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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무는 흔적들

아직 지갑 속에 있는 사진들을 보면 주위 사람들은 아직 잊지 못했냐고 묻는다. 사진이 들켰을 때, 물을 것을 예상하고 어떻게 대답해야 되나 머리를 굴리지만, 대답은 항상 '때가 되면 잊혀지지 않겠습니까.'이다.
굳이 잊으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 원태연의 시처럼 생각나는 것보다 잊혀지는 슬픔이 더 큰 법이다. 아직은 가지고 있는 것이, 내 정신건강에도 좋다. 언젠가는 아직도 사진이 지갑 속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무심히 손가락을 비집어 넣어 그 사진을 빼 낼 것이다.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그사람의 블로그를 아직 갈피표에서 지우지 않았다. 이건 뭐 아직 잊지 못해서나 기억하고 싶어서나 그런 이유가 아니다. 그사람은 사진을 잘 찍는다. 내가 사진에 관해서는 문외한이라 실력이 어느 정도에 위치하고 있다고는 말 할 수 없지만, 내가 보기에는 정말 잘 찍는 것 같다. 그래서 한 사람이라도 더 그사람의 블로그를 봐줬으면 좋겠다. 혹시 그 중에 사진의 고수가 있다면, 그사람이나 그 사진의 고수에게 서로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말이다. 내 블로그를 통해서 그사람 블로그로 넘어가는 사람이 부산에서 눈오는 날 만큼이나 적을 것 같긴 하지만, 기회를 조금이라도 열어두고 싶다.
그리고 갈피표에 링크시켜 놓으면 내가 그사람 블로그를 찾아가기도 편한다. 아직은 계속 찾아간다(들어갔다는 흔적은 지우면서). 그사람이 새로운 사람이 생겨 그 새로운 사람의 사진이 올라오거나 그에 관한 이야기가 올라온다면 알아서 거부 반응이 와서 안 찾아가게 될 것이다. 나는 사실 그사람도 내 블로그를 계속 봐줬으면 좋겠다. 친구에게도 말했지만 그사람이 더 이상 내 블로그에도 들어오지 않는 사실을 어떤 방식으로든 알게 된다면 나는 정말 미쳐버릴 것이다. 그런데 실정은 그사람이 내 블로그에 오는지 어떤 방식으로든 알 수 없다. 그냥 그렇게 믿는 것이다.

볼펜으로 쓴 글을 화이트로 지워도 뒷면으로 흔적은 남고, 연필로 글을 쓰고 지우개로 지워도 연필의 자국이 남고, 컴퓨터에 글을 썼다 지워도 역시 음각처럼 흔적이 남는다. 애써 지우려 할 필요는 없다. 알아서 잊혀지거나 덮어지거나 할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