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관찰 (1), 2009년 11월

관찰 1.

급지를 억지로 빼내다가 프린터가 고장났다. 고칠 방법을 몰라 그냥 두었고, 프린터는 계속해서 프로세싱 램프를 깜빡거린다. 밤에 요를 깔고 누으면 그 램프의 깜빡임이 천정과 벽이 만나는 모서리에 비친다. 그것은 처음에 불을 끄고 누웠을 때는 보이지 않다가 서서히 드러난다. 자동차의 깜박이 불처럼 천정을 비추지만, 천정의 형태를 보여주진 않는다. 천정의 형태를 보여주지 않으니 그것이 빛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깜빡거렸기 때문에 빛의 존재를 알 수 있을 뿐이지, 불이 켜져있을 때 그것은 빛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 빛이 천장의 모서리를 비추는 것이 아니라, 공중에 떠 있거나, 아니면 내 시야 자체가 현실이 아닌 환상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관찰 2.

A가 B를 비난할 때, 그 주위에 아무도 없다면 B는 분노를 느끼지만, 비난하는 일과 무관한 C가 옆에 있으면 분노와 함께 수치심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평소에 비난을 받던 B는 A에게 대들고 짜증을 냈지만, C가 있는 상태에서 비난을 받을 때는 눈물을 흘리며, 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말을 거는 C에게도 화를 내면서 분노가 전이되었다.



관찰 3.

20년 전 노래를 지금 처음 들으면 그 곡이 아무리 명곡이라 할지라도 촌스럽게 느껴지고, 그 곡에 호감이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그 곡을 10년 전 쯤에 들었고, 그 때는 많은 양의 음악을 듣지 않은 상태였으며, 그 때 그 음악에 호감을 느꼈다면, 그 호감은 변하지 않는다. 그 곡의 패턴이 동시대의 음악에 비해 촌스럽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만화 또한 비슷한데 예전에 어렸을 때 봤던 것은 지금 봐도 재밌고, 그것을 유치하게 여기더라도 그 사실이 호감에 영향을 미치진 않는다. 하지만 지금 그 당시의 다른 만화를 처음 본다면 유치함에 호감이 생기지 않는다. 음악이나 영상, 스토리 등에 대한 감각은 그 예술의 발전과 더불어 발달하지만, 발달되어온 경로에 걸쳐져 있는 작품들에 대한 호감은 변하지 않고 때로는 더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