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글은 스팸뮤직을 통해 썼던 글이다. 특수한 부대상황에 대한 글이라, 카투사라도 나랑 같은 부대의 부대원들 말고는 공감도 이해도 어려울 것이다. 내가 속했던 부대를 간단히 말하자면 보급을 담당하는 후방 부대로 카투사들은 행정업무가 대부분이고, 상급부대라 미군들의 계급이 높아 사병 숫자는 미군보다 카투사가 많다.
부대이름은 '우리부대'로 고쳤고, 일부 실명 거론은 삭제했다.
::::::::::::::::::::::::::::::::::::::::::::::::::::::::::::::::::::::::::::::::::::::::::::::::::::::::::::::::::::::::::::::::::::::::::::::::::::::::::::::::::::::::::::::::::::::
제가 전입오고 나서부터 1년 반년이 지나도록, 그러니까 아마도 아주 예전부터 이어져온 미군과의 갈등에 대해서입니다.
이 갈등은 개인의 문제에 인한 것도 있지만,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혹은 관습적인 문제 때문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문제를 일으킨 개인이 제대를 해도 여전히 갈등은 발생합니다.
카투사 병장의 대우 문제(자격 문제), 미군과 카투사의 차별 문제, 카투사병들의 책임감 문제(프로페셔널 문제), 카투사병과 미군사병의 일 분배 문제, 카투사병들의 참여의식 부재의 문제 등이 있습니다.
원인은 크게 카투사병과 미군사병의 근본적인 차이에서 오는 것과 한국과 미국의 (군대)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 있습니다.
이런 차이들로 인해 우리 부대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들의 내용과 원인을 짚어봄으로써, 차후 더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점을 생각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우리부대에서밖에 안 있어봤기에 여기 언급되는 원인들은 우리부대에만 한정됨을 밝힙니다.
그리고 당연히 제 개인적인 경험이 바탕이고, 개방적인 의견임을 확실히합니다.
대부분의 내용은 이미 많이 나왔던 말들이고, 논쟁도 했던 문제이니, 그것을 정리한다는 차원에서 읽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사견이지만 공론의 출발점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주원인 1. 미군은 직업군인이고, 카투사는 징병된 군인이다.
어쩌면 모든 문제의 시작은 여기일지도 모릅니다.
저희는 직업군인이 아닙니다. 그래서 당연히 프로페셔널리즘이 떨어집니다.
여기서 프로페셔널리즘이란 자신의 잘못에 자신이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해야 할 일은 '해야하기 때문에' 시키지 않아도 하는 것입니다.
프로는 잘못을 하면 월급이 깍이거나, 자리에서 잘리거나 피해가 금전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옵니다.
적은 양의 돈이든, 잠시 일을 하는 것이든 돈을 받으면서 하는 일이라면 책임감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직업이기에 해야 할 일은 스스로 합니다. (물론 예외는 있지만 대체적인 성향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카투사의 경우는 월급을 주긴 주지만 강제로 끌려왔습니다.
카투사는 선택했지만, 병역 의무는 선택할 수 없습니다.
징병의 경우에는 책임감이 없다고 해서 개인을 잘라버릴 수 없습니다.
최대한 아무 일 없이 제대를 하게 만드는 것이, 국가라는 고용자의 입장에서는 최선입니다.
그러다보니 개인의 잘못에 집단적인 책임을 묻습니다.
법적으로는 개인에게만 징계를 내리지만 관습적으로는 집단의 책임을 묻고 선임의 책임을 묻습니다.
징병이라도 당연히 책임감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이 선택한 군복무도 아니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책임감을 강요해야 합니다.
국가에 대한 충성이라는 명목상의 '책임감'이 있고, 실제로는 집단 전체에 대한 공식적 비공식적 압박이 개인에게 전가됨으로써 기능합니다.
이 때문에 선후임간의 갈등이 생기기도 합니다.
일부 카투사들이 외박에 집착하고, 일보다는 개인적인 일을 우선에 두다가 갈등이 생길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꼭 해야하는 부대 훈련에 어떻게든 편법으로 빠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미군에 비해 카투사가 더 심한 것 같습니다.
