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라는 명상
나는 유난히 겁이 많다. 그 겁의 근원은 죽음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있겠냐만 나는 좀 심하다. 아주 사소한 일에도 죽을까봐 겁을 낸다. 그래서 등산도 못 하고, 놀이기구도 못 탄다.
그래서 롤러코스터를 타며 즐거워 하는 사람들을 심정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아무리 안전장치를 해 놓았더라도 사고가 날 가능성이 미미하게라도 있으면 죽음의 공포가 날 압도해버린다. 번지점프를 하면 1억을 준다고 해도 나는 안 할 것이다.
스릴을 즐기는 사람들을 심정적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나름의 견해가 있다.
"극도의 스릴을 느끼는 순간 생각이 멈추게 되고, 이 (수동적인) 명상을 느끼려고 사람들은 일부러 (안전이 보장된) 공포의 상황으로 몰아 넣는다."
공포의 상황은 생각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나'라는 자아도 사라진다. 즉, 명상상태이다. 당신이 산에서 독뱀을 바로 옆에서 발견했거나, 곰과 눈이 마주쳤다. 당신은 그 때 잡생각이 나겠는가. 그 순간 끊임 없는 잡생각의 흐름이 만드는 '자아'는 사라진다. 그러나 당신은 이런 상황을 겪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공포의 상황을 일부러 겪으려 하는가.
가상의 위험을 스릴로 즐기는 것에는 다음과 같은 변수가 존재한다.
1. 당면한 위협 정도
2. 죽음에 대한 공포의 크기
3. 실제로는 위험하지 않다는 사실의 학습 정도
죽음에 대한 공포의 크기는 '나는 이러다가 죽을 수 있다', '언제 허무하게 죽을지 모른다' 등의 불안이 심하다면 큰 것이고, '에이, 설마 죽겠어', '사람은 쉽게 안 죽어' 라고 생각한다면 작은 것이다.
당면한 위협이 만만한 것이라면 스릴의 명상을 느낄 수 없다. 어느 정도 공포를 느낄 수 있는 수준이어야한다. 다만 죽음에 대한 공포의 크기가 큰 사람은 작은 사람보다 덜한 위협에도 스릴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실제로는 위험하지 않다는 사실이 제대로 학습되지 않은 상태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의 크기가 크다면 역시 스릴을 즐길 수 없다. 타가다(탬버린) 놀이기구를 타면 통통 튀기는 상황이 놀이기구 위가 아니라, 관광가서 탄 코끼리가 미쳐가지고 통통 튀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즐길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실제 위험 상황이 아닌 가상이고, 안전하다는 것을 인지하는 정도가 '3번'이다.
당면한 위협이 크고 죽음에 대한 공포가 크더라도 실제로 위험하지 않다는 사실이 학습되어 있다면 가상 위험 상황을 즐길 수 있다.
만약 어떤 방에 들어가 가상체험을 하는 안경을 끼고, 비슷한 힘을 느끼게 하는 의자에 앉아 완전히 가상으로 롤러코스터를 탄다면 나는 기꺼이 응할 것이다. 그것이 안전하고, 나의 목숨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이미 가상의 상황들은 안전하다는 것이 학습되어 있다)
설사 가상체험이 아니라 실제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이라도, 아주 쉽고 덜 무서운 수준부터 단계적으로 올라가며, 그것이 안전하다는 것이 학습될 수 있다면 360도 회전을 두번씩이나 하는 것도 언젠간 탈 수 있을 것이다. (단계적 학습)
그러나 놀이공원에는 그렇게 단계적 학습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는다. 비룡과 청룡 사이의 갭은 너무나 크다.
롤러코스터나 자이로드롭과 같은 놀이기구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타는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가 나보다 적거나, 놀이기구의 안전에 대한 믿음(학습)이 나보다 강한 것 같다.
가끔 파도가 아주 높은 곳에서의 윈드서핑처럼 실제로도 위험도가 높고, 죽을 가능성이 있는 도전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죽을고비를 몇번을 넘기고도 계속 도전한다. 성우의 더빙목소리로 나오는 그들의 인터뷰를 들어보면 "짜릿하거든요", "스릴을 즐기는 거죠. 큰 파도가 날 덮치려 할 때의 그 스릴은 말로 설명할 수 없어요" 등등의 말을 한다.
1번 당면한 위협 정도도 높고, 3번 그것이 위험하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지만 계속 도전하는 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가 남들보다 덜 할 것이다.
정리하면, 어느정도 이상의 공포의 상황은 생각을 멈추게 한다. 사람은 생각이 멈추는(명상의) 짜릿한 순간을 즐기기 위해, (주로 안전이 보장된 상황에서) 위험에 일부러 직면한다.
스릴을 느끼기 위한 공포심은 '당면한 상황의 위협정도'와 '죽음에 대한 공포의 크기'에 의해 결정된다. 이 때, 죽음에 대한 공포가 너무 크다면 상황을 즐길 수 없지만, 그 상황이 안전하다는 것이 제대로 학습되어 있다면 즐길 수 있다.
공포의 상황이란 건 과거엔 회피의 대상이지만 위험 상황을 컨트롤 할 수 있는 기술이 생긴 현재엔 공포 상황에서 겪는 명상 상태만을 뽑아서 느끼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상업적으로 이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