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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토론준비 "가치는 어디로 가는가?" 4부 4장 정리

본 글은 독서토론(2009.3.25)을 준비하기 위해 작성했던 요약글이다.


"가치는 어디로 가는가?"[각주:1] 4부 4장의 내용은 우주의 미래와 우리와의 관계를 다룬 내용이다.
사실 4부 4장은 그 앞의 다른 장들보다는 현실에서 동 떨어진 주제이다.
시간의 척도가 인생을 넘어서고, 역사를 넘어서고, 진화까지 넘어서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칫하면, 현실적인 가치들을 재쳐두고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하는게 아닐까 걱정이 된다.
그러나 인생을 살아가면서도, 가끔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은 죽음의 순간을 상상하는 것이 삶에 이롭듯이, 언젠가는 반드시 올 먼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주의 미래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4부 4장은 세 편의 글로 이루어져있다.


제 4장
우리는 어디로 향하는가?
우주의 미래와 마주한 인간



우주의 미래(ㅡ빅뱅일까, 빅 크런치일까?) - 트린 슈완 촨

트린 슈완 촨은 우주의 탄생과 죽음에 대해서 말한다. 우주는 빅뱅으로 생겨났다는 것이 정설이다.

"우주는 150억 년 전에 극도로 작고 뜨겁게 응축된 한 지점에서 탄생했다. 거대한 폭발이 발생했고, 그 폭발의 에너지가 ... 시간과 공간을 창조하면서 우주를 이루는 물질적 내용물을 탄생시켰다."

그런데, 우주의 미래에 대한 예측은 두가지 갈래가 있다. 하나는 빅뱅 때의 폭발력으로 영원히 커지면서 에너지를 소진해 열죽음상태에 이르는 것이고, 하나는 빅 크런치라는 빅뱅 이전의 응집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두 갈래 중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지는 우주 전체의 중력의 힘이 얼마나 큰지에 달려있다.

"빅뱅의 최초 폭발력과 우리를 지구의 중심으로 끌어당기는 중력 사이에는 영원한 대립이 존재한다."

"우주의 밀도가 임계 밀도보다 ... 더 크다면, 우주는 빅 크런치를 겪게 될 것이다(닫힌 우주). 만일 우주의 밀도가 더 작다면, 우주는 영원히 팽창하게 된다(열린 우주)"

여기서 "임계 밀도 ... 는 입방미터당 세 개의 수소 원자가 있는 밀도에 해당한다. ... 이것은 인류가 지구 위에 창조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진공 상태를 의미한다."

인간이 측정을 통해 알 수 있는 질량은 임계밀도에 훨씬 못미친다. 그러나 인간이 측정할 수 없는 물질들이 많기 때문에 우주가 영원한 팽창 일로를 걸을 것이라 예상하기엔 이르다.

그러나 우주가 어느 갈래로 가든 그보다 훨씬 이전에 지구를 밝혀주는 태양의 에너지가 다 소진될 것이다.

"태양에 있는 수소가 헬륨으로 전환되는 작용이 끝나게 될 500억 년이 되면 태양은 수성과 금성을 삼키고, 지구 하늘의 10퍼센트를 차지하면서, 100배 더 팽창하고 더 붉게 될 것이다."
"20억 년이 더 지나면, 태양은 자신이 보유한 헬륨을 다 소진하고, 백색왜성이 되어서 안에서부터 붕괴되어 버릴 것"이다.

그리고 태양뿐만 아니라 모든 별들의 불은 꺼질 것이다.

"10조 년 안에 별들의 불은 꺼질 것이다. 매우 멀리 떨어져 있는 시간이 지나면 ... 절대 0도에 다가갈 것이다."

빅크런치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우주는 이렇게 열평형 상태에 이른다.
빅크런치가 일어난다면,

"은하계의 성운은 빅 크런치가 일어나기 1억 년 전에 서로 합쳐져 끝나게 될 것이다. 별들은 빅 크런치가 일어나기 10만년 전에 열기로 인해 증발 ... 별들은 빅 크런치가 일어나기 1000년 전에 폭발 ... 결국, 우주는 유황과 전자, 중성자, 반입자와 반물질들로 채워지게 될 것이며, 이들은 붕괴될 것이다."
"그다음에 무엇이 일어나게 될지는 알기 어렵다. 그처럼 극단적인 밀도의 한계에서, 전통적인 물리학은 더 이상 아무것도 설명해줄 수 없다."