해야 할 일을 당연히 먼저 해야하는 프로의식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프로가 아니기에 적절한 보상과 처벌이 주어질 수 없고 보상은 몰라도 처벌은 한국군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적절히 피드백이 되지 못합니다.
그런데 프로가 아닌 카투사들에게 프로처럼 행동하기를 요구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프로가 아니라고 무책임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한 동기는 우리가 군복을 입고 있기에 우리도 프로라고 저한테 그랬는데, 여기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세미프로 정도는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책임있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 반드시 다른 누군가가 피해를 봅니다. 그리고 그것이 다시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습니다.
주원인 2. 미군은 계급이 올라갈수록 힘들어지지만, 한국군은 계급이 올라갈수록 편해진다.
끊임없이 등장하는 카투사 병장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이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입대하기 전부터 꾸준히 들어온 군대 이야기가 우리의 의식속에 자리 잡아 우리도 그렇게 행동하게끔 합니다.
일반 한국군에서 병장은 거의 왕입니다.
하기 싫은 건 어느거라도 빠져도 되고, 무슨 잘못을 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습니다.
심지어 간부들도 신경을 덜 씁니다.
이 원인도 결국 첫번째 원인과 연결되는데, 병장까지는 징병이고 하사부터는 모병이기 때문에 병장이라는 위치에서 엄청난 지위가 생깁니다.
군인답지 못한 행동(장난스런 복무 태도, 군예절을 어기는 것)도 용서가 됩니다.
예를 들어 만약 여기가 순수 한국군이라면 병장이 밖에서 베레를 벗고 있는 것도, 피티 셔츠를 밖으로 빼서 입는 것도 다 용인될 것입니다. 간부에게만 안 들키면 뭐라고 할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신 낮은 계급의 병사가 그러고 있었다면 아까 말했듯이 군기가 빠졌다는 말을 들을 것입니다.
한국군은 처음 들어왔을 때 군기를 강조하고 갈수록 군기가 빠지는 것을 자연스레 여깁니다.
그런데 미군은 완전 반대입니다. 병장 이상이 되면 지위가 올라간만큼 책임감과 성실성을 요구합니다.
자기 사병은 힘든 일 이후 쉬게 해줘도 자기는 마음대로 쉬면 안 됩니다.
일, 이병일 때는 군 예절에 어긋나는 행동을 해도 잘 모를 수 있다는 판단하에, 혹은 아직 프로페셔널리즘이 생기지 않았다는 판단하에, 지적을 받고 말지만 병장 이상이 그런 행동을 하면 변명이 통하지 않습니다.
미군에게 있어도 NCO(부사관의 개념, 한국군으로 따지면 일부 상병 포함 병장 이상)로의 진급은 엄청난 변화이지만, 그 변화는 프로페셔널리즘의 강화를 의미합니다.
중사는 하사보다 일이 많고, 상사는 중사보다 일이 많습니다.
오피서들도 계급이 올라갈 수록 대체적으로 더 바빠집니다.
일의 양, 책임감, 군인정신이 미군은 프라이빗부터 차례대로 계급이 올라갈 수록 연속적으로 올라갑니다.
이병때부터 모병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국군은 병장까지는 징병이고, 억지로 복무하는 것이기에 병장과 하사 사이에 넘지 못할 갭이 있습니다.
한국군에서 병장으로의 진급은 이 고달픈 군생활에 있어, 끝이 보이는 시기이고, 그동안 고생했으니 보상을 받을 때입니다.
물론 경험자로서 책임감은 커지지만, 하는 일은 급격히 줄어들고, 엄청난 보상이 있습니다.
카투사는 이런 한국군의 습성을 군대 오기 전 이야기로 들어 체화해놓은 상태에서 미군의 환경 속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카투사 병장의 자격과 대우 문제가 발생합니다.
NCO 다운 행동은 하지 않으면서 대우만 바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규정상 동등한 대우를 해야 된다고 주장하지만, 미군에게는 그게 더 모순적으로 보일 것입니다.
