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Das Parfum)
향수라는 책을 처음 알게 된 건,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누나가 생일 선물로 그 책을 받게 되면서이다. 책 표지와 제목 한번 재미없어 보였던 터라 그때는 손도 대지 않았다. 부제목은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그리고 제목은 '향수'. 나는 어느 살인자가 감옥에 갇혀 고향을 그리워하는 내용이라 생각했다. 그 향수(香水)를 이 향수(鄕愁)인 줄 알았던 것이다.
어쨌든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얼마되지 않았다. '향수'라는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진 소식을 들은 후에 읽고 싶은 마음이 커졌고, 결국은 시간의 여유를 틈 타 그 향수를 맡을 수 있었다.
소설로 본 사람도 있을테고, 영화로 본 사람도 있을테지만, 어쨌든 아직 안 본 이에게는 이 글은 약간 스포일성이 있으니 염두에 두길 바란다.
그 자신은 후각의 천재이지만, 정작 저 자신에게서는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 장 바티스트 그루누이. 설정 자체부터 매력적이었다.
그는 아주 미세한 냄새까지 구분 할 수 있다. 수많은 냄새들 중에서 어떤 냄새들이 섞여 있는지 분간할 수 있었고, 한 번 맡은 냄새는 절대 잊지 않았다. 그가 단순히 냄새를 잘 맡는 수준이었다면, 그는 천재라고 불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평범한 개 또한 할 수 있는 것이고, 인간이 그 수준에 다다랐다 해서 기인 그 이상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냄새를 잘 맡는 것이 아니다. 그루누이는 그러한 냄새들을 합성할 수 있었고, 상상속에서 아름다운 향기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심지어 기억속의 냄새들을 섞어 지상에서 존재하지 않는 향기조차 창조해 낼 수 있다. 그리고 향수를 통해서 (소설 속이라서 가능한진 모르겠지만)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극적인 쾌감을 만들어 낸다. 향기를 맡는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이용해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발휘한다. 그렇기에 그는 단순히 기인이 아니라 천재라 여겨질 수 있다.
그루누이 자신에게서는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는다. 그를 키우던 유모는 그가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악마의 자식이라 칭했다. 그는 왜 몸에서 냄새가 나지 않았을까. 소설에서는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은 없다. 그럼 작가는 왜 그의 몸에서 냄새를 없앴을까.
그가 아무런 체취도 가지고 있지 않은 건 이 소설의 전개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며, 그 이전에 소설의 배경을 위해 불가피한 조건이다.
그는 후각의 천재이다. 그는 몇 마일이 떨어진 거리에 있는 냄새까지 분간할 수 있으며, 남자 팬티에 미약하게 묻어 있는 정액 냄새까지 맡을 수 있는 예민함을 자랑한다. 그리고 그는 인간의 냄새를 지독하게 싫어한다. 소설 속에서는 인간의 냄새를 피하기 위해, 인가와 가장 멀리 떨어진 고지의 동굴 속에서 7년을 살았다. 그런 그가 만약 자기 자신의 체취를 느낄 수 있다면, 그는 살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경멸하다 죽어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예민한 코는 자기 자신에게서 올라오는 체취 때문에 (아니 체취 이전에 콧 수염이 나는 자리에서 나오는 페로몬 때문에) 그는 그 예민함을 발휘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는 동굴 속에서 무취의 안개가 점점 차오르는 꿈을 꾸다, 그 안개가 자신의 숨을 막아 버리고 그는 숨에 막혀 죽기 직전에 잠에서 깬다. 그는 그것이 곧 자기 자신의 무취의 안개라는 것을 알고 견딜 수 없어한다. 그는 그 때 처음으로 자신에게서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인간의 체취를 그토록 싫어하면서 자기 자신에게서 인간의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을 왜 그리 괴로워 했을까.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소설 속의 그루누이처럼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꺼렸다. 책의 껍데기에 적혀있는 설명에는 그는 인터뷰도 하지 않고, 들어오는 상의 수상도 모두 거부했다고 한다. 그루누이는 그런 작가의 성격이 투영된 인물이다. 아무리 인간을 경멸하고, 아무리 인간에게서 역겨운 냄새가 날지라도, 그런 인간과 어울릴 수 없는 외로움이 없을 수 없다. 그런데 그런 외로움은 인간에게로의 접근이 아니라, 더 큰 경멸감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세상을 경멸하고, 자기자신까지 경멸하게 된다. 자기 자신에게서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음은, 자신이 경멸하는 인간조차도 될 수 없는 무의미한 존재, 그런 인간에게도 무시 당하는 존재감이 없는 존재, 구역질이 나는 인간과도 어울릴 수 없는 자기 자신에 대한 경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그루누이는 자신의 몸에서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삶의 목표를 정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향기를 통해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이 결심을 통해 장엄한 결말로 치닫기 위한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된다.
후각의 천재이지만, 스스로는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 존재. 타인의 행동과 말은 항상 분석하며 그들을 평가하면서, 정작 자신에 대해서는 모르고 지내는 인간들. 인간들의 역겨움을 욕하면서, 정작 내 자신에게는 그런 인간다움조차 없다는 것을 모르고 살아가는 나. 나에게 독자로서의 주체적 해석을 허용한다면, 나와 혹은 일부 인간들의 행태를 그루누이로부터 이끌어 내는 다소 무리 섞인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루누이는 인간을 경멸했지만, 결국 자신이 이상으로 가졌던 세상의 가장 황홀하고 아름다운 향기 또한 인간에게서 찾는다. 그리고 그 인간의 향기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 작가 쥐스킨트는 인간을 피해서 살았지만, 사랑마저 피할 순 없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사람에게서는 자신이 경멸하던 인간의 냄새가 세상을 아름답게 해주는 향기로 느껴졌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자신이 느낀 사랑조차 한낱 향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회의를 느낀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