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입견은 색안경이라는 말과 함께 부정적인 의미로 쓰일 때가 많다. '버려야 할 것', '그릇된 판단을 이끄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것은 선입견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자신의 관점에 의존함으로써 사물의 새로운 속성을 보지 못해 실제로 그릇된 판단을 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사람과의 관계에서 그 사람을 제대로 만나보지도 않았으면서 자신의 선입견대로 판단하는 우를 범할 때가 많다. 누군가가 자신을 선입견에 따라 마음대로 판단할 때만큼 기분나쁠 때도 없다.
자신의 선입견을 항상 의식하며, 사물이나 사람을 사실과 다르게 인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할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쉽지가 않다. 선입견을 완전히 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쩌면 필수적이기까지 하다. 선입견이 효율적인 정보처리를 돕기 때문이다.
"대인관계에서 처음에는 상대방이 내게 적대적인지 우호적인지, 믿을 만한 사람인지 아닌지에 대해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그가 적대적인 언행을 했을 때 넋을 놓고 있다가는 그냥 당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런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 나름의 비책을 세워두게 되는 데 그것이 기억 속에 저장된 데이터베이스다. 처음으로 어떤 사람을 만난 뒤 받은 첫인상, 몸짓 등 대분류에서 소분류까지 일련의 정보처리와 분류 과정은 이 데이터베이스에 따라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자동적으로 일어난다. ...... 하나하나의 개인을 각기 다르게 받아들이기보다 갖고 있던 경험적 지식을 토대로 만든 묶음으로 분류하여 판단하는 것이 대체로 실수를 줄이고, 기본적 대응과 원칙을 수립하는 데 효율적"이다. 1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자기소개를 할 때, 자신을 분류하는 여러 항목들을 나열한다. 상대방은 그 나열을 통해 쉽게 대분류에서 소분류로 이어나가며 그 사람의 사회적 정체성을 규정짓는다.
언급하는 정체성의 내용은 만나는 상황에 따라 달라지지만, 공통점을 찾아냄으로써 그 사회에 어떤 사회적 가치가 중요하게 여겨지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대학교에서 신입생 소개를 한다. 자신이 새로 입학 했음을 다시 한번 알린 뒤, 자신의 지역, 출신고등학교, 재수나 삼수를 했다면 그 여부를 말한다. 여기에 취미와 특기가 곁들여진다.
군대에서 신병이 자기 소개를 한다. 이름을 말하고, 나이를 말한다. 출신지역을 말하고, 대학교를 다니다 왔으면 다니던 대학교와 전공을 말하고 아니면 직업을 얘기한다. 가족관계를 말한다. 그리고 취미와 특기 등을 말한다. 본인이 먼저 말하지 않으면 위에 언급된 내용들에 대한 질문이 들어온다.
공통점을 찾아내면, 나이, 지역, 출신학교(대학교)는 반드시 등장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국사회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가를 알 수 있는데, 나이를 통해 연령에 따른 위계서열을, 지역을 통해 지역주의를, 출신학교를 통해 학벌주의를 확인할 수 있다.
(굳이 더 따지고 들자면 이름을 말할 때 우리도 모르게 가부장독재를 현시한다. '성'을 붙임으로써 자신의 족계의 남성 성씨를 말하는 것이다. 양부모의 성을 모두 붙이는 사람도 있고, 성을 떼버린 사람도 있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에 가부장독재를 떼어낼 수 있다)
나이가 얼마인지, 무슨 대학을 다니다 왔는지, 전혀 중요하지 않은 자리에서도 밝히는 경우가 많다. 나이를 통해 위계를 정하고, 대학을 통해 그 사람의 사회적 위치를 가늠한다. 지역이 우연히 맞으면 하나의 끈을 또 만들 수 있다 .우연히 출신 고등학교까지 같다면 금상첨화다.
한국에서는 특히 '사회적 위치'나 '출신배경'에서 데이터베이스(선입견)을 많이 만들어놓는데, 이것을 실제에 적용하면서 그 효과는 더 증폭된다. 즉, 몰랐으면 없었거나 적었을 효과가 선입견을 통해 생기거나 증폭되는 것이다.
특히 그 중 가장 큰 선입견의 효과가 있는 것이 출신학교다. 관심없던 사람이 서울대 나왔다는 걸 아는 순간, 그 사람이 하는 말이 달라보이고 그 이후로는 계속 서울대라는 꼬리표가 달린다.
선입견은 필요에 의해 생성되지만, 한국에서의 선입견에 따른 사람의 분류는 부정적인 면이 크다.
앞서말한 분류기준은 자신의 경험에서 축적된 데이터베이스를 따르는 것(개인적 선입견)이 아니라 사회에서 주입되어 체화된 습속에 의한 것(사회적 선입견)이다. 개인이 자신의 경험으로 선입견을 가지는 것이야 뭐라고 할 수 없지만, 같은 부류의 사람을 경험해본 적도 없고, 타인을 만나본 적도 없는데 사회에서 주입된 방식대로 사람을 분류하면, 판단에 대한 유연성이 결여된다. 여러 스펙트럼의 사람들에 따라 분류가 형성되던 시기를 지나 역으로 분류가 그 사람의 스펙트럼을 구속한다.
유리한 조건을 갖춘 사람은 자신의 조건을 말함으로써, 상대방의 (사회적)선입견에 호소할 수 있다. 반대로 내세울 조건이 없는 사람은 자기 소개할 때 위축이 된다.
일상적인 자기 소개 '나이가 몇이고, 어느 학교를 다니고, 군대는 갔다 왔고' 등을 얘기하지 않고 자기소개를 하는 방법을 고민한다. 하지만 그런 정체성들을 빼고는 나를 간단히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정말 없다. 통상적인 사람의 분류가 너무나 익숙해져서 내 자신을 다르게 표현하는 방법을 모른다.
나를 분류하지 않고 나를 표현하는 방법을 찾는 중이다. 참신하고 세련된 분류라도 좋다.
- 하지헌, "소통의 기술", 미루나무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