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낙서 같은 정체성

온몸에 새겨진 문신처럼, 지금까지의 세월은 내 몸의 각질 속에 새겨져 있다. 각질이 아무리 떨어져나가도 속에 남아 있는 그런 문신처럼 '나'는 만들어진다.
그 정체성은 문신처럼 일종의 흉터인데, 흉터를 가리기 위해 그 위에 색을 입혔다고 할까. 그렇게 생성된 정체성은 레이저로도 제거할 수 없다. 그 흉터의 깊이보다 더 깊게 파고 들어갔을 때라야 없앴을 수 있다. 또 다른 흉터를 만드는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것은 문신과 달리 화려한 모양을 자랑하지 않는다. 맥락도 없다.
지저분한 낙서같은.
그래서 누가 "너의 정체가 뭐야."라고 하면, 할 말이 없는 것이다.
말없이 옷을 벗어 보여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옷이라는 또 하나의 색을 입힌 헝겊으로 낙서같은 정체성을 가리고 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