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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함과 익숙함의 낯선 만남, 아빠의 버스를 타다

아버지는 시내버스를 운전하신다. 그러나 한번도 아빠가 운전하는 버스를 타 본 적이 없다. 가까운 곳에서 출발은 하지만 사는 동네를 다니는 버스는 아니기에 탈 기회가 없었다. 내가 매일 받는 용돈은 어디로부터 어떻게 오는 것일까. 한 탕(기점에서 기점까지 한 바퀴를 도는 것을 버스기사들은 '한 탕을 뛰다'라고 말한다)을 도는 데는 얼마나 걸릴까. 어떤 손님들이 아빠의 버스를 탈까. 이런 궁금증들을 해결하고 싶어 아빠의 버스에 올라 한 탕을 뛰어보기로 했다.
어쩌면 최근에 운전면허를 취득하면서 운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일지도 모른다.

버스가 출발하는 기점에 가 미리 버스를 타고 기다렸다. 아무도 없는 시내버스를 내 맘대로 둘러볼 수 있었다. 고개를 들고 광고를 하나씩 보고, 의자 손잡이를 내 집 소파 만지듯 어루만졌다. 운전석 문을 열었다 닫아 보고, 이리저리 뜯어보기도 했다.

드디어 출발.

가족만큼 익숙한 것은 없을 것이고, 버스만큼 자주 이용하는 교통수단도 없다. 그런데 이 두 가지를 묶어 놓으니 낯선 자극이 되었다. 버스를 타는 손님들은 이전의 손님들이 아니었다. 인연이었다. 이 손님들은 아빠를 통해 원하는 곳으로 간다. 아빠의 손끝으로부터 열리는 앞문과 뒷문도 여느 때의 문과는 달라 보였다. 감정이입을 하고 버스를 타고 있으니, 이 험난한 도로를 기다란 버스가 요리조리 차선을 옮겨가며 다니는 것이 신기에 가까워 보였다.

아무도 버스기사는 의식하지 않았고, 예정 되어 있던 생활의 길을 예정 된 대로 갈뿐이라는 표정이었다. 버스를 탄 순간 다른 승객들과 함께 흔들리며, 묶여버린 여정에 발을 붙이고 있었다.

"아저씨, 내립니다." 예정되어 있던 여정의 문이 열리지 않을 때 버스기사는 의식 속으로 들어온다.

아빠의 운전은 생각보다 거칠었다. 정확히 말하면 보통의 버스기사분들과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평소에 승용차를 몰 때는 순하고 부드럽게 운전하시는데, 버스는 그렇지 않았다. '버스'라는 것이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것일까. 그럼 거칠게 운전하시던 다른 기사분들도 다른 차를 몰 때는 그렇지 않을까. 이런 질문들을 던지고 있었다.

갈 때는 운전 석 바로 뒤에 있었지만, 종점을 찍고 돌아올 때는 맨 뒷자리에 앉았다. 한 탕을 뛰는 데는 2시간 30분이 넘게 걸렸고, 종점부터 기점으로 돌아오는 동안 총 60명의 승객이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