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읽은 책 중에 추천하고 싶은 책을 딱 한 권을 꼽으라면 박노자의 '우승열패의 신화(2005, 한겨레출판)'다.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던 문제에 절반 정도의 해답은 주었다.
"왜 한국은 이리도 세계를 국가간의 경쟁의 장으로만 파악하고, 소제국주의적인 열망을 내뿜으며 때늦은 사회진화론에 함몰되었는가. 지배자부터 사회 하층까지의 전면적인 극우화, 승자독식을 벗어난 사회를 상상조차 못하는 상태는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가." 약육강식, 우승열패 사상에의 세뇌, 그 이유에 대해서 궁금하던 차였다.
이 책은 서구의 사회진화론이 아시아로 건너 왔던 그 때, 조선의 개화 지식인들의 머리 속을 파헤친다. 개화 지식인들이 직접 썼던 글을 읽다보면, 우리가 아는 독립운동가들의 절대 다수는 지금 한국의 극우파들과 같이 양육강식을 우주의 진리로 파악했다. 유교가 비판을 받으며, 사상의 빈자리를 사회진화론이 차지해버린 것이다. 물론 그 안에서도 다양한 사상적 스펙트럼이 있었지만, 누구도 사회진화론을 피해갈 순 없었다. 사회진화론의 뿌리인 서구는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다른 사회를 상상할 수 있는 (상상 해야만 하는) 단계로 성숙해졌다면, 식민시대를 겪고 체제경쟁 속에 국가적인 세뇌까지 거쳤던 한국은 오히려 사회진화론적 사상이 더 강해져버렸다. 지금 극우파들의 주장과 거의 차이를 발견할 수 없는 개화 지식인들의 생각은 소름 끼치기까지 하다.
박노자는 사회진화론의 시대적 불가피성을 논하면서도 만해 한용운 등의 지식인들을 통해 그것으로부터의 탈피의 가능성을 찾는다.
다른 사회를 상상조차 못하는 지금의 상태가 계속 된다면, 우석훈이 '촌놈들의 제국주의(2008, 개마고원)'에서 예상한 것처럼, 늦어도 30년 내에 한중일 간의 소제국주의적 충돌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일본은 전쟁의 참상을 겪었는데도 어떻게 다시 극우파가 지배하게 되었을까.)
개화지식인들의 (불가피했던) 사상의 한계를 읽고, 그들의 사상을 변용하여 지배 체제를 공고히 하는 지금의 극우파들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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