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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에 갇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습관 그 자체일 뿐이다.

명상서적을 많이 읽던 때가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부터 대학교 1학년쯤 까지인 걸로 기억한다. 주로 오쇼라즈니쉬와 크리슈나무르티의 책을 읽었다. 책을 읽다 덮었을 때의 짧은 시간만큼은 명상을 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 한 4년동안은 명상서적을 읽지 않았다. 명상 서적을 읽을 때만 명상을 하는 게 무슨 소용이냐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명상서적을 읽을 때와 지금처럼 읽지 않을 때, 화나 짜증을 내는 빈도 수나 마음의 여유 등의 차이를 측정할 수는 없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책을 읽는 순간만이라도 명상을 할 수 있었던 게 다행이었던 것 같다. 그 책들을 읽으면서 '존재의 이유'라던가, 깨달음이 어떤 상태인지에 대해서, 추상적인 수준에서나마 추론할 수 있게 되었다. 두 의문에 짧게 내렸던 결론은 "'나'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는다"이고, 깨달은 상태는 범인이 순간마다 느끼는 자각을 불연속이지만 지속적으로 유지한다는 것이다. 그 사이에 어떤 상전이가 있는 것 같은데, 그건 아직 잘 모르겠다. (오쇼라즈니쉬는 자서전에서 매우 구체적으로 상전이의 정체에 대해서 말했지만, 그것이 너무 구체적이라 의심스럽다. 지금 책을 친구에게 빌려줘서 확인할 수 없지만, 가령 45분 이상 명상상태를 유지하면 상전이 된 깨달은 상태가 온다는 식의 내용이었던 것 같다.)

거의 4년만에 정리할 겸 그 때 읽은 책들을 다시 읽고 있다. 처음 읽었던 순서대로 들녂미디어에서 나왔던 The Book by Osho Rajneesh 시리즈 세 권부터 읽고 있다. 이 시리즈는 그리 추천할만한 도서는 아닌 것이 오쇼가 말한 내용을 단편단편 붙여서 편역해 놓은 책이라, 뜬구름 잡는 소릴 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어서이다. 그래도 이 시리즈는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 역시나 뜬구름 같은 페이지들을 술술 넘기면서 그 사이로 간간히 비치는 직사광선 같은 문구들에 줄을 쳤다. (당시에는 책에 절대 줄을 치지 않는 원칙이 있었다.)
그 중 책의 말미에 꼼짝도 할 수 없게 만드는 문구가 있었다. 한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습관을 빼면 너는 존재하지 않는다"이고, 다른 말로 "너는 습관 그 자체"다.


"낡은 습관들은 왜 죽기가 어려운가? 왜냐하면 그대 자신이 낡은 습관들일 뿐이기 때문이다. 습관이 죽으면 '그대'도 죽을 것이다. 그대는 더 이상 어떤 것도 갖고 있지 않다. 그대는 그저 낡은 습관이며 낡은 패턴일 뿐이다. 그대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의 메커니즘이니, 이것이 낡은 습관이 죽기 어려운 이유다. 인간이 존재하기란 매우 드물며, 인간은 사이사이에 간혹 있을 뿐이다."
- '나를 찾으려 애쓰지 말라'(오쇼 라즈니쉬, 장순용 편역), 175p, 들녘


습관과 타성에 몸을 맡기고 있던 중에 그야말로 허를 찌르는 말이다. 나는 습관 그 자체다. 오래전부터 쌓아온 기억들을 끊임없이 되새김질 하는 습관이다. 내가 하루 종일 하는 행동과 생각 중 습관이 아닌 것이 있을까. 저 인용문의 말대로 아주 가끔 습관이 아닐 때가 있을 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계속 습관을 유지하거나, 아니면 헌습관을 새습관으로 바꾸거나. 습관을 바꾸는 것은 지당 어려운 일이지만, 바꿔봤자 새로운 습관을 가지는 것일 뿐이다. 명상을 통해 자각하는 순간, 혹은 자각을 통해 명상하는 순간만이 습관에서 벗어나는 순간이지만, 그것 또한 연습이나 훈련의 일종이 되어버리면 습관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크리슈나무르티는 "당신이 욕망을 느낄 때 욕망을 가진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욕망 그 자체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습관을 행하는 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에고가 곧 습관이다."

선각자들이라고 습관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그들도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시간에 밥을 먹고, 비슷한 말을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들은 반복되는 일을 행하면서도 매순간 그것이 '습관'임을 자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자각하고 있다면 습관은 더 이상 습관이 아니다. 습관적인 생각을 자각하게 되면 그 패턴은 사라지고, 습관적인 행동을 자각하게 되면, 그것은 관찰이 된다. 습관 덩어리일 뿐인 '나'를 더 이상 '나'로 착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모두가 선각자가 될 수 없는 마당에 나 같은 범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을까. 조금이라도 일상을 비틀어보려는 노력과 조금이라도 평소와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려는 노력은 완전하지는 못하지만 세속적인 명상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다. 그 순간만큼은 습관이 아니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