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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피만 입힌 서울말

부산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자주 듣는 말투가 있다.
문장은 서울말 문장인데, 억양은 부산 말이다.
어떤 건지 말로 해보라 하면 바로 할 수 있는데, 글로 느끼게 해주는 건 내 능력밖이다.

"어디고?"
억양으로
"어디야?"
를 말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거보다 긴문장도 부산말 억양에 서울말로 말한다.
억지로 서울말을 쓰려고 하는 건데, 그러다보면 부산말도 아닌 것이 서울말도 아닌것이 정말 촌스러운 말투가 된다.

그런 말투를 쓰는 경우는 십중팔구 애인이랑 통화할 때다. 혹은 애인으로 만들고 싶은 사람이랑 통화할 때나.
이성에게는 서울말을 써야지 멋있고, 예쁘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님 연인끼리 사투리를 쓰면 '깬다'고 여기는 걸까.

개인적으로 내가 정말 싫어하는 투다. 쓰려면 제대로 쓰던가, 어설프게 따라하려고 하는 것 말이다.

나도 서울말을 흉내낼 때가 있다. 하지만 그건 서울말을 쓰는 사람과 대화할 때 뿐이다.


어설픈 서울말과 비슷한 게 또 있다.

문장은 한국말인데 중간중간 단어는 영어인 말투.
아니 한국사람한테 한국사람이 강연하는데 웬 영어?
영어에 대한 숭상이 갈수록 커지는 요즘들어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물론 그런 말투가 불가피한 경우도 있다. 이공계에서는 영어가 공용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영어가 소통어이다. 처음 배울 때부터 영어로 개념을 습득한다. 그러니 억지번역된 우리말 용어를 쓰는 것보다 영어 단어를 쓰는게 소통에 도움이 된다.

경영이나 경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학문의 영역이 아닌 곳에서도 그러는 사람들이 있다. 그냥 한국낱말을 쓰면 될 것을 중간중간 영단어를 삽입한다. 어려운 개념도 아닌 정말 쉬운 개념까지 영어로 한다.
그래야지 유식해보인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게 습관이 되다보면 나중에는 한국말 단어를 쓰려고 해도 생각나지 않는다.
가장 편한 모국어를 온전히 못 쓰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영어를 모국어처럼 쓸 리도 만무하다.
 

자신이 촌스럽다고 생각하고, 동경하는 대상을 어설프게 따라하는 것이 진짜 '촌스러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