한국군이라는 정체성과 미군이라는 환경 사이에서 적절한 절충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이것은 다음에 말씀 드릴 기회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한가지만 말씀드리자면, 단 한번도 겪어보지 않고 말로만 들은 한국군의 관습을 환경이 다른 부대에서 (너무) 그대로 적용하려고 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분명 절충은 있을 것입니다.
주원인 3. 미군은 빠진 자리에 비슷한 계급의 후임자가 오지만 한국군은 병장이 빠진 자리에 이병이 들어온다.
이것 때문에 카투사에게는 중요한 일을 못시킵니다. 왜 카투사한테는 잡일이나 단순한 일만 시키느냐. 그럴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병장이 할 수 있는 일을 시키다가 금방 또 이병이 들어와버립니다.
영어실력까지 고려하다보니 대부분의 섹션이 카투사에게 중요한 일을 마냥 맡길 수 없습니다.
가끔 그런 일을 시키는 섹션이 있는데, 그럴 때 그 섹션에서 일하는 카투사는 이병때부터 엄청 고생하면서 박탈감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차이 때문에 독방문제에서 불리합니다. 카투사의 병장 수는 너무 유동적입니다. 아시다시피 이병이 폭발했다가 그게 그대로 올라가 병장까지 폭발합니다. 어떨 때는 한 두명밖에 없을 때도 있습니다.
카투사 병장에게도 독방을 달라. 주장하기가 그런 것이 정말로 다 못 주기 때문입니다.
카투사에게 일정량을 할당하는 방법도 유동성 때문에 한계가 있습니다.
병장이 별로 없을 때 또 미군의 독방이 늘어나버리면, 스페셜리스트(NCO가 아닌 상병)는 독방을 쓰는데 새로 올라온 병장은 못 쓰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그렇다고 매 달 바뀌는 병장 숫자에 맞추기 위해 다른 카투사 병사나 미군 병사들을 이리 넣었다 저리 넣었다 할 수도 없습니다.
여기에 앞서 말한 카투사 병장의 자격문제까지 겹치면 또 갈등이 생깁니다.
이 원인은 100%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갈등상황에서 양 측 모두 이 점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주원인 4. 카투사의 숫자가 많다.
우리 부대는 카투사병이 미군사병보다 숫자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단순한 양적 이유로 갈등이 많고, 또 구조적인 이유로도 갈등이 생깁니다.
단순 양적 이유는 부딪치는 카투사 수가 많으니 그 중 문제가 있는 섹션이 많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구조적으로는 카투사가 더 부각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서젼 타임 시간(군사 지식 교육 시간)에 보통 카투사들은 소극적입니다.
영어도 영어지만 문화 자체가 먼저 안 나서는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카투사가 훨씬 많은 상태에서 진행이 소극적이 되버리니 그 책임이 카투사에게로 옵니다.
만약 대다수가 미군에 카투사가 소수라면 그냥 묻힐 수 있는 것들입니다.
이와 비슷한 경우가 서젼타임이 아닌 다른 부대 일에서도 발생합니다.
그리고 다른 부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 부대는 미군과 잘 융합되지 못 하는 것 같습니다.
이 또한 카투사의 숫자가 많다보니 우리끼리 뭉치는 경향이 많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카투사는 미군 행사에 너무 참여를 안하려고 한다는 미군의 불만은 저부터도 참여할 용기가 안 나는데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분위기는 분위기니 말입니다.
카투사가 줄어든다고 해서 미군행사의 참여가 늘 것 같지는 않은데, 카투사들끼리 뭉치는 성향이 확실히 덜해지기는 할 것 같습니다.
적다보니 미군의 입장 쪽으로 약간 치우친 것 같다고 스스로 느끼는데, 어떻게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서로가 구조에서 오는 차이, 문화에서 오는 차이를 이해해줄 수 있다면 좋은데, 제가 여기다가 우리 입장의 얘기만 늘어놓는 건 무의미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보니 다소 카투사가 먼저 개선할 수 있는 건 없을까 하는 생각을 중심으로 쓴 것 같습니다.
미군과의 갈등을 무조건 미군의 잘못으로 혹은 카투사의 잘못으로 몰기 보다는, 우리가 우리끼리 얘기할 때도 객관적인 시각으로 접근한다면 문제 해결이 더 쉽게 될 것 같습니다.
