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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강에 뿌리는 기억의 조각들

다른 블로그에도 다 있는 기능이겠지만, 텍스트큐브는 등록일자를 설정할 수 있다.
블로그라는 말이 원래, 새로 쓴 글이 맨 위로 올라간다는 뜻에서 왔듯이,  
과거의 시각으로 등록일자를 설정하면, 그 날짜에 맞는 위치로 등록된다.
그 시각의 앞뒤로 썼던 글 사이에 놓인다.
예전에 썼던 글이나 새로 쓴 글 중에 블로그의 맨 윗자리를 차지하기에는 너무나 허접하고 쪽팔리는 글들은 과거로 밀어버린다. 지금 feed에 15개의 최신글이 등록되니 그 이전으로 날짜를 밀어버리면, 리더기를 통해서도 볼 수 없다. 그런 글들 또한 내 기억의 일부이고 블로그는 내 보조기억장치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올리는 것이다. 타자의 입장에선 허접하기 짝이 없는 글일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그래도 정이 가는 글들이기 때문에.
그 내용이 너무 암울하거나, 너무 솔직하다면 비공개로 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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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쓰게 될 '그사람'에 관한 글들은 미래로 밀어버릴 예정이다. 이틀 뒤, 일주일 뒤, 혹은 한달 뒤, 길면 세달 뒤까지 미루어버릴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그런 글들은 '그사람'을 더 힘들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 또한 '그사람'이 그 글을 봤을까, 보고 기분이 어떨까 조마조마하는 마음을 느끼고 싶지 않다. '그사람'이 언제까지 내 블로그에 들어올지 모르지만(이미 그 날부터 들어오지 않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블로그에 들어오는 횟수가 점점 뜸해지면서 결국 내가 기억에서 잊혀질 때까지 내 지금의 느낌들을 다 퍼뜨려 놓을 것이다. 도저히 '그사람'에게 보여주기엔 원치 않은 글은 아주 미래로 밀어버릴 것이다.

그런데 미래로 감정을 숨기는 것에 있어 한가지 염려되는 점이 있다. 등록일자는 공개일자이다. 관리자인 내가 블로그에 접속했을 때는 가장 미래로 해놓은 글이 항상 첫 페이지 가장 위에 있을 것이다. 그 날짜가 지날때까지 내 블로그의 첫글이 될 것이다. 로그인할 때마다 그 때의 감정을 떠올리게 해 오랫동안 날 괴롭힐지도 모른다. 실제로 미래에 쓴 글까지 더해지며,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뒤섞여 시간의 강 속에서 허덕이게 할지도 모른다. 바닥이 깊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