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생태계에서의 생존 전략
한국에서 야생동물을 찾기란 쉽지 않다. 밀렵꾼에, 등산객 보호에, 산지 개발에 야생 동물이 설 자리가 없다. 사실 사람이 가는 곳에 멧돼지나 곰 등 사람을 위협하는 동물이 있다면, 관리 소홀로 관청이 욕을 먹을테니 어찌할 수 없다. 사람의 발길이 닿는 곳이 넓어질 수록 야생 동물이 설 자리는 줄어든다. 농촌, 산촌으로 가면 그나마 몸집이 작은 야생 동물이라도 볼 수 있고, 소나 돼지 등의 우리에 갇힌 가축이라도 볼 수 있다. 도시 지역은 인간이 사는 곳 중에서도 가장 동물이 살기 어려운 생태이다.
그러나 이런 열악한 조건에서도 나름의 생존 전략으로 도시 생태계에서 살아 남은 이들이 있다. 그들의 생존 전략은 저마다 특징이 있다. 그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비둘기
도시 생태계에서 가장 잘 적응한 조류이다. 그들의 장점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 1m 가까이 근접해도 살짝 엉덩이만 뗐다가 다시 내려와 먹이를 찾는다.항상 모여다니며 먹이를 찾고, 아무거나 가리지 않는 잡식이다. 어릴 때는 신기한 비둘기를 좋아할지 모르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들은 비둘기를 귀찮아하고 싫어한다. 특히 박테리아를 버터발린 듯 바르고 다닌다는 사실이 상식이 되면서 되도록이면 피하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인간으로 치면 낯짝이 두껍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자존심이나 품위 따위는 일찍이 포기했기에 도시 생태계의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다.
2. 개
개의 전략은 확실하다. 귀여움, 충성심, 편안함인데, 주인을 알아보고, 주인을 반기고, 주인을 따르고, 주인을 지켜주면서 사랑을 받는다. 그럼으로써 가장 안정된 삶을 보장받았다. 개는 주인이 애완동물로부터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있다. 보편적인 애완동물로서 도시 생태계 속을 살아갈 수 있는 건 그와 같은 능력 때문이다. 사람으로 치면 윗사람이 뭘 원하는지를 알고 다방면으로 윗사람 기분을 좋게 해줌으로써 살아가는 이들이다.
3. 고양이
고양이의 전략은 조금 독특하다. 이들은 크게 두가지 생존방식을 택했다. 하나는 집에서 애완용으로 길러지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길거리로 나가는 것이다. 고양이는 개 다음으로 인기가 많은 애완동물이지만 개와는 정반대의 전략을 구사한다. 주인을 반기지도 않고, 졸졸 따르지도 않는다. 그러면서 먹이는 잘 받아먹는다. 그들은 자기 인생을 즐기며 안락한 생활을 하는데 어찌보면 주인을 이용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개와는 다른 이 매력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길거리에 나 앉은 고양이는 쥐를 제외하면 유일하게 집 밖 도시 생태계에서 살아가는 포유류이다. 잠은 어디서 자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철저한 보안과, 도시 생태계에만 있는 쓰레기통에서 먹이를 찾아가며 삶을 영유한다. 안락한 집을 버리고 스트리트 라이프를 택한 것인데, 흔히 버려졌다고 여겨지는 노숙 개와는 달리 '도둑 고양이'라는 별칭까지 얻으며 자신만의 카테고리를 만든 것이 이 길거리 고양이이다. 지금처럼 번창할 수 있었던 건 길바닥에서 살아남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집고양이는 사람으로 치면 자기 주장이나 고집이 세고, 윗사람에게는 굽신굽신 하지 못해 높은 자리에는 오르지 못하지만 나름의 매력이 있는 사람 정도일 것이다. 길거리 고양이는 안락한 집을 벗어났 듯 회사나 집단을 나와 경제활동을 하지만 완전히 그 집단과 단절하고 살 수는 없는 프리랜서 정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4. 까치
까치는 한국에서 길조로 통한다. 1964년 한국일보가 시행한 나라새 뽑기 공개응모에서 압도적으로 뽑히기도 하였다.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속설이 까치의 이미지를 제고하였다. 외부손님이 잘 오지 않는 시골이나 산간 지역에서는 까치가 낯선 얼굴을 봤을 때 울어 댈 수 있지만 비거주지 행인이 많은 도시에서는 그냥 울어댄다. 다만 옛날에 이미지를 좋게 만들어놔 지금까지도 수렵 조류에서 제외된 채로 보호를 받으며 도시 생태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사람으로 치면 젋었을 때의 명성으로 살아가는, 예를 들어 대학교 이름만으로 평생을 우려먹고 사는 사람들이 대표적이다.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하는 개체가 나올만큼 유전자는 다양하다. 위의 네 동물처럼 회색의 생태계에서도 저마다의 전략으로 살아간다. 흥미로운 건 도시에서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간의 전략도 거칠게나마 위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