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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신저의 등장과 '계륵관계'의 탄생

nanael 2009. 12. 3. 23:42
누군가와 메신저에 함께 접속해 있다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새로이 탄생한 인지 상태다. 만나고 있는 것도 아니요, 안 만나고 있는 것도 아닌 이 상태는 집전화의 보급, 호출기의 보급, 휴대전화의 보급에 따른 대인 간 인지 상태의 변화와는 질을 달리한다.

집전화가 보급됨으로써 면대면 대화 상태 혹은 시간 지연이 큰 편지만이 가능했던 예전과는 다른 대인 인지를 만들었다. 글씨체라는 다소 간접적인 대인 인식 조건을 벗어나, 원거리에서도 보다 편하고 익숙한 인식 조건인 목소리로 소통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질적인 변화는 원거리에서도 시간지연이 거의 없는 대화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시각적 요인을 빼면 면대면 대화와 거의 동일한 대화가 가능했다. 대인 소통에서 거리가 차지하는 한계는 거의 극복되었다. 또 편지와 달리 전화는 거는 순간 그 사람이 거기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었다. 답장이 오기 전까진 제대로 전달이 됐는지조차 불확실한 편지에서, 개인의 '거기 존재함'을 바로 확인 할 수 있게 된 변화가 전화의 보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화는 그 사람의 '거기 존재함'만을 알 수 있을 뿐, 그 이외의 정보는 알 수 없다. 게다가 만약 그 사람이 전화가 걸린 곳에 있지 않았다면, 그 사람에게 연락을 시도했다는 사실은 그 사람이 거기 돌아오기 전까지는 전달되지 않는다. 또한 거기 있었더라도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못 받을 수 있다는 정보를 거기 없다는 정보와 구분할 수 없다. 공간적 제약과 상황적 제약이 존재하는 것이다. 호출기의 보급은 '거기 존재함'이라는 정보 대신 '어딘가에 존재함'이라는 당위적 정보를 바탕으로, 공간적 제약 '거기'라는 한계를 없애 버렸다. 시간차가 없다는 점에서 전화와 같고, 일방적이라는 점에서 편지와 닮았지만, '거기'라는 공간제약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휴대전화의 보급은 그 모든 한계를 극복했다. 그 사람이 어디에 있든, 시간차 없이 정보를 전달할 수 있고,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은 오로지 상황적 제약 때문이다. 메시지를 편지에 대응시킨다면, 세 매체를 모두 포괄한 소통매체가 된 것이다. 이제 언제든 소통하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소통할 수 있다.

기술에 따른 소통 양식의 변화는 일반적인 방향성이 있다. 제약 조건들이 사라진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와함께 발신자 표시번호 등 사용자의 통제 조건들은 늘어난다. 시간적 공간적 제약들이 사라지고 항상 외부와 연결 가능 상태가 유지됨으로써, 노출에 대한 피로가 쌓이게 되고, 이를 감쇄하기 위해 거부가 가능한 여러가지 통제 방식이 필요해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의사 소통 수단은 모두 양자 간의 소통을 위한 것이다.
메신저의 등장은 새로운 방향으로의 변화다. 당사자 간 쌍방향이 아닌, 제 3 기계에 같이 접속되어 있는 상황은 그 전까지 인류가 겪어보지 못한 소통 방식이다.
가상의 같은 공간에 있지만, 모두가 혼자다. 말을 걸고 싶은 사람에게만 말을 걸고, 1년 내내 말 한번도 안 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특히 (조별 발표 준비라든가 하는) 단기간의 특수 목적을 위해  등록한 사람들은 그 이후로 거의 말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대화하지 않는 사람들을 지우지도 않는다. 심경에 큰 변화가 생겨 하루에 싹 정리하지 않는 한 굳이 대화 가능성을 따져가며 지우지 않는다. 그럼 그 사람들과 나는 어떤 관계인가. 분명 메신저에 접속해 있는 사람들을 훑어보면서 서로를 의식할테지만 메신저로는 인사도 하지 않는 사이. 휴대폰에 그런 사람들은 더 많지만, 휴대폰은 정보만 저장되어 있을 뿐이다. 메신저의 보급으로 새롭게 등장한 이 관계는 다른 건 다 사라지고 '존재 여부 확인'만 남았다고 할 수 있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상대방의 메신저에의 존재 여부를 알게 되지만, 그 이상의 정보는 원하지도 않는다. 나중에 정말 0.1%라도 대화할 가능성을 위해 잠시라도 알고 지냈던 사이는 지우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관계의 정도에 비해 과도한 정보노출이다.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사람에 대한 정보는 피곤하게 한다.
서로가 접속해 있지만 서로를 무시하고 있음을 아는 것은 그리 좋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메신저에 오래 접속해 있으면, 더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메신저는 노출성이 높으면서, 통제력도 아주 높은 매체다. 휴대전화와 마찬가지로 노출성에 따른 피로감을 통제성이 극복해준다. 휴대전화의 노출성이 연결가능성이라면, 메신저의 노출성은 같은 공간에의 접속 여부, 즉 존재 여부다.

싸이월드로 대표되는 미니홈피도 노출성이 굉장히 높다. 솔직히 연락하고 싶으면 너무나 쉽게 연락할 수 있지만, 모두의 미니홈피를 들릴 수는 없기에 일부의 사람과만 소통하게 되고, 그 결과 일촌임에도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소통하지 않는다. 메신저처럼 '계륵관계'가 부지기수인 것이다.

내 미니홈피를 방문해서 쉽게 연락을 주고 받을 수 있지만 그러지 않는다.
메신저에서 쉽게 말을 걸 수 있지만 말을 걸지 않는다.

접근 용이함이 오히려 어색함과 어정쩡한 단절을 만든다.

쌍방향 통신에서 각자가 독립적으로 자기방에서 제 3 매체 기기에 접속하는 방식으로의 전환.
그로 인해 발생하는 '계륵관계'들은 인터넷을 하면 할 수록 점점 더 외로워지고 우울해지는 현대인들의 상태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