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생이란 건 믿지 않는다. 불교에서의 윤회라는 개념도 모르긴 하지만 곧이 곧대로의 뜻은 아닐것이라 생각한다. 부처가 정말로 깨달았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그대로의 윤회라는 개념을 본인은 믿지 않았을 것이다. 죽어서도 삶이 계속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사후세계를 생각하고, 그 논리를 이으려면 그 이전으로의 연장이 필요하고 결국 전생이라는 개념을 도입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인과 응보를 주장하는 종교 혹은 사회에서는 당연히 불공평 할 수밖에 없는 삶을 설명하기 위해 전생이 필요하다.
2. 그래도 어렸을 때는 보통 전생을 믿기 마련이고, 나도 전생에 뭐였을까 궁금했다. 이상하게 대금 소리가 좋아서 나는 전생에도 조선시대에 태어났을 것이라고 혼자 생각했다. 여러가지 문제를 풀어 전생이 뭔지를 말해주는 웹사이트도 있었고, 최면으로 전생을 구경하는 것을 보여주는 프로그램도 유행이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전생에 자기가 고귀했기를 바라고, 평범한 삶이 아니었기를 바란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 살아가는 인생을 보면 전생도 그리 대단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3. 고등학교 때 학교 게시판에 전생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왜 학교 홈페이지에 그런 글을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찾을 수 없어 조금 아쉽다. 글을 생각나는 대로 요약하면 이렇다.
"전생이 꼭 과거라는 생각은 버린다. 그럼 전생이 현생에 동시에 살 수도 있다. 그것은 자신과 가까이 지내는 사람일 수도 있고, 전혀 본 적도 없는 사람일 수도 있다. 당신의 가족들 중에서도 당신의 전생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전생, 현생, 환생의 시간적 순서는 버리자. 당신은 언제라도 태어날 수 있다. 당신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 당신과 만나는 사람들, 가족들 모두 당신의 전생, 혹은 환생일 수 있기에 누구 하나 함부러 다루어서는 안 된다. 괴롭히면 안 된다. 아니 이왕 시간 개념을 깨버린 김에,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이 모두 자신의 생이라 확장하자. 당신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을 번갈아가며 겪는다. 최고의 부자도, 노예로 사는 삶도, 대통령도, 부랑자도, 회사원도 산 속의 동물도, 길 옆 나무도 모두 당신의 생이거나 생이였거나 생일 것이다. 우리는 누구를 부러워 할 것도, 우월감을 느낄 것도 없다. 그리고 항상 자신을 대하듯 주위 사람들을 대하자." 1
뭐 이런 내용이었다. 글만 그렇게 써놓고 나 스스로는 잊고 살다 금방 생각이 났다.
4. 너는 전생에 뭐였겠다, 나는 전생에 뭐였을꺼야 하고 상상할 때, 우리는 대부분 현재의 자신을 바탕으로 판단한다. 얼마 전 친구 한명이 전생이란 것이 혹시 있다면 자신은 전생에 노예였을 것 같다고 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물었더니, 자신은 말 잘 듣고, 무릎 꿇고 있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현생의 자신을 보고 판단해 전생을 추리한다. 사실 전생이 현생과 연관되어야 한다는 타당한 이유는 없다.(어차피 존재하지 않는 전생이라 이래도 저래도 상관없지만.) 그런데 문득 생각이 든게, 전생이라는 것을 어떤 영혼의 이동이 아니라, 유전자의 복사로 바꾼다면 그럴싸한 논리가 아닐까 싶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유전자의 일부는 내 이전의 누군가가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변함없이(혹은 아주 조금 변화하며) 나에게 전해졌다. 내게 어떤 재능이나 성격등의 특성이 있다고 하자. 그 기질은 부모님한테는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유별나게 가족 중에 나한테만 있어 보인다. 어떤 특정한 기질을 나타내는 유전자가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여러 유전자의 협력이 필요하다. 아주 오래전에 유별나게 발현되었던 유전자가, 오랜 세대 잠자고 있다가 나에게서 다시 발현이 되었다면, 그 유전자에게서만큼은 나는 환생한 존재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생을 가지고 전생을 예상해보는 건 그럴싸하다.
그렇지만 전생의 개념만 바꿨을 뿐, 아무런 의미가 없는 생각이기는 하다.
- 사실 이 개념을 위해서는 이미 짜여져 있는 프로그램 속에서 이 생, 저 생을 반복해서 태어나야 된다고 가정해야 한다. 당시 게시판에 쓸 때는 언급하지 않았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