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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에서 말놓기'의 재밌는 점

제대할 때가 되면 후임들과 말을 놓는다.
선임이었던 사람들이 제대할 때도 그들과 말을 놓았다.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달이 지날수록 거리가 가까운 선임이 제대하게 되고, 평소 말을 많이 나누었다면 말을 놓아도 어색하지 않다.
나도 제대하기 한달 정도 남기고 후임들과 하나 둘 말을 놓았다.
제대하기 전에 말을 놓는 것은 군에서 존댓말을 쓰는 것처럼 당연하게 여겨진다.
말을 놓는 것은 선임으로서의 권위를 놓겠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말을 놓는 순간 더 이상 선임이나 후임으로써의 사회적 관계는 사라지고, 수평적인 관계로 재설정된다.
물론 그 전부터 아주 친하게 지냈다면 말을 놓으나, 안 놓으나 큰 차이는 없다.

높임말, 예사높임말, 반말이 있다면, 군대 밖 사회에서는 나이가 어린 사람이 보통 예사높임말을 쓴다.
높임말을 쓰는 경우는 매장 점원이 손님에게, 공적인 관계에서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에게 말을 할 때 쓴다. 높임말은 위계를 강하게 드러내야 할 때 사용한다.
당연히 군대에서는 예사높임말이 아닌 높임말을 쓴다.

내가 속했던 부대에서는 말을 놓을 때 높임말에서 바로 반말로 간다.

군대밖의 관행을 따른다면 선임이 후임보다 나이가 어릴 때, 말을 놓는 순간 선임이었던 사람이 후임이었던 사람에게 예사높임말을 써야 된다. 그런데 반말을 쓰던 사람에게 존대말을 쓰면 어색하다. 그래서 그냥 서로 반말로 한다. 이리저리 나이를 따져 선임이 나이가 많을 때만 후임이 예사높임말을 쓸 수는 없기에, 나이에 상관없이 말을 놓을 때는 반말로 놓는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곤 말이다. (선임이었던 사람이 후임이었던 형에게 예사높임말을 쓰는 걸 들었는데 듣기가 거북했다)

예사높임말이 아니라 반말로 말을 놓는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한국이라는 사회는 나이로 강하게 위계지어진다. 웬만큼 친하지 않다면 나이 차가 있을 때 존대말을 쓴다. 예사높임말이라고 할지라도 예사로 볼 게 아니다. 말이 위계질서에 영향을 미친다. 높임말, 예사높임말, 반말은 위계의 정도를 드러낸다. 반말로 놓기는 예사높임말로 놓는 것보다 훨씬 큰 상징적 의미가 있다.  

군에서 짬을 따지는 것도 밖에서 나이를 따지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같은 논리로 그 행태는 극단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말놓기'를 통해 군에서의 인위적으로 지어진 위계를 깨려다보니 통념적이던 바깥의 위계를 망각한다. 극단에서 극단으로 가는 것이다. 두 위계가 같은 논리 위에 있기 때문에 그렇다.
답답하던 군에서의 위계를 깨면서 나이로 엮어지던 위계까지 깨지는 통쾌함이 있다.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 인위적으로 혹은 강제적으로 그 극단을 취한다. 그 극단에서 사람들은 불편함과 불필요함을 느끼고, 나중에 그 극단을 깨버림으로써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일상의 불필요한 관행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한다.

가장 극단적인 위계사회를 통해 친교를 위한 사이에서의 위계의 불필요함을 느끼게 된 것이다.



덧글
1. 제대하던 선임에게 나이에 상관없이 반말로 놓던게 습관이 돼서, 오랜만에 만난 대학교 선배와 나도 모르게 반말로 대화했다. 그 선배도 당황했던 것 같고, 옆에서 지켜보던 친구가 나중에 내가 왜 그러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내 머리 속에서는 이미 나이에 따른 위계가 깨져있었다. 혼자 너무 앞서간 것이다.  
2. 내가 아는 한 친구는 모르는 사람끼리 처음부터 반말로 하는 모임에 갔었다는데, 무슨 모임이었는지 궁금하다. 기분이 어땠을까. 반대쪽 극단을 취해보는 실험적 모임이었던 것 같은데, 실제에서는 그래도 처음보는 사람들끼리는 나이에 상관없이 존대말을 써줘야 할 것 같다. 함께 존대말을 쓴다면 위계가 있는 것은 아니니까. 처음 보는 할아버지가 나에게 반말할 때는 기분이 무지 나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