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리더십의 새로운 정의

카투사 신병이 대구 지역에 자대 배치를 받으면 며칠 뒤에 신병 통합 교육이란 걸 받았습니다.
보통은 2박 3일 동안 하는데 제가 할 때는 현충일이 껴있어, 1박 2일로 축소하여 받았습니다.

대구 지역(Camp Walker, Camp Henry, Camp Carroll) 으로 배치 받은 신병들이 모두 모여, 강의를 듣고, 함께 운동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아직 부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마음이 불안할 때, KTA에서 같이 지냈던 동기들을 만날 수 있어 기대되는 시간이죠. 같이 모이면 너네 부대는 어떻니 우리부대는 어떻니 얘기를 나눕니다.

어쨌든 그 교육 기간 중 받은 강의 중에 또렷하게 기억하진 못하지만, 제 생각을 흔든 강의가 하나 있어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네 분 정도가 강의를 하셨는데, 그 중 한분의 강의였습니다. 죄송스럽지만 성함도 기억이 안 나고, 어떤 직책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강의의 주제는 대략 2년 동안 어떤 마음 가짐으로 군 복무를 할 것인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강의 내용 중 리더십에 관한 것도 있었습니다. 강사분께서는 리더십을 설명하기 위해, 도식을 하나 그리셨습니다.
Person, People, Purpose, 세 단어를 삼각형 모서리에 두고 리더십에 관해 설명하셨습니다.
정확한 문장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리더십이란 Person(개인)이 특정한 Purpose(목적)을 가지고, People(집단)을 움직이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중에서 Purpose가 제일 중요하며,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끄느냐에 따라 리더십의 질이 결정된다고 하셨습니다.

기억의 한계로 조금 작위적으로 고친 것이긴 하지만, 어떤 내용이었을런지는 다들 이해하셨을 겁니다.

저는 리더십이 정말 없습니다. 학생 식당에 세명이서 밥을 먹으러 갔다고 칩시다. 저는 제가 제일 먼저 밥을 받는다면, 어느 자리에 앉을지 몰라 두리번 두리번 거리다가, 뒤에 따라오는 친구가 자리를 앉으면 그 옆에 앉습니다. 그냥 아무데나 앉아도 될텐데, 혹시나 잘못된 선택을 할까봐 결정을 못하는 것입니다. 제가 어느그룹의 장을 맡아서 잘 된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극단적으로 우유부단한 성격 때문에 저는 좋은 리더가 되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카리스마가 있는 것도 아니고, 유머나 재치가 있는 것도 아니죠.

요즘은 어딜 가나 리더십을 강조합니다. 어느 대학교나 서로 리더를 양성한다고 난리입니다. 어차피 리더가 될 사람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데, 사회는 모두가 리더가 되길 바라죠. 저는 그게 싫었습니다. 사람마다 위치가 있는데 말이죠.

그것이 불합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열등감을 느꼈죠. 왜냐면 저는 노력해봤자 사소한 리더십의 기술 정도밖에 체득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든든하고,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사람들이 많이 부러웠죠.

그런데 그 강의를 듣고, 저는 리더십을 다르게 정의할 수 있었습니다.

리더십이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 이상을 감동시킬 수 있는 능력이라고.

'감동'이라는 단어를 풀어서 해석하면 어떻게 되나요. '느낄 감' 자에 '움직일 동'이니, 마음이 움직인다는 뜻이지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감동을 줘야 한다는 것은 "A는 A다" 라는 말처럼 당연한 것이 되겠네요.

물론 마음이 움직인다고 해서 몸이 따라 움직일 것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마음이 움직인 뒤에라야 몸이 움직여야지, 계산에 의해서 몸이 움직였다면, 진정한 리더십이 발휘되었다고 할 수가 없겠지요.

아무튼 이렇게 리더십을 정의하고 나니, 리더십의 범위가 훨씬 광범위해졌습니다. 저에게 리더십은 이제 더 이상 CEO나 군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게 됐습니다. 감동을 주는 음악가도 리더이고, 시나 소설로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도 리더입니다. 영화나, 방송, 뮤지컬을 만드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구요. 뿐만 아니라, 선행으로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사람도 역시나 리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면, 그 사람의 생각을 따르게 되고, 감동을 받은 뒤라면, 그 사람이 하는 말이 달라 보일 것입니다. 그래서 영화배우나, 연예인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영향을 많이 미치는 것이구요.

한 사람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면 그래서 그 사람이 행동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리더십이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리더십을 새로 정의한 뒤 저는 어떻게 하면 다른 이들을 감동시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그들을 이끌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나는 사회가 원하는 리더가 아니라는 열등의식을 버리고,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으려고 합니다.

앞에 말했듯이 모든 사람이 리더가 될 필요도 없고 될 수도 없지만, 남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리더십이라면 모두가 노력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