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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성 성격장애>, "내 존재는 당신에 의해서'만' 빛납니다."

우리는 혼자 살 수 없다. 사회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사회와 잘 융합된 개체가 생존과 번식에서 유리할 뿐 아니라 행복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나를 볼지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상대방의 입장에서 자신을 모습을 바라보는 능력을 진화시켰다. 상대방의 시선을 신경쓰는 것은 분명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만약 거기에 함몰되어 모든 행동을 남의 관점을 생각하며 취하며 자신의 감정과 자존감이 남의 평가에 의해서만 좌우 된다면 어떠할까. 


배우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 배우로서 성공하면 많은 관심과 시선을 받는다. 배우 뿐만 아니라 연예인들은 자신의 이미지가 곧 자산이다. 그래서 미디어 속에서 자신의 실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가끔씩 사고를 치지 않는 한! 평소 미디어에서 보던 모습과 다른 행동을 한 연예인을 볼 때마다 우리는 크고 작은 충격을 받곤 한다. 어찌됐든 연예인들은 대중에게 (거짓일지라도)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이 비지니스이기 때문에 그들이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연예인이 아님에도 만약 하루 24시간을 남의 시선에 신경을 쓴다면? 미쳐버리지 않을까? 


오늘은 남의 시선을 생각하며 남의 평가에 자신의 가치를 맡기는 '연극성 성격장애'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학지사에서 나온 이상 심리학 시리즈 중 <연극성 성격장애>에서 주요 내용을 참고했으며, 인용한 부분은 따로 표시하였다.


'연극성 성격장애'를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대신 연극성 성격장애를 겪는 사람들의 특징들을 나열하겠다. <연극성 성격장애>에서 그 내용을 가져왔다.



행동 영역

  • 마치 연기를 하는 것 같은 행동
  • 이성에 대한 유혹적인 행동


감정 영역

  • 지나치게 풍부한 감정. 그러나 기복이 심하고 깊이가 없음. 
  • 마음 깊은 곳에 흐르는 부정적인 감정
  • 반복적인 시기와 질투, 적개심
  • 사랑과 인정을 받고 싶은 필사적인 욕구
  • 지나친 예민함과 피해의식
  • 어린아이 같은 의존요구 


사고 영역

  • 인상에 근거한 모호한 상황 지각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것을 기억하는 것에 약함)
  • 이분법적 사고
  • 정서적 추리 - 자신에게 느껴진 감정을 자신의 생각과 해석의 증거로 삼는 사고의 전개방식. 예) '저 사람이 나에게 인사를 안하고 지나갔는데 내가 열받은 것을 보니 저 사람이 인사를 안한 것은 나를 무시한 것임에 틀림없어'


대인관계 영역

  • 상대방의 인정을 통해 자기가치감을 확인. 
  • 과도한 친절과 배려


위와 같이 정신 장애의 특징들을 나열하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도 해당된다고 오해한다. 저 특징들 중 몇 개는 누구나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장애냐 아니냐의 구분은 쉽지 않은 문제다. 다만 다음과 같은 경우라면 장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또한 책에서 가져왔다. 


  1. 위와 같은 성격 특성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난다. 
  2. 행동의 정도가 주변 사람들에게 도가 지나치다고 판단된다. 
  3.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4. 위와 같은 성격 특성 때문에 학업이나 직업을 행하는 데 있어 방해가 되고 갈등을 유발한다. 
  5. 본인이 그러한 성격 특성 때문에 힘들고 괴로워야 한다. 


쉽게 말해 주변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말할 정도로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나타나 일상생활에 문제를 일으키면 장애라고 할 수 있다. 


연극성 성격장애 책을 읽은 이유는 필자 스스로가 이 장애를 겪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앞서의 장애의 정의에 의하면 '장애'의 수준까지는 아니라고 판단되지만 내가 겪는 괴로움과 고통은 일상적인 스트레스를 넘어선다. 연극성 성격장애자들은 남의 평가에 지나치게 민감하다. 나는 시험 점수 하나 하나에 기분이 롤러코스터를 탄다. 누구나 시험 점수가 잘 나오지 않으면 기분이 안 좋지만 나는 하루 종일 그 생각에 다른 일을 못하며 몇날 며칠 아쉬운 실수가 생각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성적으로 나를 평가할 것이라는 과대망상에 잡힌다. 


연극성 성격장애를 앓는 사람, 혹은 거기에 가까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관심과 칭찬이 영양분이다. 혼자서는 도저히 자신의 가치를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싸이월드의 조회수에 감정이 과도하게 반응하며 페이스북에 '좋아요'나 댓글이 달리지 않으면 글을 지우고 싶어한다. 별 거 아닌 것에도 남의 좋은 평가를 받는다면 기분이 금방 좋아지며 설사 그것이 예의상 한 말이었다고 해도 상관없다. 주변 반응에 민감하기 때문에 감정의 기복이 심할 수밖에 없다. 내가 인정을 받아야 하기에 다른 사람이 인정받는 꼴을 못 본다. 경쟁심과 시기심이 강하고 자신이 더 인정받기 위해 어떨 때는 교묘하다. 


