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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꼬빨기'는 왜 성공하는가.

nanael 2008. 3. 8. 16:31
'똥꼬를 빤다'는 표현이 있다. 자기보다 사회적, 지위적 계급이 높은 사람에게 아부 떨고, 잘 보이기 위해 기대 된 것 이상으로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윗사람이 하는 말이면 똥꼬 빨으라는 말까지 따를 정도로 딸랑딸랑 거리는 사람에게 쓴다.

왜 하필 '똥꼬를 빤다'라고 표현했는지 그 유래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과거 역사 속에서 실제로 항문을 빨아본, 혹은 빨려본 경험에서 나온 말로 추측된다. 실제로 기분이 좋을까? 아마 그렇지 않을까. 그리고 항문을 빠는 사람에게는 빨아주는 사람의 체변이 코와 입 주변에 묻을 수 있으니, 그런 굴욕과 더러움을 감당하고서라도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해주는 행위를 하는 것이니, 적절한 은유이다.

어찌됐든 나이를 먹으면서, 그러니까 어른이 되면서, 이렇게 똥꼬 빠는 사람들을 보는 빈도가 높아지게 된다. 청소년기에는 주로 동급의 학우들과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윗사람을 대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대학교도 선후배 간의 관계가 있다지만, 실질적인 이권을 윗사람이 쥐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똥꼬를 빨아야 할 일이 별로 없다. 그런데 군대를 가거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본격적인 계급사회로 진입하게 되는데, 이럴 때 윗사람을 대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고, 이 때 상관을 기분좋게 해주는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이들을 만나게 된다. 보통 사회 경험이 많고, 인간관계가 좋아서 사람을 많이 만나본 사람일 수록 능력이 좋은데, 어떤 이들을 볼 때는 정말 윗사람이 좋아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말을 잘한다. (보통 이런 사람들에게 '사회생활 잘한다'라고 한다.)
그런데 그렇다고 그 모든 행위를 전부 똥꼬를 빤다고 정의할 수는 없다. '똥꼬빨기'와 예의 사이의 차이를 애매하지만 설정해야 한다.

어디까지를 타인을 위한 예의이고, 어디부터가 똥꼬를 빠는 것인지를 정하기는 쉽지 않지만 간단하게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

예의는 그 목적이 호혜적 상호 협력에 있지만, '똥꼬빨기'는 자신의 결과적 이익에 있다.
예의는 윗사람, 아랫사람 모두에게 동등하게 적용되지만, '똥꼬빨기'는 윗사람에게만 적용된다.

예의(혹은 에티켓)라는 것은 사회적인 합의이다. 내가 당하면 기분 나쁜 것을 남에게도 하지 않음으로서, 간접적으로 자기 자신에게도 이득이 돌아오는 것이다. 집단적인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 서로가 협력을 택하기로 합의를 본 것과 같다. 예의를 행함에 있어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이득이 오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 자신도 누군가에게 받을 수 있다는 약속된 기대이득이 있다.
그러나 '똥꼬빨기'는 애초에 목적 자체가 상관에게 잘 보여, 동급의 다른 사람들에 비해 눈에 띄고, 실질적인 이권을 택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호혜적 상호 협력과는 다르다. 이는 오히려 대다수가 협력을 하기로 합의된 상태에서 혼자 배신을 택해서 이익을 취하는 것과 같다. 상관을 대할 때 상관을 기분좋게 하기 위해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것은 에너지 낭비이다. 그 에너지 낭비를 막기위해 사회의 구성원들간에 어느정도가 상관을 대하는 적절한 예의라는 사회적 합의가 자동적으로 생기게 된다. 그런데 '똥꼬빨기'를 택한 이는 홀로 이 합의를 깨고 이득을 취한 것이다.

예의가 바르고, 사람을 정말 좋아해서 기분 좋은 말을 해주는 사람들은 그 목적이 '확실한 이득'에 있지 않기 때문에, 상관뿐만 아니라 부하들에게도 잘 대해준다. 그러나 '똥꼬빨기'를 택한 사람들은 자신에게 실질적인 이득을 주지 않는 이들은 어떻게 대하든 상관없다. 사람이 좋아서 기분좋은 말을 해주는 사람들과 똥꼬를 빠는 사람들을 구분하는 방법은 그들이 부하들에게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면 된다.

어설프게나마 예의 바르고 사람을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들 속에서, 똥꼬를 빠는 사람들을 구분해 내긴 했는데, 다음 질문은 '어떻게 이 전략이 통할 수 있는가'이다. 실제로 '똥꼬빨기' 전략은 계급사회 속에 만연해 있고, '배신'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너무나 다수가 이 전략을 쓴다.  

그 말은 실제로 이 전략이 효과가 있고, 높은 계급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필수 조건으로 따르는 능력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조직의 입장에서는 정말 조직에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두고 자신의 이득을 취하기 위해 똥꼬를 빠는 일들만 하는 사람들이 높은 자리로 올라가는 것은 조직 전체로 봤을 때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똥꼬빨기'가 잘 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자신의 부하가 똥꼬 빠는 것인지 아닌지를 구분 못하는 경우(부하의 사탕놀림에 넘어간 경우)이다. 기분좋은 말을 해주고,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일들만 골라하는 부하를 보며, 정말로 그가 자신을 충실히 따른다고 속은 것이다. 그리고 기분좋은 말을 들었을 때 말 그대로 기분이 좋아지도록 우리는 구조화되어있다. 설사 그것이 거짓말이라고 하더라도 일단 자동적인 반응은 그 말의 1차적인 의미에 달려있다. '말이라도 좋게 해주지'라는 말을 자주 쓰듯이, 말의 1차적인 의미에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리고 기분 좋은 말을 해주는 사람이 옆에 있는 것이 나쁠 이유는 전혀 없다. 설사 그것이 자신의 이득을 취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안다고 하더라도.

둘째는 상관 자신도 손해를 볼 것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조직을 자신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개인의 이익을 비워내고 그 자리를 전체를 위함이라는 공허함으로 메우는 것은 파시즘과 같은 구조이기 때문에 피해야 한다. 상관도 자신의 이익에 가장 맞게 행동할 것이고, 똥꼬를 빠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손해를 주는 사람들은 아니다. 오히려 (비록 전체 조직에게는 피해가 될지라도) 상관에게 이득이 되는 일들을 행한다. 그렇기 때문에 조직전체가 무너져서 결국 자신에게 피해가 오기 직전 까지는 조직에 어떤 이득을 주는 사람인지는 상관없이 똥꼬를 빨아주는 사람을 옆에 두는 것이 자신에게도 좋다. 그 두사람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win-win 전략이고, 자신의 승진을 위해 똥꼬를 빠는 부하와 같이, 자신의 이득을 위해 그 부하를 일시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결국 '똥꼬빨기'의 피해는 조직 전체의 효율성 저하로 인해 나머지 구성원들에게 돌아간다.

(이 글은 지독하게 윗분 똥꼬만 빨고 부하들은 가축 부려먹듯 막대하는 상관 때문에 고생하는 친구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썼다.)


추가: 똥꼬빨기가 만연한 집단에서는 똥꼬빨기가 충성도의 척도로 이용될 수 있다. 당연히 해야 할 아첨을 하지 않으면 '넌 나에게 무슨 불만이 있거나 나에게 충성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판단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