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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누적분이 자신이다"

nanael 2010. 9. 22. 04:58

"선택의 누적분이 자신이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작년 인물과 사상 월간호의 표지 제목 중 하나였다. 김어준이 인터뷰 중 한 말이다.

처음에는 선택의 누적분은 '자산'이라고 오독 하였다. 그래서 그저 그런 내용의 얘기겠구나 싶었지만 제대로 읽고 나서는 생각이 멈출 정도의 충격을 느꼈다.


 내가 한 선택이 곧 내 자신이다

김어준의 이 한마디는 반박할 수 없는 명제다. 갈림길에서의 수많은 선택, 사소한 선택부터 지류를 바꾼 커다란 선택까지, 그 무수한 선택들이 곧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아니 그 자체가 곧 나다. 그 때 다른 선택을 했었더라면 하는 후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한 순간 순간은 불가항력적이고 실수에 의한 선택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 모든 선택들이 쌓여서 만들어진 나는 나를 가장 잘 반영한 모습이다. 주사위를 던져서 한 눈이 나올 확률이 1/6로 점점 가까워지듯 수많은 선택은 나를 나의 모습으로 만들어간다.

그 선택이 꼭 중요한 선택일 필요는 없다. 사실 의지(라고 믿어지는 것)에 따라 행해지는 모든 것이 선택이지 않은가. 하루하루 일과 운용 자체가 선택에 의해 이루어진다. 큰 선택이 미치는 영향이 지대할지라도, 그 선택에 영향을 미친 무수한 사소한 선택들은 나에 의해 결정되었고, 큰 갈림길 또한 선택의 누적분, 누적분에 의한 선택이다.


 습관이 된 선택, 습관적인 선택

수많은 선택들 중 깊은 고민에 의한 선택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선택은 관성과 습관에 따라 이전에 하던대로 행해진다. 같은 선택을 반복하다보면 습관이 된다. 그러므로 습관 또한 (기억할 수 없을지라도) 우리가 선택하였다.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나를 무한 반복으로 밀어넣는 습관은 그야말로 나를 지배한다. 아니 습관이 곧 나일지도 모른다. 끊임없는 반복은 죽음이라고도 하지만 그 반복이 없다면 역시 시체에 불과하다. 습관의 누적은 곧, 습관이 된 선택의 누적이자 습관적인 선택의 누적이다. 매 순간 좋지 않은 습관으로부터 빠져나올 기회가 주어짐에도 우리는 그것을 선택하질 못한다. 쌓여버린 선택의 더미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모양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내가 선택한 현실

타고난 것에 대해 저주를 퍼부어도 된다. 타고난 유전자, 타고난 집안 환경, 이런 걸 원망해도 된다. 그런데 그것은 내가 아니다. 그것은 나의 환경일 뿐이고, '나'라는 것은 오로지 나의 선택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 후회스런 상태를 벗어날 기회는 나에게 무수히 주어졌다. 때로는 기막힌 불운이 적락운처럼 몰려오기도 햇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많았다. 그 모든 것을 생각하더라도 남들보다 불행한 조건일 수 있지만, 나는 나의 선택에 대해서만 따져 물으면 된다. 그것만으로도 벅차다.

누구를 탓하는 것도 후회를 하는 것도 당신의 선택이지만,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결과임을 인정하고 그것이 곧 나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마음은 오히려 편해진다.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자기 자신을 쌓아간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