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말 책을 읽지 않는 편이고, 그 중 과학 서적은 15%도 되지 않는데, 무책임하게 바통을 넘겨받았다.
책도 책이지만 다음 주자를 누구로 할지 더 걱정이다. 몰래 블로그만 구독하지, 어디에 댓글을 달거나 트랙백을 보내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어서 친한 블로거가 없다. 일단 책부터 추천하자.
책도 책이지만 다음 주자를 누구로 할지 더 걱정이다. 몰래 블로그만 구독하지, 어디에 댓글을 달거나 트랙백을 보내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어서 친한 블로거가 없다. 일단 책부터 추천하자.
내가 주로 읽는 과학서적의 주제는 크게 세가지다.
진화, 뇌, 복잡계(네트워크).
각각을 주제로 한 책을 읽기도 하지만 복합적인 주제의 책을 고를 때도 있다. '진화+뇌'로 진화심리학을 읽고, 스튜어트 카우프만의 '혼돈의 가장자리'같은 경우는 복잡계에 진화가 더해진 책이다. 실제로도 이 세 가지 주제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연관시켜 연구할 수 있다).
추천할 세 권의 책은 이 세 주제 중 골랐다.
1. 혼돈의 가장자리 (원제: AT HOME IN THE UNIVE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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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스튜어트 카우프만 (국형태 옮김)
출판사: 사이언스북스
복잡계의 명실상부한 최고연구기관, 산타페 연구소에서 명예교수로 재직 중인 스튜어트 카우프만이 낸 책이다. 내게 경이로웠던 과학 책을 두 권 꼽으라면,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와 이 책이다. 고등학교 때 책을 처음 펼쳤을 때, 이 책은 세상의 (알려져있지 않은) 비밀을 담은 책 같았다. 그 당시에는 혹시 다른 사람도 이 비밀을 알게 될까봐 아무에게도 이 책만큼은 추천하지 않았다.
이 책이 경이로웠던 이유는 두가지다.
생명의 진화의 과정보다 설명하기 까다로운 것이 무생물에서 생물로의 전이다. 그는 '자기촉매현상'이라는 화학현상으로 이 상전이의 설명의 단초를 제공한다. 너무나 간단하게. 여기서 한 번 뻥.
자기조직화가 일어나는 시스템에서 진화는 어떻게 일어나는가. 아니 어디서 일어나는가가 더 정확한 표현이다. '어디서'라는 질문에 그는 한국어판의 제목이기도 한 '혼돈의 가장자리'라고 답한다. 절대적 질서의 영역과 완전한 카오스의 영역 사이, 질서에서 카오스로 넘어가는 그 지점에서 그는 진화가 일어난다고 말한다. 질서의 영역에서는 혁신적 변화가 있을 수 없고, 카오스에서는 혁신적 변화가 저장되지 못한다. 알고나서 보면 상식적인 얘기인 듯한 이 명제를 그는 자연에서 기술까지 창발이 일어나는 대부분의 곳에 적용하며 직관적 관찰능력을 키워준다. 여기서 두번째 뻥.
어떻게 우주에는 그토록 혼돈의 가장자리의 영역이 많은 것일까. 이 책에 잠정적인 답이 있다.
2.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원제: How the Mind Works)
저자: 스티븐 핑커 (김한영 옮김)
출판사: 도서출판 소소
이 책은 사실 8 개의 장 중에 앞의 2 개의 장밖에 못 읽었다. 그래도 이 책을 꼭 추천하고 싶어서 꼽았다. 이 책의 부제는 '과학이 발견한 인간 마음의 작동 원리와 진화심리학의 관점'이다. 실험결과 등의 단순지식을 전달하는 다른 뇌과학 관련 책들과는 달리 이 책은 교과서로 써도 될 수 있을 정도로 상세하게 인지심리학적인 질문에 답을 한다. 아직 진화심리학적인 내용은 나오진 않았지만, 앞의 두 장만으로도 충분히 얻은 것이 많고, 앞으로의 내용들도 그래서 더 기대되는 바다. 번역도 깔끔한 편이다.
3. 나이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 (원제: Waarom het leven sneller gaat als je ouder wor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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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다우베 드라이스마 (김승욱 옮김)
출판사: 에코리브르
책의 제목은 17가지 자전적 기억에 관한 내용 중 한 챕터이다. 자전적 기억은 세월을 인지하고, 자아를 형성하는 개인적인 기억을 말한다. 저자에 말에 따르면 자전적 기억에 대한 연구는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상적인 대화에서 '기억'이라는 단어는 개인적인 경험을 얘기한다. 그러면서도 이 주제를 심리학에서는 오래동안 다루지 않았다. 그 이유는 실험으로 정량화 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각자가 다른 자전적 기억을 가지고 있고, 연구자료는 결국 가물가물한 '자전적 기억'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일반화된 결론을 도출하기가 어렵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전적 기억에 관한 의문점, 궁금증 등을 심리학사(史)적으로 풀었다. 과거의 심리학자들의 추론에서 시작하여 현대의 뇌과학이 밝혀낸 사실들로 내용은 채워진다. 앞서 말했듯 실험을 할 수 없기에 뇌과학이 밝혀낸 다른 지식으로 추론을 한 것일 뿐이지만, 그 주제가 독특하기에 흥미롭다.
데자뷰 현상, 세월(시간)의 인지, 죽기 전 파노라마 현상, 절대적 기억력 등등에 대해 궁금하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이상이다. 무책임하게 받았지만, 나는 더 무책임한가. 다음 릴레이 주자는 확정되는대로 링크를 달겠다. 부디 해준다고 하셨으면 좋겠다.
다음 릴레이 주자는 '나비의일견식'님이 해주시기로 하셨다. 초면이었는데 릴레이를 받아주셔서 너무너무 감사드린다. 과학적 지식도 풍부하시고, 남다른 필력과 기발함을 갖고 계신 분이기에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