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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기 서 있는 이유 - 고민(1)


1. 각인

8월 5일 일요일, 포항에서 친구들을 만난 뒤, 부대로 일찍 들어오는 길이었다.
나는 부대 입구에서, 난생 처음으로 시위 장면을 보았다. 똑같은 옷을 입고, 밀짚모자를 하나씩 쓰고,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불렀다.
전경(의경)들은 부대입구를 원천 봉쇄하고 있었고, 그것을 시위대가 억지로 뚫고 들어가려는 과정에서 몸싸움이 있었다. 여기저기서 고함 소리가 들리고, 욕이 들렸다. 생수통의 물을 전경들을 향해 뿌리기도 하였고, 전경 중 한명이 집단에 둘러 싸여 허둥지둥 대기도 하였다. 이 장면을 찍고 있던 두 명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들은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역시나 확인할 수 없는 아저씨 한 명에게 찍지 말라고 쌍욕을 먹었다.

시위의 주제는 주한 미군 철수였다. 주먹을 불끈 쥔 채로 미국 국기를 찢고 있는 그림이 그려진 깃발을 흔들고 있고, '살인 집단, 범죄 집단 미군은 철수하라'는 현수막을 들고 있었다. 난생 처음 본 시위가, 내가 들어가야 할 입구를 막고, 내가 도움을 주고 있는 미군의 철수를 주장하는 것이라 여간 예사롭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었다.



2. 자괴감

그 시위 장면을 보고 처음 떠오른 느낌은 자괴감이었다. 카투사에 지원하기 전에 나는 그래도 미국에 비판적이었다. 운동권 학생들이나, 시위를 하는 사람들처럼 열성을 가지고 비판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미국의 제국주의적인 폭력에 역겨움을 느꼈었다. 주한 미군 또한 단계적인 과정을 거쳐 철수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카투사를 지원하는 순간, 그리고 결국 선발 된 이후 나는 더 이상 주한 미군의 철수를 주장할 수도 없고, 미국의 제국주의를 비판할 수 있는 명분도 잃었다. 아니, 카투사에 지원하는 순간 그 동안 가졌던 미국에 대한 생각은, 일종의 도덕적 우월감이나 진보 측의 조끼를 입었다는 우쭐한 마음일 뿐이었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이 들통나 버린 것이다. 그 자리에서 나는 그들이 나를 발견하면 어쩌나 조마조마 했다. 그들이 나를 보면 그냥 지나가게 놔두진 않을 것 같다고 혼자 생각했기 때문이다.



3. 동기

이공계 국내 대학에서 전문연구요원이 되면,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된다. 내가 유학을 갈 가능성은 아주 적어보이고, 그렇다고 취직을 할 마음은 추호도 없었으니, 카투사가 되지 않았다면 아마 그냥 군대를 가지 않았을 것이다. 카투사에 지원한 것은 정신없이 지나가는 대학생활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서였다. 내 분수에 넘치는 과에서 공부하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하루 종일 숙제와 과제만 하다가 대학 생활이 다 지나가버릴 것 같았다. 대학원으로의 진학은 더이상의 휴식은 없음을 의미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래서 휴학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여자친구의 유학 결정은 카투사 지원으로 이어졌다. 지원할 때도, 결코 반가운 손님일 수 없는 주한 미군을 도우러 간다는 생각이 잠시 스쳐지나갔지만, 결정을 바꾸진 못했다.



4. 근시

비록 미국에 비판적일지라도 나는 반미도 친미도 아니다. 그리고 미국은 악도 선도 아니다. 그렇게 구분할 수도 없다는 것을 다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절대악과 절대선 따위로 구분 할 수 있는 건, 만화영화나 일부 유아틱한 스토리의 영화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미국의 제국주의적 성향은 미국이 '악'이라서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극단에 있는 미국이 가질 수밖에 없는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또 자본주의가 '악'이라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아니면 제 3의 다른 길이든, 그 극단에 있는 것들은 두가지 이상의 가치를 절충하기가 힘들어 '악'이라고 흔히들 정의하는 고통을 구성원들에게 짊어지게 할 수 있을 뿐이다. 어쨌든 내게는 이런 거시적이고, 추상적인 문제보다는 한국군대에서의 생활과 카투사로서의 생활을 비교하는 등의  구체적이고 내게 당면한 문제들이 우선시 되었다. 일반 한국군에서의 전투력에 하등의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쓸데없는 이병 때의 군기와, 지나친 갈굼과 무의미한 작업들. 모두가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가질 수 있는 재화임에도 불구하고, 짬이 없으면 못하고 짬이 생기면 할 수 있는 비상식적인 관행들. 그리고 내게 있어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는 짬이 없으면 마음편하게 '자기 시간'을 가질 수도 없는 것들이 카투사가 안 되면 전문연구요원이 되겠다는 배부른 결정을 내리게 했다. 물론 카투사라고 해서 완전히 그런 관행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이해할 만한 수준이랄까, 아무튼 '평균적으로' 따진다면 가히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나에게 있어 조금 더 현실적인 문제들이, 더 상위의 문제들에 대한 치열한 고민 없이 선택을 하도록 만들었다.



5. 고민

우선 나는 내 자신에게 솔직해져야 한다. 무엇이 나를 이런 고민에 빠지게 하는지를 알아야지, 이런 스트레스 상황을 극복하고 한단계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가장 두려운 것은 훗날 미군 그리고 미국에 대한 비판의 자유의 상실이다. 어찌 됐든 나는 한미 연합의 콩고물을 얻어먹고 있지 않는가. 대부분 한국정부에서 지출된 돈이지만, 일반 한국군은 상상할 수 없는 시설과 식단 속에 생활하고 있다. 이런 혜택을 얻으면서 나는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자유를 지불 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내가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지금 내 자신의 위치에 대한 고민 뿐이다. 국가가 어떻게 나에게 총을 들라고 강제할 수 있게 되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부터, 미군의 한국 주둔에 관해서, 그리고 한미간 관계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여기에 있게 됐는지 고민의 결과야 어떻든 생각해야 하고, 할 수밖에 없다. 미군 부대 앞에서 시위하는 그들이, 중동지역에서의 미국과의 분쟁에 관한 뉴스가, 격발의 짜릿함 뒤에 오는 총알이 나를 뚫는 상상이 그런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러한 고민 모두가 자위적인 것이고, 순간의 스트레스를 벗어나기 위한 것이라 할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