이들은 긴 더듬이를 세우고 끊임없이 다른 사람의 반응을 관찰한다. 기본적으로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기에 다른 사람의 행동을 자신과 연관시켜 생각할 때가 많다. 상대방의 감정을 민감하게 잘 캐치한다(이건 분명 장점이다!). 그리고 거기에 맞춰 자신의 행동을 설정한다. 예민하게 판단하기에 오류도 잦다. 그리고 상대방의 감정이 자신 때문이라는 과장된 생각에 잘못된 행동설정을 할 때도 있다. 상대방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배려해주며, 작은 실수에 지나치게 미안해 한다면 연극성 성격일 수 있다. 미안한 일을 저질러서 상대방이 자신을 싫어하면 어떡하나! 그것은 연극성 성격장애자들에게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다. 그런 불안감에 사람들 앞에서 어색하거나 의아한 행동이나 말을 뱉을 때도 있다.


이런 연극성 성격장애는 치료자도 다루기 어렵다. 왜냐하면 치료자를 "전지전능한 구원자처럼 생각하고 자신의 문제를 다 해결해 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치료자가 어떠한 형태로든 환자에게 실망하는 모습을 보이면 그것의 10배로 환자는 실망하기 때문이다. 치료자로부터도 관심과 애정을 받으려는 욕심이 치료를 어렵게 만든다. 


그런데 사실 의학적인 치료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수준까지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자가 치료법은 없을까. 자신이 연극성 성격이라는 것을 자각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 우선적으로 자기 자신의 감정의 기복을 만드는 인지 도식이 어떠한지 판단해야 한다. 책에 따르면 연극성 성격장애자들은 아래와 같은 인지 도식을 대표적으로 가지고 있다. 


  • 내가 행복하려면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을 가져 주어야 한다. 
  •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거나 좋은 인상을 심어주지 못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 사람들이 나를 무시한다면 그건 너무나 끔찍한 일이다.  

이런 인지 도식부터 빨리 '인지'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주지 않더라도 파국은 오지 않는다. 싸이월드 조회수가 별로 안 높더라도 나는 몹쓸 인간이 아니다. 페이스북에 댓글이 안 달리고 내 트윗이 리트윗이 안 되더라도 그건 나를 무시하거나 싫어해서가 아니다. 제발 그런 생각부터 버리자. 당연히 한번에 버려지지 않지만 하나씩 그런 사고에 빠지는 자신을 건져 낸다면 그동안 쓸데 없는 걱정에 자신을 소비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당신이 생각하는만큼 당신에게 관심이 있지 않으며, 당신이 생각하는만큼 속이 좁지 않다. 한 두 번의 악의 없는 실수로 상대방은 당신을 미워하거나 애정을 철회하지 않는다. 당신의 지나친 미안함의 표현과 배려가 오히려 부담스러울 뿐이다. 상대방이 당신에게 신경을 별로 쓰지 않으니 당신도 사람들의 시선에 시선을 덜 쓸 필요가 있다. 제에발! 

나도 자가치료를 위해 노력중이지만 단번에 뚝딱될 일은 당연히 아니다. 무의식 중에 빠지는 도식들을 인지하고 남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지 않도록 대담해질 필요가 있다. 물론 스스로는 대담해졌다고 대견해하겠지만 주변 사람들은 신경을 쓰지 않으니 어차피 느끼지도 못할 것이다. 타인 앞에서 타인의 관심과 애정을 받으려 평생을 연기하며 산다는 것은 정말 고통스럽다. 그러다 관심이라도 떨어진다고 느끼면 세상이 끝날 듯 우울해진다. 

혹시나 자신이 연극성 성격장애라고 생각된다면 조금만 더 스스로를 위해 노력하자. 스스로를 위한 노력은 남에게 잘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남의 평가에도 무너지지 않을 자존감을 세우는 일이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자학이 그 일을 어렵게 하겠지만 노력해야 한다. 누가 나를 강남스타일로 생각할지 갓난스타일로 생각할지 신경쓰지 말고 그냥 오빤 오빠 스타일대로 행동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 기복을 인지하고 그것이 불필요한 생각의 증폭 때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 음의 피드백을 주도록 해야 한다. 

연극성 성격장애자들은 자신의 생각을 추상적이고 감상적으로 표현을 잘하며 상대방의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쉽게 사람들을 잘 사귄다. 반면에 그 관계가 피상적이기 때문에 오래가지 못한다. 오래 지속되는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누구 앞에서의 누군가여서는 안 된다. 바로 자신이어야 한다. 

나는 내 삶의 주인공이지만 관객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참고 문헌

김정욱, 한수정, <연극성 성격장애>, 학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