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 전에 학교 수업 시간에 군가산점제에 관해 토론한 적이 있었다. 처음 편을 정할 때는 가산점제 찬성 측이었다. 그런데 토론을 준비하고 갑론을박하면서 생각이 바뀌어 토론 후로는 계속 반대 측이다. 토론을 하면서 느낀 것은 논점의 범위가 뒤죽박죽이 되어, 토론 내용이 헛돈다는 것이다. 찬성측은 주로 논점의 범위를 좁게 보고, 반대측은 넓게 본다. 그러니 아무리 토론을 해도 논점이 모아지지가 않는다.
이 글의 목적은 군가산점제 토론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논점의 범위를 명확하게 설정하는 것이 필요함을 보여주고, 가능한 방법 한 가지를 제시하기 위함이다.
군가산점제에 대한 논점의 범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설정할 수 있다. 한 가지는 ‘군가산점제’ 그 자체에 대한 좁은 범위고, 다른 한 가지는 한국 사회 전체적인 시각으로 군가산점제의 타당 혹은 부당성을 논의하는 범위다. 토론의 범위를 나누지 않고 시작하면, 뒤죽박죽 논점이 섞여버려서 무의미한 논쟁이 되기가 십상이다.
먼저 가산점 그 자체에 대한 좁은 범위의 논의부터 알아보자.
군가산점 제도가 논란이 되는 이유는 '일부를 제외한 남성'에게만 적용되는 징병제 때문이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정말 그러한지 따져보는 게 좁은 범위의 논의다.
이렇게 사고실험을 하면 논점이 분명해진다.
“만약 한국이 남녀 상관없이 모병제라면 군가산점제도에 대해서 어떻게 주장하겠는가?”
여기서 모병제는 2년 혹은 4년 등 최소한의 복무기간이 필요하며, 그 이후로는 계속 계약을 연장하는 것으로 가정하겠다.
남녀 모두 모병제인 상황이라면 군가산점 제도의 도입을 찬성하겠다고 주장하는 쪽이 있을 것이고, 그럼에도 반대한다고 주장하는 쪽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상황을 바꾸어 가정해 보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찬성과 반대 양 측의 최소한의 합의선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토론은 최소한의 합의사항이 분명하지 않으면 논점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에서 구체적인 현실의 문제까지 난잡하게 이어지기 쉽다. 양 측이 동의하는 부분이 불명확할 때 의견이 갈라서는 논점도 불명확해진다. 그렇기에 사회자는 논점을 확실하게 잡아가며, 동의사항과 이견사항을 구분해줘야 한다.
군가산점 제도의 토론 역시 논점을 좁혀보면서 어디까지 양 측의 의견이 일치하는지를 알아 볼 수 있다. 만약 양 측이 좁은 범위의 토론에서 의견이 일치한다면, 더 포괄적인 범위로 넓히면 된다. 예를 들어, 양 측 모두 위와 같은 조건에서는 군가산점제도에 대해서 찬성한다면, 찬성과 반대가 갈리는 지점은 병역제도를 포함한 전체 한국사회 맥락에서의 군가산점제도의 정당함과 부당함이다. 만약 양 측 모두 위 조건에서 가산점제를 반대한다면, 찬성과 반대의 논점은 찬성 측의 불가피성과 반대 측의 불합리성으로 옮길 수 있다.
만약 위 조건에서 양 측의 의견이 갈린다면, 논의 방식은 두 경우가 가능하다. 찬성 측이 조건부에 찬성을, 반대 측이 조건부에 반대를 주장했다면, 더 범위를 넓히지 않고도 토론이 가능하다. 물론 좁은 범위에서의 할 얘기가 충분히 나와서, 순환한다 싶으면 논점을 넓히면 된다. 그런데 찬성 측이 조건부에 반대를, 반대 측이 조건부에 찬성을 주장했다면, 논의구조가 복잡해진다. 이럴 땐 좁은 범위에서의 논의를 진행할 필요 없이 바로 전체 맥락으로 논점을 넘기면 된다. 양 측 모두 전체 사회 맥락 속에서 찬성과 반대를 주장하기 때문이다.