미래의 우주론 - 니콜라스 프란초스

니콜라스 프란초스는 우주의 미래를 보는 관점의 변화들을 설명한다.

"19세기에 독일 물리학자인 루돌프 클라우지우스가 우주의 열역학적 죽음이라는 생각을 제안했다. ... 이 견해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열역학 제 2법칙에 따르면 엔트로피는 항상 커지는 방향쪽으로 가는데, 이는 곧 모든 것이 평형상태에 있는 열역학적 죽음 상태를 예상하게 하였다.

20세기가 되어서 과학자들은 "별은 그들의 에너지와 광도를 핵반응으로부터 끌어오는데, ... 수 조년이 지나면 자기 연료를 다 쓰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지금의 원자물리학 이론들에 따르면, 양자는 더 이상 영원한 것이 아니고, 더 가벼운 소립자로 전환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해서 물질의 구조를 장기간 유지하는 일은 불가능해진다."

"현대 우주론은 훨씬 더 길고 복잡하며 더 많은 사건으로 가득 찬 미래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우주 세계의 이 긴 여정의 최종적 결말은 열역학적 죽음의 이미지와 그리 다르지 않다. 에너지원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생명과 지성도 영원히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운명에 철학자 버트란트 러셀은 비관적인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과거의 모든 노동, 모든 헌신, 모든 영감, 인간의 모든 천재성은 태양계의 광대한 죽음 속에서 소멸될 운명에 처해 있다. 그리고 인간이 이루어놓은 모든 신전은 불가피하게 폐허가 된 우주의 파편들 아래 묻히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현재 거의 너무도 확실해서 어떤 철학 체계도 이것을 거부할 수 없다."

그러나 러셀은 덧붙여,
"흔히 이러한 세계관은 침울한 것이...나 실제로 어느 누구도 몇백만 년 후에 일어날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런 관점으로부터 주의를 돌려 다른 것들에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아서 클라크는 '미래의 모습'이라는 책에서 우주의 미래에 대해 시적으로 표현하였다.

"우리의 은하는 지금 그의 일생에서 짧은 봄을, 직녀성과 천랑성 같은 매우 반짝이는 파랗고 하얀 별들의 존재로 인해, 그리고 좀 더 소박한 규모를 가진 우리의 태양으로 인해 영광스러운 나날의 봄을 지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눈부신 젊은 날에 이 모든 것이 타오른 이후 몇십 억 년이 지나야 비로소 우주의 진정한 역사가 시작될 것이다.
우리의 눈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 느리게 성장하고 있는 작은 별들의 연약한 붉은 섬광과 적외선으로만 빛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우주의 어두운 색조는 이 우주에 적응하면서 살아갈 낯선 피조물들에게는 아름다움과 색으로 가득찬 것처럼 보일 수 있으리라. 그들은 그들 앞에 ... 몇백만조 년이 펼쳐지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이 끝없는 오랜 세월 동안 거의 모든 것을 시도해보고, 또 모든 것을 습득하는 데 충분한 시간을 갖게 되리라."

"일부 물리학자들은 미래에 우주에서 생명을 무한정 연장하기 위한 대안들을 연구했다."
그러나 "양자역학의 계산 가능성을 연구 틀로 삼은 최근은 작업들은 팽창하는 우주에서 생명과 지성을 무한히 연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새로운 이론들은 아마도 미래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미래에 대해 품고 있는 이미지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프란초스는 스태플던을 인용하며, "미래 인류의 역사가 그 자신의 시대의 물리학 지식에 기초하여 씌어졌다는 것"을 강조한다. 가까운 미래에 새로운 이론들이 미래에 대한 이미지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과학적인 물음(ㅡ의심과 확신) - 앙드레 브라이크

앙드레 브레이크는 과학적 절차의 본질을 말하며, 과학에 대한 몰이해에 대해서 비판한다.
이와 함께 천문학의 발전을 얘기하는데 그러면서 다소 산만한 글이 되버렸다.

