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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내 생각만 나지?"

"계속 내 생각만 나지?"
"네."
"어려서 그래.
 나도 계속 네 생각만 나."
"왜요."
"늙어서 그런가봐"

-이석원, <보통의 존재> 수록글 중.



남자와 여자가 있다. 남자가 더 나이가 많다고도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보단 여자가 더 많은 것이 어울린다. 이 대화는 두가지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남자가 글 속 여자만 계속 생각나는 것은 어려서고, 여자가 글 속 남자를 계속 생각하는 것은 늙어서다. 그러므로 서로가 생각나는 것은 그들이 어려서도 늙어서도 아니다. 어리고 늙어서 그렇다는 것은 그냥 말하기 부끄러워 말한 변명일 뿐, 서로가 생각날 뿐이다. 그리고 여자는 직관적으로 느낀다. 자기가 더 많이 보고 싶다는 것을.

그게 아니라 여자가 뜻한 그대로일 수도 있다. 남자가 누군가를 간절히 생각하는 것은 아직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여자는 많은 경험을 겪었다. 그리움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고 설사 오래가더라도 자신을 괴롭히기만 한다는 사실도 안다. 그래서 다시는 누군가를 간절히 그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몇 년을 살았지만 다시 간절히 보고싶은 누군가를 만났다. 그동안 지켜졌던 자신의 다짐이 무너졌다. 그리고 여자는 그 이유가 늙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왜 늙으면 다시 그런 마음이 생기는지는 여자도 모른다.

그 어느 쪽이든 이 둘은 서로를 그린다.

나는 언젠부턴가 누구를 간절히 좋아하질 못한다. 상처 받는 것이 두려워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나 또한 저 여자가 겪었던 터널을 지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