앞서 든 조건부 질문 토론과 전체 사회 맥락 토론에서의 태도를 통해 토론자를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반대-1. 조건부 질문에는 찬성하지만, 전체 사회 맥락으로 봤을 때 군가산점제는 부당하거나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
찬성-2. 조건부 질문에는 반대하지만, 전체 사회 맥락으로 봤을 때 군가산점제가 한시적으로나마 불가피하거나, 절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반대-2. 조건부 질문에도 반대하며, 그 이유에 더해 전체 사회 맥락에서도 부당하거나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를 통해, 앞서 얘기한 것을 다시 정리하면,
찬성-1과 반대-1이 만났을 때, 반대-1은 왜 군 가산점제가 한국의 현 상황에 적절치 못한지 근거를 대야 하고, 찬성-1은 거기에 반론을 제기해야 한다.
찬성-1과 반대-2가 만났을 때, 군가산점제 자체의 합리성과 모순성에 대해서 토론할 수 있으며, 그 주장에 따른 각자의 근거를 대면 된다.
찬성-2와 반대-1이 만났을 때, 전체 사회 맥락에 대해서만 토론을 하면 된다.
찬성-2와 반대-2가 만났을 때, 찬성-2는 왜 불가피한지 근거를 대야하며, 반대-2는 거기에 반론을 제기해야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반대-1의 입장이다. 거기에 대한 근거를 나열하는 것은 이 글의 목적과 맞지 않음으로 건너뛰겠다. 다만 반대-1의 입장인 사람이 제시할 수 있는 ‘일관성 있는’ 대안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살펴보자.
군 복무를 수행한 사람이 가산점을 받는 것에 대해서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일부의 남자만 강제로 군복무를 수행하는 현 환경에서는 여러 가지 불합리한 점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 병역제도를 크게 바꾸지 않고, 군 가산점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수정을 가해볼 수 있다. 첫째 방법은 (장교 포함) 부사관 이상 출신에게만 가산점을 준다. 부사관 지원은 남녀 모두 지원형식이다. 지원할 신체적, 정신적 자격을 갖추지 못한 남녀에게는 불리하겠지만, 군복무에 대한 보상으로 가산점을 주는 것엔 찬성한다고 이미 밝혔다(조건부 찬성). 또 한 가지 방법은 여자도 일반사병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한다. 혹은 대체복무가 시행된다면, 대체복무에 여자도 지원할 수 있게 한다. 억울하면 지원을 하라는 논리다. 이런 상황이라도 반대-1의 입장에서 반대할 이유가 없어지는데, 원하면 얼마든지 지원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첫째 방법은 당장 시행할 수 있지만 그 효과가 미미하다는 문제가 있고(부사관이나 장교를 제대하고 나면, 이미 나이가 서른 가까이 된다), 둘째 방법은 여군 편성 등 현실적인 문제가 뒤따른다. 어쨌든 반대-1의 입장에서 자신의 주장에 일관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제시할 수 있는 방안들이다. 물론 (모병제로의 전환을 포함한) 위의 방안들이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논증한 뒤, 가산점제 폐지를 주장해도 된다. 즉, 조건부 찬성이나 그 조건이 불가능하니 반대라는 것이다. 그리고 같은 반대-1이라도 전혀 다른 초점에서의 주장과 근거로 논증을 할 수 있다.
이와 비슷하게 다른 입장에 서서도 일관성을 해치지 않으며 대안 제시나 논증이 가능할 것이다.
앞서의 기준은 논점을 정리할 수 있는 방법 중 한가지다. 토론에서 앞서 말한 대로 논점의 범위가 정리되어가면서 진행되기란 쉽지 않다. 논점의 범위 설정과 정리는 토론자가 직접 준비해야 할 사항은 아니고, 사회자나 토론 프로그램을 디자인하는 작가가 참고할 만한 사항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상대방이 모호한 주장을 한다 싶으면, 위와 같이 특정한 조건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반응을 유도하면서 자신이 유리한 쪽으로 상대방의 입장을 정리하게 할 수도 있다.
논점의 명확화와 합의점 도출은 실제 토론에서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사회자를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의 합의점을 찾고, 그 범위를 점점 넓혀가며, 관습적인 ‘상식’이 아닌, 합의된 ‘상식’을 늘려가는 것이 토론의 목적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