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버스의 진화심리학 교재 <마음의 기원>을 읽는다. 원서 2판을 번역한 번역서 1판인데, 교재임에도 불구하고 중구 난방 식의 구조다. 번역도 어색하고 책 구성으로 보면 실망스럽지만 진화심리학이라는 분야가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워낙에 흥미롭기 때문에 읽고 있다. 그리고 교양서적으로 나오는 진화심리학 책보다는 더 포괄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어서 좋다. 대여한 책이라 매 단원 흥미로운 부분을 메모해 둘 생각이다.
1단원과 2단원은 일단은 넘어가고 본격적인 진화심리학의 설명들이 시작되는 3단원부터 읽는다. 1단원과 2단원은 나머지 단원들을 다 읽고 난 후 볼 생각이다.
03 자연의 적대적 세력과의 투쟁: 인간 생존 문제
먼저 몇가지 재미있는 가설들부터 보겠다.
(1) 임신한 여성의 입덧 : 태아 보호 가설
워낙에 유명한 가설이다. 여성이 입덧을 하며 특정 음식들을 꺼리는 것은 그것이 태아에게 해로울 수 있는 독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에 따라 조금씩 비율이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의 문화권에서는 입덧을 한다. 최근에 27개의 전통사회를 조사한 결과 20개의 사회에서 입덧이 관찰되었다. 태아가 발달하는 결정적 시기들에 특정한 음식들을 섭취하면 태아의 기형을 초래하거나 유산의 가능성을 높이며, 이를 막기 위해 해로운 성분이 많은 음식들에 거부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 태아 보호 가설이며 이미 여러 방식을 통해 검증된 가설이다.
(2) 사바나 가설
구석기 시대 당시 주거지역을 선정하는 것은 생명과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과제였다. 이 가설의 주 내용은 인간은 자연 환경을 인공 환경보다 선호하며 특히 인류 진화의 대부분이 일어났던 사바나에서의 환경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증거 중의 하나로 케냐에서 찍어온 여러 나무를 보여주고 가장 선호하는 나무를 고르게 한 실험에서 사람들은 사바나 조건의 나무를 가장 많이 골랐다. 스트레스 상황에 처하거나 신체적 고통을 받을 때 자연에 관한 슬라이드를 보여주면 생리적 고통을 덜 느꼈다는 실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에 따르면 사바나 가설은 막 검증을 시작했을 뿐이다.
(3) 수렵 가설
수렵 가설은 영장류와 현대 인류를 구분하는 주요 특징들이 남자들이 수렵을 하고 여자들이 채집을 하면서 (즉, 일이 분화되면서) 진화적 압력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원래의 영장류들은 수렵을 하지 않는다. 주로 과일들이나 벌레들을 잡아먹고 산다. 인간만이 함께 '협력'하여 수렵을 하며 이를 통해 단백질원을 충당한다. '협력'해서 사냥을 하였고, 잡은 동물은 어차피 가족들이 다 먹을 수 없기에 나눠먹어야 했다는 사실이 현대 인류의 여러 특징들을 설명할 수 있는 주요한 진화 압력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남녀 간의 사회적 행동양식의 차이, 호혜적 행동, 남녀 공간 인식의 차이 등을 수렵과 채집으로의 분화를 통해 설명한다.
그 외에도 여러 가설들이 있지만 생략하겠다.
아쉬운 점
아직은 이 단원밖에 읽지 않았지만 이 책은 인과관계와 선후관계를 명확히 설명하지 않는다. 그것이 이 책만의 문제인지 아니면 진화심리학이라는 학문 자체에서의 난점인지는 모르겠다.
가령 수렵이 현대 인류의 특징들이 생기도록 진화적 압력을 가져왔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그 전에 수렵을 반드시 해야만하는 진화적 압력이 필요하다. 수렵 활동에 의해 진화가 생겼다는 것은 수렵을 해야만하는 압력이 오랫동안 작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에서도 동물에서 오는 단백질이 필수적인 이유를 설명하지만 설명이 오락가락한다. 원인과 결과를 혼합하여 설명하기도 한다. 가령 육류를 섭취했다는 역사적 기록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첫째, 단백질을 빨리 분해하는 소장의 길이가 영장류보다 길다.
둘째, 섬유질이 많은 식물을 먹을 때 치아가 닳게 되는데 인류의 조상의 치아에는 심하게 닳지 않아 있다.
셋째, 비타민 A와 B12는 필수 영양소인데 육류에만 들어 있다.
넷째, 동물들의 뼈에서 발견되는 도려낸 흔적이 있다.
첫째는 육류를 먹어야 하는 압력에 의한 결과, 둘째는 육류를 먹었다는 증거, 셋째는 육류를 먹게 만든 압력, 넷째는 육류를 먹었다는 증거다.
전혀 다른 것을 증명하는 증거들을 구분없이 나열한다. 육류를 먹었던 개체와 먹지 않았던 개체 사이에서의 생존 및 번식 능력에서의 차이가 진화적 압력으로 작용하여야 하고, 사냥은 혼자 할 수 없기에 집단 선택도 같이 작용했을 것이다. 왜 비타민 A와 B12가 갑자기 필요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것을 육류를 통해 섭취한 개체는 왜 더 생존 및 번식에 유리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더 필요하다. 물론 책의 다른 부분에서 생리적으로 왜 육류를 섭취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을 수도 있다.
또 한가지 불명확한 부분을 예로 들자면 사바나 가설 설명에서 꽃은 일반적으로 먹지 않는데 왜 사람들이 좋아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다. 그리고 단지 병실에 꽃이 놓여있는 것만으로도 병의 회복 속도가 빨라진다는 연구 결과를 덧붙였다. 꽃을 좋아하는 이유는 꽃이 긴 겨울 동안 구할 수 없었던 채소와 과일을 다시 얻을 수 있다는 신호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유전자에 꽃에 대한 선호가 입력되어야 할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특히 꽃을 봄으로써 병이 호전된다는 생리적 반응이 나올 이유가 없다. 이 책의 설명대로라면 꽃이 좋은 이유는 꽃 때문이 아니다. 꽃에 대한 선호가 진화되려면은 꽃을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지 않는 사람 사이에 차이를 두어야 하지만 단순히 봄이 왔다는 꽃이라는 신호를 더 좋아하는 것은 아무런 차이를 두지 않는다. 가령 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 곳에 자주 가게 되거나 그곳을 자세히 보게 되고 그래서 과일이나 열매를 더 많이 먹을 수 있었다는 설명이 필요하다(물론 이 설명도 억지스럽다.)
환경의 변화는 진화적 압력을 만들고 진화적 압력에 의해 유전적인 차이가 생기고 그 차이는 증거를 남긴다. 여기서 환경의 변화는 다른 종이나 같은 종의 개체들의 유전적 변이 또한 포함된다. 원인과 결과 그리고 상호 진화의 선후 관계 등을 명확히 설명해 준다면 좋겠다. 아직 증거가 쌓이지 않았다면 어느 부분이 약한지를 명확히 설명해 주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