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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채워줄 수 없는 것

외국의 방송 프로그램 중에 <현장 고발 치터스>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중략) 사실 이 프로그램을 처음 봤을 땐 내용이 워낙 쇼킹해서 몇 번 챙겨 보다가 만날 똑같은 타령뿐이라 언젠가부터 보지 않았는데 어제는 등장인물들이 다소 독특해서 채널을 고정하게 되었다. 의뢰인은 50대 중후반쯤 돼 보이는 흑인 노인네로 다리를 절었고 아마도 일용직 노동자인 듯싶었다. 그리고 그가 힘들게 일하며 돌봐온 그의 여인은... 예뻤지만 눈이 사시인 여자였다. 둘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났지만 양쪽 다 핸디캡이 있는 처지였으므로 서로의 상처를 감싸주며 커플이 되었음은 짐작해볼 수 있는 스토리였다.
제작진은 추적을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불륜은 사실로 밝혀졌다. (중략) 남자는 상처받았으되 무기력하게 슬퍼하고 여자는 머리를 쥐어 뜯으며 괴로워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하고 살을 섞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면 기분이 어떨까. 그러나 내가 슬펐던 건 어떻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럴 수 있냐고 다그치는 진행자에게 던지는 그 여자의 한마디였다.

"자기가 채워줄 수 없는 게 있다는 걸... 말할 수가 없었어요..."


-이석원, <보통의 존재> 수록글 중


막장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던 현장 고발 치터스에서 가슴이 먹먹할 정도로 슬픔을 느낄 줄은 이석원도 몰랐고 나도 몰랐다. 서로의 부족함을 알고 그 부족함이 오히려 서로를 이어주는 끈이 되어주었다고 하더라도 그 부족은 채워지지 않는다. 자신이 덜 미안할 뿐이다. 더군다나 서로의 핸디캡이 다른 종류라면 언젠간 내가 더 손해본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상대방의 핸디캡까지 사랑한다는 말은 거짓이다. 단지 그 불만족보다 사랑이 클 뿐이다. 핸디캡이 없고 컴플렉스가 없는 사람이 어디있으랴. 콩깍지가 벗겨질 때 그 부분이 제일 먼저 드러난다. 그래도 저 출연 여성은 그것을 말할 수 없었다. 저것이 저 순간을 벗어나기 위한 변명이라 할지라도 가슴이 저민다. 우리는 저마다 크고 작은 컴플렉스를 안고 살아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