우리는 확실히 미군이 아니지만, 일반 육군과 똑같은 사고와 관습으로 복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문제의 원인을 나열하는 수준이었지만, 조금이라도 우리가 처한 상황의 이해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부대이름은 '우리부대'로 고쳤고, 일부 실명 거론은 삭제했다.
::::::::::::::::::::::::::::::::::::::::::::::::::::::::::::::::::::::::::::::::::::::::::::::::::::::::::::::::::::::::::::::::::::::::::::::::::::::::::::::::::::::::::::::::::::::
제가 전입오고 나서부터 1년 반년이 지나도록, 그러니까 아마도 아주 예전부터 이어져온 미군과의 갈등에 대해서입니다.
이 갈등은 개인의 문제에 인한 것도 있지만,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혹은 관습적인 문제 때문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문제를 일으킨 개인이 제대를 해도 여전히 갈등은 발생합니다.
카투사 병장의 대우 문제(자격 문제), 미군과 카투사의 차별 문제, 카투사병들의 책임감 문제(프로페셔널 문제), 카투사병과 미군사병의 일 분배 문제, 카투사병들의 참여의식 부재의 문제 등이 있습니다.
원인은 크게 카투사병과 미군사병의 근본적인 차이에서 오는 것과 한국과 미국의 (군대)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 있습니다.
이런 차이들로 인해 우리 부대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들의 내용과 원인을 짚어봄으로써, 차후 더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점을 생각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우리부대에서밖에 안 있어봤기에 여기 언급되는 원인들은 우리부대에만 한정됨을 밝힙니다.
그리고 당연히 제 개인적인 경험이 바탕이고, 개방적인 의견임을 확실히합니다.
대부분의 내용은 이미 많이 나왔던 말들이고, 논쟁도 했던 문제이니, 그것을 정리한다는 차원에서 읽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사견이지만 공론의 출발점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주원인 1. 미군은 직업군인이고, 카투사는 징병된 군인이다.
어쩌면 모든 문제의 시작은 여기일지도 모릅니다.
저희는 직업군인이 아닙니다. 그래서 당연히 프로페셔널리즘이 떨어집니다.
여기서 프로페셔널리즘이란 자신의 잘못에 자신이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해야 할 일은 '해야하기 때문에' 시키지 않아도 하는 것입니다.
프로는 잘못을 하면 월급이 깍이거나, 자리에서 잘리거나 피해가 금전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옵니다.
적은 양의 돈이든, 잠시 일을 하는 것이든 돈을 받으면서 하는 일이라면 책임감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직업이기에 해야 할 일은 스스로 합니다. (물론 예외는 있지만 대체적인 성향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카투사의 경우는 월급을 주긴 주지만 강제로 끌려왔습니다.
카투사는 선택했지만, 병역 의무는 선택할 수 없습니다.
징병의 경우에는 책임감이 없다고 해서 개인을 잘라버릴 수 없습니다.
최대한 아무 일 없이 제대를 하게 만드는 것이, 국가라는 고용자의 입장에서는 최선입니다.
그러다보니 개인의 잘못에 집단적인 책임을 묻습니다.
법적으로는 개인에게만 징계를 내리지만 관습적으로는 집단의 책임을 묻고 선임의 책임을 묻습니다.
징병이라도 당연히 책임감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이 선택한 군복무도 아니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책임감을 강요해야 합니다.
국가에 대한 충성이라는 명목상의 '책임감'이 있고, 실제로는 집단 전체에 대한 공식적 비공식적 압박이 개인에게 전가됨으로써 기능합니다.
이 때문에 선후임간의 갈등이 생기기도 합니다.
일부 카투사들이 외박에 집착하고, 일보다는 개인적인 일을 우선에 두다가 갈등이 생길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꼭 해야하는 부대 훈련에 어떻게든 편법으로 빠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미군에 비해 카투사가 더 심한 것 같습니다.
해야 할 일을 당연히 먼저 해야하는 프로의식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프로가 아니기에 적절한 보상과 처벌이 주어질 수 없고 보상은 몰라도 처벌은 한국군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적절히 피드백이 되지 못합니다.