그는 천문학과 생물학 분야의 지식의 폭발적 증가를 언급하며 과학적 사유의 위대함을 치켜세운다.
"과학적 사유의 발전사는 의심과 겸손, 엄격과 정직, 그리고 비판적 정신이 살아 있는 하나의 훌륭한 학교이며, 이것들은 모두 앎을 향한 열정을 뒷받침하는 최고의 덕들이다."

그리고 오만한 과학이라는 비판에 대한 반론에 맞서려는 듯 모든 '과학적 명제'의 잠정적인 측면을 이야기한다.  
"모든 과학적 명제는 비판받기 위해 언표되기 때문에, 과학자는 어떤 경우에도 진리를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 없다."
"하나의 명제는 그것이 틀릴 가능성이 있을 때에만, 달리 말해 누구나 그것을 검증하고 파기할 수 있는 것일 때에만 과학적일 수 있다."

"과학적인 절차를 지탱하는 것은 관찰과 이론이라는 두 개의 기둥이다."
가설이라고도 하는 모델은 관찰을 통해 만들어 낸 모형이며, 이는 다시 관찰을 통해 검증된다.
"모델과 우리가 추구하는 진리는 분명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모형이 우리에게 주는 확신은 단지 우리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뿐이다."

그는 천문학의 발전으로 방향을 틀어 천문학의 발전이 중요한 이유 세가지를 든다.
"오늘날 천문학의 발전은 적어도 다음의 세 가지 이유, 즉 문화적, 실용적, 경제적인 차원에서의 이유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천체물리학에 대해서도 생물학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다면 철학자가 어떻게 우주에서의 인간의 위치에 대해 말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 우리를 탄생시킨 우주에 대해서 모른다면 우리에 대해서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주의 역사에 대한 이해는 천문학이 필요한 문화적 이유이다.

"태양계는 실험실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극한적인 온도와 압력, 밀도 등의 조건들이 유지되고 있는 굉장히 훌륭한 실험실이다." 이것이 천문학의 실용적인 필요성이다.

"오늘의 우주 연구를 지배하는 것이 내일의 경제계의 패권을 보장한다."
이것은 사실 앞뒤가 바뀐 주장이다. 경제계의 패권을 잡을만큼의 경제력이 있어야 우주 연구를 할 수 있으며, 그렇게 패권을 잡게한 과학의 발달이 우주 연구를 가능하게 한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

다시 그는 과학을 질타하는 경향에 대해 비판한다.
"과학적 절차의 본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모든 사람은 과학을 깔보며, 과학을 배척하려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과학을 비판할 때 '결과물'로서의 과학(기술과학 혹은 더 나아가 그 기술의 사용)과 과학적 방법론(과학적 절차)의 구분을 확실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 기술의 사용을 비판할 순 있어도, 과학적 방법론 자체를 비판해서는 안 된다. 그도 이 점을 지적한다.
"문제가 과학 자체가 아니라, 오직 과학을 사용하는 인간들, 그러니까 시민들에게 있을 뿐이라는 점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앎을 목적으로 하는 과학과, 과학의 적용을 목적으로 하는 기술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는 과학적 용어의 오용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철학자들이나 사회과학 전문가들도, ...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과학의 용어들을 종종 문맥을 벗어나서 사용할 때면, 과학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이어서 일부 과학자들까지도 빠져있는 신화적 사변에 대해 비판한다.
"최초의 카오스에서 어떻게 저렇게 질서정연한 체꼐가 탄생하는지를 관찰하면서 날마다 감동한다. ... 그렇다고 해서 거기에서 일말의 합목적성을 보아야 하는 것일까? 오늘날 합목적성을 확인시켜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그는 과학이 모든 것을 이끌어가야 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거리를 둔다.
"인문학적 지식이 없는 과학자는 빈곤하다. 과학적 지식을 결여한 법학자와 문학가는 불구이다."

그는 미래가 인문학과 과학 사이의 균형에 있다고 말하며 시민들의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이해를 요구한다.
"시민들이 과학적 절차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하는 것이 중요한 듯하다."

그리고 그는 다시 우주의 기원에 대한 문제로 돌아와, 우주의 기원에 대한 물음은 온갖 신화적 사유와 철학적 사유를 동반하지만 그러면서도,
"우리가 지닌 선입견과 기호가 어떤 것이든, 우리는 반드시 관찰한 사실들을 따라야 한다."
고 말한다.


  1. 가치는 어디로 가는가 / 문학과지성사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