론 모든 선택을 이렇게 할 수 없다.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선택은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다양한 대안들을 두루 고려해야 한다. 저자가 말하는 또다른 핵심은 "선택을 선택하라"는 것이다. 모든 선택에 대해 똑같이 고민할 필요는 없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는 위에 설명한 것처럼 대안을 줄이고 적당히 만족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선택들에 대해서는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도 좋다. 극대화자들은 아주 사소한 것들에도 선택에 어려움을 겪는다. 저자의 (뻔해 보이는) 이 제안은 극대화자들에게는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으며 나또한 고민해봤자 크게 달라지는 것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은 문제에 대해서는 고민의 시간을 줄이는데 성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