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단일민족이 아니라는 우스운 반박

nanael 2009. 10. 31. 17:01

민족주의 좀 그만하자는 주장 중 하나가 우리나라는 단일민족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주장에 붙여 크게 두가지 근거를 대는데,

첫번째가 수많은 외세 침입으로 예전부터 단일민족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고,
두번째가 결혼 이주자와 이주 노동자들의 숫자가 상당히 늘어났기 때문에 이제 단일민족주의는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타당한 주장이지만 이렇게밖에 민족주의를 반박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우습기도 하다.

위 주장대로라면, 만약 위의 두 조건이 성립이 되지 않아 단일민족이었다면 민족주의는 유효하다는 것이 된다.
민족주의 자체가 가지는 근거의 빈약성, 평화에 하나도 도움 될 것이 없는 배타성, 개인이 함몰되는 폭력성 등을 바탕으로 주장해서는 씨알도 안 먹히기 때문에 위와 같은 근거를 내세우는 것이 아닐까.  

물론 위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원래는 민족주의자였는데, 역사를 공부하거나 혹은 사회 조건의 변화를 관찰하여 단일민족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민족주의를 포기한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 원래부터 민족주의에 회의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 근거를 찾게 된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왜냐하면 원래부터 단일민족주의에 근거한 민족주의자였다면, 단일민족혈통을 깨뜨리는 이주 외국인들에 대해 배타적인 극우 성향을 드러냈을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혹은 독특한 한국의 근대사로 인해, (한시적으로) 민족주의자가 평화와 공존의 편에 서게 되고, 이 애매한 상황 때문에 자기자신의 논리의 일관성마저도 무너진 것일 수도 있다. (보통은 민족주의자가 배타적 성격을 함유해야 되지만, 그 반대가 되버렸다는 말이다.)

어찌됐든 한국의 강한 민족주의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상식적인 인권과 평화의 가치를 내세우기 보다는, 그 민족주의를 떠받치고 있는 단일민족 담론을 무너뜨리는 것이 더 빠른 길이다. 그래서 위와 같은 우스운 주장이 나오게 된 것이다.

....


요즘 케이블 예능 프로그램 재방송을 즐겨 보면서 걱정되는 것이 있다면,

첫째가 멍하게 보고 있는 내 자신이고,
둘째가 갈수록 강해져만 가는 강호동의 '대한민국' 타령이다.

무릎팍 도사에서 1박 2일로 이어지는 민족주의 코드는 정말 촌스러움의 극치다. 아마 강호동과 PD들은 국민들에게 자긍심을 줌과 동시에 시청률까지 잡는 1석 2조를 뿌듯해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무릎팍의 민족의 영웅 성공담보다는 차라리 라디오스타의 막장 독설이 국민 정신 건강에 끼치는 피해가 덜 할지도 모르겠다.
무한도전이 PD와 작가의 역량으로 민족주의 코드를 (더 넣을 수 있음에도) 최소화하면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것과 대조된다.  
강호동은 프로그램에서 민족이라는 말대신 '국민'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국민'이라는 말은 '민족'이라는 말보다 덜 촌스럽지만, 맥락상 거기가 거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