그런데 프로가 아닌 카투사들에게 프로처럼 행동하기를 요구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프로가 아니라고 무책임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한 동기는 우리가 군복을 입고 있기에 우리도 프로라고 저한테 그랬는데, 여기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세미프로 정도는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책임있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 반드시 다른 누군가가 피해를 봅니다. 그리고 그것이 다시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습니다.
주원인 2. 미군은 계급이 올라갈수록 힘들어지지만, 한국군은 계급이 올라갈수록 편해진다.
끊임없이 등장하는 카투사 병장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이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입대하기 전부터 꾸준히 들어온 군대 이야기가 우리의 의식속에 자리 잡아 우리도 그렇게 행동하게끔 합니다.
일반 한국군에서 병장은 거의 왕입니다.
하기 싫은 건 어느거라도 빠져도 되고, 무슨 잘못을 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습니다.
심지어 간부들도 신경을 덜 씁니다.
이 원인도 결국 첫번째 원인과 연결되는데, 병장까지는 징병이고 하사부터는 모병이기 때문에 병장이라는 위치에서 엄청난 지위가 생깁니다.
군인답지 못한 행동(장난스런 복무 태도, 군예절을 어기는 것)도 용서가 됩니다.
예를 들어 만약 여기가 순수 한국군이라면 병장이 밖에서 베레를 벗고 있는 것도, 피티 셔츠를 밖으로 빼서 입는 것도 다 용인될 것입니다. 간부에게만 안 들키면 뭐라고 할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신 낮은 계급의 병사가 그러고 있었다면 아까 말했듯이 군기가 빠졌다는 말을 들을 것입니다.
한국군은 처음 들어왔을 때 군기를 강조하고 갈수록 군기가 빠지는 것을 자연스레 여깁니다.
그런데 미군은 완전 반대입니다. 병장 이상이 되면 지위가 올라간만큼 책임감과 성실성을 요구합니다.
자기 사병은 힘든 일 이후 쉬게 해줘도 자기는 마음대로 쉬면 안 됩니다.
일, 이병일 때는 군 예절에 어긋나는 행동을 해도 잘 모를 수 있다는 판단하에, 혹은 아직 프로페셔널리즘이 생기지 않았다는 판단하에, 지적을 받고 말지만 병장 이상이 그런 행동을 하면 변명이 통하지 않습니다.
미군에게 있어도 NCO(부사관의 개념, 한국군으로 따지면 일부 상병 포함 병장 이상)로의 진급은 엄청난 변화이지만, 그 변화는 프로페셔널리즘의 강화를 의미합니다.
중사는 하사보다 일이 많고, 상사는 중사보다 일이 많습니다.
오피서들도 계급이 올라갈 수록 대체적으로 더 바빠집니다.
일의 양, 책임감, 군인정신이 미군은 프라이빗부터 차례대로 계급이 올라갈 수록 연속적으로 올라갑니다.
이병때부터 모병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국군은 병장까지는 징병이고, 억지로 복무하는 것이기에 병장과 하사 사이에 넘지 못할 갭이 있습니다.
한국군에서 병장으로의 진급은 이 고달픈 군생활에 있어, 끝이 보이는 시기이고, 그동안 고생했으니 보상을 받을 때입니다.
물론 경험자로서 책임감은 커지지만, 하는 일은 급격히 줄어들고, 엄청난 보상이 있습니다.
카투사는 이런 한국군의 습성을 군대 오기 전 이야기로 들어 체화해놓은 상태에서 미군의 환경 속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카투사 병장의 자격과 대우 문제가 발생합니다.
NCO 다운 행동은 하지 않으면서 대우만 바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규정상 동등한 대우를 해야 된다고 주장하지만, 미군에게는 그게 더 모순적으로 보일 것입니다.
한국군이라는 정체성과 미군이라는 환경 사이에서 적절한 절충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이것은 다음에 말씀 드릴 기회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한가지만 말씀드리자면, 단 한번도 겪어보지 않고 말로만 들은 한국군의 관습을 환경이 다른 부대에서 (너무) 그대로 적용하려고 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분명 절충은 있을 것입니다.
