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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지 첫 장.



작년에 샀던 원고지 첫 장에 썼던 글이다. 한 두 페이지 쓰다 말았던 것을 다시 꺼내 들었다. 살기위해서 뭐라도 써야겠다. 



첫 장이다. 길고 긴 시간동안의 정보의 축적으로 인류는 이전과 다른 삶을 산다. 개인에게 있어서도 기록은 기억보다 소중하다. 역사의 시작은 기록과 함께 시작된다. 개인에게도 역사가 있다면 그것은 글을 배우고 일기를 쓰기 시작한 후부터다. 말은 아끼되 글은 아끼지 말아야 한다. 400자 원고지를 굳이 산 이유는 여러가지다. 글을 쓴다는 느낌을 갖기 위해, 띄어쓰기의 감각을 익히기 위해, 글의 호흡을 느끼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냥 허세다. 지우고 또 수정한 원고지가 꽤나 멋있어 보이지 않는가. 
기록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두리뭉수리한 감정을 배설하는 것은 올바른 배뇨작업이 아니다. 원고지에 적어가는 글을 보니 거울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드러난 사진을 보는 것 같다. 낯 간지럽다. 
그럼 앞으로 써야 할 것들을 생각해보자. 나를 괴롭히는 문제들, 나를 침잠하게 만드는 문제들을 어루만져 쓰련다. 별로 만지고 싶지 않지만 내게 필요한 것은 스스로의 스킨십일지도 모른다. 오랜 뒤 다시 이 원고지를 받아들었을 때 어떤 부끄러움이나 회한이 들지 모르지만 지금은 부끄러움을 마주 하련다. 아주 은밀한 이야기까지 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최대한 열어두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