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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이 아닌 '홀로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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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황동규 시인의 '버클리풍의 사랑 노래'를 읽고 있다.
이 시집은 황동규 시인이 버클리에서의 교환 교수 생활동안 썼던 시들과 한국에 돌아와서 IMF 시대를 살며 썼던 시들이 담겨있다. 시인의 버클리 생활은, 혼자 그리고 또 혼자였다. 물론 만나는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아파트에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았고, 시인은 시를 통해 버클리에서의 혼자 있음을 이야기한다.

내가 느꼈던 시집 전체를 꿰는 컨셉은 '외로움이 아닌 홀로움으로..'이다.
시인은 '홀로움'을 "외로움을 통한 혼자 있음의 환희"라고 말한다.
이윽고 시집의 중반 쯤에서는 '1997년 12월 24일의 홀로움'이라는 제목의 시를 쓰며, '홀로움'에 다다른 시인을 드러낸다.

'외로움'과 '홀로움'.
얼핏 들으면 같은 뜻이지만, 미묘한 차이가 느껴진다. 둘이 아니라 외롭고, 함께있다 없어 외롭다. 그렇지만 우리는 원래부터 혼자다.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는 순간 우리는 혼자다. 엄마의 자궁에 붙어서 양분을 먹으면서 자랐지만, 그건 홀로가 되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
존재의 본질을 찾는 그 기쁨. 존재하지 않는 내가 존재하는 나를 대면하는 그 기분. 홀로 있어도 더 이상 외롭지 않고, 누군가가 없어서 혼자가 아닌 그 자체로 존재하는 홀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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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없이는 살 수 없어' 흔하디 흔하게 내 뱉는 말이다. 부끄럽지만 나 또한 여자친구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물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하는 말이지만, 진정한 사랑을 하려면 홀로 있어도 외로움을 견뎌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지금은 절판 된 작곡가 겸 프로듀서 박진영의 에세이 책 '미안해'에서 이에 대한 글 하나가 있다. 미안하단 말만 남기고 책이 어딘가로 도망가, 정확한 구절은 생각나지 않지만 대강의 내용은 이렇다.

"사람이 그리워 외롭고 죽도록 사랑하고 싶을 때는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배가 고플 때는 맛이 없는 음식도 맛있게 느껴지거든요. 배가 고프지 않을 때 먹어도 맛있는 음식이 진짜로 맛있는 음식입니다. 혼자서도 외롭지 않고 당당히 살 수 있을 때, 그 때 사랑을 찾으세요. 그래야지 정말로 당신에게 맞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꺼에요"

음식은 그 때 배고픈게 없어지면 그만이다. 그러나 사람은 배가 부르다고 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외로워서 사람을 만나는 것이라면, 꼭 그 사람이 아니라 누가 들어왔어도 되었을 것이다. 즉, 사람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사랑을 사랑한 것이다. 혼자여도 외롭지 않을 때, 외로움을 넘어 홀로움에 도달 했을 때 사랑을 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한번도 사랑 한적이 없다면 일단 한번 경험해보는게 먼저일 것 같지만.

서정윤 시인은 자신의 유명한 시집 '홀로서기'에서 사랑은 "둘이 만나 서는 게 아니라 홀로 선 둘이가 만나는 것이다" 고 하였다. 당당히 홀로 선 둘이가 만난다면, 서로에게 주는 상처도, 서로에게 가지는 미련도 적을 것이다.

서로 사랑하는 상태라도 홀로울 수 있어야 한다. 각자가 홀로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워하되 외로워하진 말아야 한다. 나는 아직 홀로움의 경지에까지 이르지 못했다. 다시 만날 때까지 홀로울 수 있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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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을 땐, 무언가를 끊임없이 생각한다. 그 생각을 멈출 수 있다면, 언어를 쉬게 할 수 있다면 그 순간이 곧 명상이겠지만, 일상은 끊임없는 생각들로 가득차 있다. 대부분이 잡생각이지만, 가끔 나와 대화하는 시간도 있다.  어랍쇼님의 블로그에 있던 '침묵은 친구다'라는 글에서는 마지막을 다음 문장으로 맺는다.

"침묵은 고행이 아니라
내 나이만큼 함께한
 친구를 만나는 일이다."


그렇다. 나는 나의 가장 오래된 친구이다. "말이 없어도 감만으로도 서로 이해가 되는 친구는 바로 자기 자신 뿐인 것 같다". 가장 오랜 친구인 '나'와의 대화. 어색하지 않아 편안한 시간. 그것이 홀로움이 아닐까.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물론 편한 상대와 함께 있는 시간도 좋아한다. 그런데 함께 있어도 외로울 때가 있다. 그리고 군중 속의 외로움은 그 정도가 지극하다. 외로워서 사람을 만나는 것이라면, 그 기쁨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혼자 있고 싶어 다른 이를 만나지 않는 것도 진정한 홀로움이 아닐 것이다. 홀로 있든 함께 있든 홀로울 수 있어야 하리라.

맨날 고상한 척만 하는 나는 언제쯤 진실로 홀로움에 도달할 수 있을까.

오늘도 하루가 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