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심리학 관련 책에서 고전적으로 등장하는 문제가 있다.
한 쪽 면에는 알파벳이 있고 다른 한 쪽 면에는 숫자가 적혀 있는 카드가 있다고 하자.
"카드의 한 쪽 면에 모음이 있으면 다른 쪽 면에는 짝수가 있다."는 규칙이 참인지 거짓인지 증명하기 위해서 아래의 네 카드 중 어떤 것을 뒤집어야 할까.
ⓐ ⓑ ② ③
(데이비드 버스, <마음의 기원> 2판, 나노미디어, 386페이지)
논리 훈련을 받지 않았거나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면 ⓐ와 ②를 뒤집어 보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답은 ⓐ와 ③이다. ⓐ를 뒤집어 보아야 함은 명확하다. ③을 뒤집는 이유는 "참 명제의 대우는 참이다" 라는 사실로 명제의 진위 여부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대우 명제를 확인해 봄으로써 원래의 명제가 참인지 거짓인지 알 수 있다. 대우가 거짓이라면, 본래의 명제도 거짓이다. 1 사실 ②를 뒤집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모음이 나온다면야 확신을 더 높일 수 있겠지만 설사 자음이 나온다고 하여도 위 명제는 여전히 옳을 수 있다. 그러니 ②를 뒤집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럼에도 왜 사람들은 ⓐ 와 ②를 잘 뒤집는 것일까(나도 처음엔 ⓐ 와 ②를 뒤집었다). 사람들이 논리력이 부족해서일까. 일견 맞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니다. a, b, 2, 3 같이 추상적이던 문제를 구체적인 상황으로 바꿔보자.
"당신은 술집의 경비원이고 당신의 임무는 미성년자가 술을 마시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때 당신은 다음과 같은 규칙을 검증해야 한다. "어떤 사람이 술을 마시면 그는 20세 이상의 성년이어야 한다." 당신은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네 명의 사람이 미성년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한 사람은 맥주를 마시고 한 사람은 소다수를 마시고 있다. 한 사람은 25세이고 어떤 사람은 16세이다. 이 때 누구를 확인해야 할까?" (같은 책, 387페이지)
이 문제는 쉽게 풀 수 있겠는가? 앞의 문제와 대응시켜보자.
ⓐ - 맥주를 마시는 사람
ⓑ - 소다를 마시는 사람
② - 25세 사람
③ - 16세 사람
앞서 ⓐ와 ②를 뒤집어 본 것은 맥주를 마시는 사람과 25세 사람을 뒤집은 것과 마찬가지다. 혹시 그렇게 뒤집은 사람이 있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맥주를 마시는 사람과 16세 사람을 정확히 지목했을 것이다.
이렇게 문제를 바꿔 놓으면 왜 쉬운 것일까. 혹시 일상에서 우리가 겪는 문제로 바뀌어서, 즉 상황이 익숙해졌기 때문일까. 후속 실험 결과는 그것이 핵심이 아님을 말한다.
"당신이 결혼을 했다면 이마에 문신이 있어야 한다"
"당신이 망고 열매를 먹으려면 키가 육피트가 넘어야 한다"
위 두 상황은 익숙한 상황은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정답률은 높았다.
그럼 혹시 추상적인 문제와 구체적인 문제의 차이에서 오는 것일까. 사실 <마음의 기원>에서는 추상적 문제와 구체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존재하는 차이를 명확히 설명하지 않고 넘어간다. 대신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람들이 이러한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인간은 속임수를 쓰는 사람을 탐지하도록 특별하게 기획된 심리적 매커니즘을 진화시킨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추상적으로 문제를 내면 맞추기 어렵거나 금방 맞추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구체적으로 냈다고 항상 잘 맞추는 것은 안다. 다음과 같이 문제를 바꿔보자.
앞서의 문제 중 하나를 "결혼을 한 사람은 이마에 문신이 있다." 로 바꿔보자. 이렇게 바꾸면 (순전히 필자의 추측이긴 하지만) 정답률은 떨어질 것이다. 이번에는 결혼을 한 사람과 이마에 문신이 있는 사람을 고르는 사람의 비율이 올라갈 것이다. 왜 그럴까?
일단 지시적 추론과 의무적 추론을 구분해야 한다.
의무적 추론(deontic reasoning)이란 사람이 해서는 안 되거나, 해야 하거나, 혹은 해도 되는(예를 들어 술을 먹어도 될 만큼 나이를 먹었는가?) 것에 대한 추론을 말한다. 의무적 추론은 무엇이 옳고 그른 지를 추론하는(예를 들어 나무 뒤에 정말로 호랑이가 숨어 있는가?) 지시적 추론(indicative reasoning)과는 대조를 이룬다. 그 동안의 연구에 의하면 인간은 의무적 규칙에 관한 추론을 할 때는 규칙을 위반하는 자를 찾으려는 전략을 채택한다. 예를 들어 "미성년자는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는 의무적 규칙을 평가할 때 사람들은 미성년자 같은데 술을 마시고 있는 사람을 찾으려고 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지시적 규칙을 평가할 때는 지시적 규칙을 확증할 수 있는 사례를 찾으려고 한다. 예컨대 "북극곰은 모두 털이 희다"는 지시적 규칙을 평가할 때는 털이 희지 않은 곰을 찾으려 하기보다 털이 흰 북극곰을 찾으려고 한다. ... 이렇게 다른 두 가지 추론이 세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들에게서도 나타난다는 사실은 이 두가지가 믿을 만한 매우 신뢰로운 서로 다른 추론적 능력임을 시사한다(Cumings, 1998). (같은 책, 514페이지)
책에서는 뒤에 설명한 저 두 추론 방식과 '사기꾼 탐지 매커니즘'을 연결시켜 설명하진 않지만 아마 그건 저자가 실수로 빠뜨린 것 같다. 명제의 추상성 구체성에 더해서 명제가 지시적인지 의무적인지가 정답률에 큰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사회적 계약을 어기는 사람을 탐지하도록 특별하게 기획된 심리적 매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비교문화적으로도 입증이 되었으며, 뇌 손상 환자들을 통해서 임상적으로도 입증이 되었다(같은 책, 388페이지). 우리는 사회적 계약을 맺고 규칙을 정한다. 그 말은 들키지 않게 계약을 어길 수 있다면 많은 이득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몰래 의무를 저버리는 유혹을 항상 받게 된다. 그것이 성공한다면 계약을 지키는 사람만 손해다. 계약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탐지하는 능력의 진화가 필수적이다. 인류의 조상은 무리를 이루고 살며 항상 개인의 충동을 사회적 상호작용 속에서 묶어두어야 하는 문제에 직면했으며 자기만 호구가 되지 않기 위해 사기꾼을 탐지하고 잡아낼 수 있었던 조상이 생존과 번식에 유리했다. 물론 현대사회에까지도 규칙을 어기는 사람과 이를 잡아내는 사람간의 공진화는 계속 되고 있다.
- "A면 B이다."라는 원래의 명제가 참이라면 "B가 아니면 A가 아니다."라는 대우 명제 또한 참이다. "B이면 A이다."는 '역'이며, "A가 아니면 B가 아니다."는 '이'라고 한다. 원래의 명제가 참일 때 대우도 항상 참이며 대우가 참이면 원래의 명제도 참이다. 즉 원래의 명제가 참인지 쉽게 판단이 서지 않을 때는 대우 명제의 진위를 살펴봄으로써 원래 명제의 진위를 판단할 수 있다. 역과 이는 원래 명제의 진위 판단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원래 명제의 진위 여부에 상관없이 역과 이는 참 또는 거짓이 될 수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