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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IN LOCKER 142번 글을 지우는 일에 대하여 - 2003년 5월 8일 작성

nanael 2007. 9. 4. 10:17
 

뭔가 대단한걸 바라고 이 글을 읽진 않길 바란다.

인체는 때때로 사소한 일에 의미를 두고 싶을 때가 있는 법.


나는 언제나 처럼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키보드가 쳐질까봐 불안해 하고 있다. 언제나 처음 생각한 것에서 뭔가를 빠뜨렸고, 그건 나중에 생각나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당신은 불안하지 않을 것이다. 결과만 보는 당신에겐 전혀 그런 눈치를 얻을 수 없다.

지금 이 줄을 읽고 있을때 불안을 느낄수 있다면 당신은 나의 100% 임에 틀림없다.



자신의 글을 누군가가 읽어준다는건 흥분되는 일이다.


coin locker의 142번 글이 지워진 일을 가르쳐 줌으로써 142번 글을 쓴 이가 나라는 걸 밝히는 일이 되지만 알다시피 전혀 상관없다.



coin locker 142번 글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

네트워크 상에도 '내 컴퓨터' 속에도 어디에도 없다.

내 머리 속에도 없다.

coin locker 142번 글은 존재 하지 않는다.

142번 글 이외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 많지만 그 많은 걸 다 몰라도 142번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건 확실하다.

잠시.

존재하지 않는 것..

존재하지 않는 것이 존재할까. 이말은 모순이다.

그렇다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하..

어쨌든 142번 글은 존재하지 않는다.


142번 글이 지워진 일은 당신에게 아무런 의미도 되지 못한다.

마치 당신의 초등학교 앨범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당신과 한번도 예기해본적도, 그냥 본적도 없는, 졸업앨범에서도 그냥 스쳐지나간 사람이 죽은 일과 같다.

친구가 예기를 해주지 않는다면 당신은 죽을 때까지 그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그래도 상관 없다.

친구가 예기해준다면 '걔가 누군데' 하며 졸업 앨범을 한번 펴볼 것이다. 그걸로 끝이다.

아무런 의미도 되지 않는다.

한가지 다른 게 있다면 142번 글은 사라졌단 말을 듣고 다시 한번 보려 해도 흔적도 남아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것이 당신에게 어떤 궁금증과 답답함을 남길수도 있다.

그러나 전혀 그럴 필요 없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글이 아니다.

그 글은 등록버튼이 눌러졌을때부터 삭제가 눌러질때까지 변함없이 가치 없었다.

특별히 조회수가 높지도, 새로운 내용의 글도, 아무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익명 게시판에 있었다.

굳이 사라질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언제나 처럼 쓰고 나서 후회감이 든다.

예상대로 뭔가를 빠뜨린 것 같아서이기도 하지만....

이제와서 142번 글에 동정을 느낀다.

그건 아마도 사라진 142번 글과, 사라질 내가, 닮은 꼴이라는 걸 발견해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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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COIN LOCKER 란 pPANIC 카페에 있던 익명 게시판의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