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오답노트 - 머리말
nanael
2011. 10. 6. 01:18
고등학교 때 온 에너지를 쏟아 공부를 할 때도 오답노트는 거의 쓰지 않았다.
수학은 오답노트가 도움이 많이 된다고 해서 만든 적이 있지만 10페이지를 넘거지 않고 끝이 났다. 귀찮았다.
만약 귀찮음을 극복하고 오답노트에 적힌 내용을 여러번 반복해서 본다면 한 번 틀린 문제를 또 틀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당시 나는 오답노트 대신 그게 필요없을 정도로 반복해서 문제를 많이 풀었다. 오답노트를 썼다면 더 효율적인 공부가 되었을 지도 모르지만 어찌됐든 결과적으로 오답노트의 필요성을 느끼지는 않았다.
오답노트가 진짜 필요한 것은 수학문제보다 삶에서의 선택이다. 기록. 그 많은 인문학 고전들이 삶의 오답노트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중대한 선택이라면 오답노트를 쓴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과거로 돌아갈 순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중에 비슷한 상황에 놓일 다른 사람에게 참고사항이 될 수 있다. 설사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글로 나의 (큰) 실수나 과오들을 정리하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때로는 가벼워진다. 마음 속에 담아 두었던 후회를 글로 배설하는 느낌이다.
표류하고 있다. 공부는 손에 잡히지 않고 잘못된 길을 들어섰다는 생각에 갈피를 잡지 못하는 사실상 패닉상태다. 절망과 절벽을 오가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시기다. 예전의 우울은 허세였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금의 우을이 크다. 아, 이게 우울증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글로 배설하는 순간에는 변기에 앉아 있을 때처럼 차분해지면서 잠시 걱정을 잊을 수 있다.
바보 같았던 자신을 되돌아보며 지금의 늪에서 조금씩 벗어나보려 한다. 못 벗어날 수도 있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 괴로움을 덜기 위해 써야겠다.
잘못된 선택, 판단 착오, 그리고 그것이 가져온 결과들을 하나씩 남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