주원인 3. 미군은 빠진 자리에 비슷한 계급의 후임자가 오지만 한국군은 병장이 빠진 자리에 이병이 들어온다.
이것 때문에 카투사에게는 중요한 일을 못시킵니다. 왜 카투사한테는 잡일이나 단순한 일만 시키느냐. 그럴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병장이 할 수 있는 일을 시키다가 금방 또 이병이 들어와버립니다.
영어실력까지 고려하다보니 대부분의 섹션이 카투사에게 중요한 일을 마냥 맡길 수 없습니다.
가끔 그런 일을 시키는 섹션이 있는데, 그럴 때 그 섹션에서 일하는 카투사는 이병때부터 엄청 고생하면서 박탈감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차이 때문에 독방문제에서 불리합니다. 카투사의 병장 수는 너무 유동적입니다. 아시다시피 이병이 폭발했다가 그게 그대로 올라가 병장까지 폭발합니다. 어떨 때는 한 두명밖에 없을 때도 있습니다.
카투사 병장에게도 독방을 달라. 주장하기가 그런 것이 정말로 다 못 주기 때문입니다.
카투사에게 일정량을 할당하는 방법도 유동성 때문에 한계가 있습니다.
병장이 별로 없을 때 또 미군의 독방이 늘어나버리면, 스페셜리스트(NCO가 아닌 상병)는 독방을 쓰는데 새로 올라온 병장은 못 쓰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그렇다고 매 달 바뀌는 병장 숫자에 맞추기 위해 다른 카투사 병사나 미군 병사들을 이리 넣었다 저리 넣었다 할 수도 없습니다.
여기에 앞서 말한 카투사 병장의 자격문제까지 겹치면 또 갈등이 생깁니다.
이 원인은 100%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갈등상황에서 양 측 모두 이 점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주원인 4. 카투사의 숫자가 많다.
우리 부대는 카투사병이 미군사병보다 숫자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단순한 양적 이유로 갈등이 많고, 또 구조적인 이유로도 갈등이 생깁니다.
단순 양적 이유는 부딪치는 카투사 수가 많으니 그 중 문제가 있는 섹션이 많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구조적으로는 카투사가 더 부각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서젼 타임 시간(군사 지식 교육 시간)에 보통 카투사들은 소극적입니다.
영어도 영어지만 문화 자체가 먼저 안 나서는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카투사가 훨씬 많은 상태에서 진행이 소극적이 되버리니 그 책임이 카투사에게로 옵니다.
만약 대다수가 미군에 카투사가 소수라면 그냥 묻힐 수 있는 것들입니다.
이와 비슷한 경우가 서젼타임이 아닌 다른 부대 일에서도 발생합니다.
그리고 다른 부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 부대는 미군과 잘 융합되지 못 하는 것 같습니다.
이 또한 카투사의 숫자가 많다보니 우리끼리 뭉치는 경향이 많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카투사는 미군 행사에 너무 참여를 안하려고 한다는 미군의 불만은 저부터도 참여할 용기가 안 나는데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분위기는 분위기니 말입니다.
카투사가 줄어든다고 해서 미군행사의 참여가 늘 것 같지는 않은데, 카투사들끼리 뭉치는 성향이 확실히 덜해지기는 할 것 같습니다.
적다보니 미군의 입장 쪽으로 약간 치우친 것 같다고 스스로 느끼는데, 어떻게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서로가 구조에서 오는 차이, 문화에서 오는 차이를 이해해줄 수 있다면 좋은데, 제가 여기다가 우리 입장의 얘기만 늘어놓는 건 무의미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보니 다소 카투사가 먼저 개선할 수 있는 건 없을까 하는 생각을 중심으로 쓴 것 같습니다.
미군과의 갈등을 무조건 미군의 잘못으로 혹은 카투사의 잘못으로 몰기 보다는, 우리가 우리끼리 얘기할 때도 객관적인 시각으로 접근한다면 문제 해결이 더 쉽게 될 것 같습니다.
우리는 확실히 미군이 아니지만, 일반 육군과 똑같은 사고와 관습으로 복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문제의 원인을 나열하는 수준이었지만, 조금이라도 우리가 처한 상황의 이해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