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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홈페이지와 주거 공간

nanael 2009. 5. 20. 13:10

웹 속의 가상이긴 하지만, 개인 홈피 속에 접속해 있는 것은 내 주거 공간에 앉아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홈페이지도 서버 속에 실제의 물리적인 공간을 차지하고 있으니, 어찌보면 접속 할 수 있는 자신만의 주거 공간이 실제로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일반 주거 양식이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듯이, 웹 상의 주거 공간도 형태가 다양하다. 조금 무리가 있더라도 실제의 주거 공간과 웹 상의 주거 공간의 형태들을 유비시켜 볼 수 있다.

싸이월드는 아파트 촌
싸이월드는 아파트 촌이다. 똑같은 평수에 수많은 세대가 거주한다. 나름 돈을 들여 리모델링도 하고, 방을 꾸미지만, 어찌됐든 수많은 복제의 아파트다. 다만 실제의 아파트와는 정반대의 성격이 있는데, 아파트가 앞집 사람과도 서먹한 사이라면, 공간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싸이는 타인과의 유대를 위한 공간이라는 것이다. 사방이 유리와 벽으로 막힌 아파트지만, 친한 사람들의 호수를 마음대로 공간 이동할 수 있는 곳이 싸이월드다. 다만 아파트처럼 관리사무소가 있고, 관리비 대신 광고에 노출되고, 입주자가 늘면서 건설사와 관리사는 이득을 본다. 대신 사용자는 간단하게 주거 공간을 만들 수 있다.

설치형 블로그는 개인 주택
설치형 블로그는 개인 주택(단독 주택)과 비슷하다. 스킨(집모양)도 내 마음대로 고를 수 있고, 방 구조도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 웹 호스팅을 산 경우라면 땅을 실제로 소유(실은 단기간 임대)하고 있는 것이고, 그 위에 블로그를 깔면 주택을 하나 건설하는 것이다. 이 중 다른 사람이 만든 스킨을 설치해 쓰는 사람은 다른 건설업자에게 주택 공사를 맡긴 것이고, 직접 스킨을 만들어 쓰는 사람은 집까지 직접 짓는 사람들이다. 현실공간에서도 집을 직접 짓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도 직접 집을 지어보라고 권유하는데, 그 이유는 집에 대한 애착이 남달라질 수밖에 없고, 자신이 직접 지은 집에 살면 상상해보건데 독립감과 묘한 행복감이 들 것 같다. 아마 블로그의 스킨을 직접 만들어 쓰는 사람도 비슷한 느낌일 것이다. 그런데 집짓기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현실에서의 집 짓는 것보다야 백배 천배 쉽지만, 블로그 스킨을 직접 만드는 것도 일정정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나는 그 기술을 잘 모르고, 배운다 하더라도 디자인 하는 센스과 디자인 한 것을 기술로 만들어내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허접한 집이 완성될 것이다. 그래서 그냥 다른 사람에게 집짓기를 맡긴다.  

가입형 블로그는 연립주택
연립주택은 독립주택과 아파트의 중간적 성격을 띤다. 어떤 동네에 가보면, 주택들이 대부분 같은 구조로 되어 있다. 외관상은 똑같아서 주소를 모르면 어느 집인지 찾을 수 없다. 가입형 블로그는 그런 동네의 연립주택 쯤 되지 않을까. 네이버 블로그가 대표적인데, 싸이월드보다는 훨씬 주택 이용의 자율성이 높지만, 설치형 보다는 한계가 있다. 역시 미리 디자인이 되어 있는 집에 들어가서 살면 되기에 훨씬 편하다. 다만 티스토리 같은 경우는 가입형 블로그와 설치형 블로그의 중간 쯤 되겠다. 티스토리와 설치형의 차이는 땅까지 임대하냐 집만 짓냐 하는 차이일 것이다.

마당과 정원까지 갖춘 부러운 홈페이지
설치형 블로그가 단독 주택이라면 마당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웹 서버의 빈 공간이 마당일까. 호스팅한 서버의 빈 공간은 그냥 빈 공간, '터'일 뿐이다. 마당이라고 딱히 정의할만한 것이 없기는 한데, 친구의 홈페이지 중에 이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만한 곳이 있다. 잡담을 쓰는 공간, 진지한 글을 쓰는 공간, 사진을 올리는 공간 등을 분리하면서 통합시켜 놓았다. 나도 지나치게 잡스런 얘기로 블로그를 채우기 싫어, 스스로 판단하여 너무 잡스럽다 싶은 말은 싸이 다이어리에 쓴다. 그런데 홈페이지 내에 통합시켜 버리면, 그런 잡스런 말을 하는 나의 모습도 그대로 간직할 수 있다. 그 친구의 홈페이지에도 딱히 마당이랄 것은 없지만 생각에 따라 어떤 것은 정원이 될 수도 있고, 어떤 것은 뒤뜰이 될 수 있다. 공간에 경계를 지어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방식이다. 물론 어느 블로그나 카테고리가 있지만, 내가 원하던 방식이 딱 저 형태였다. 부럽긴 하지만, 나는 저렇게 만들 기술이 없고, 컴퓨터 언어 문맹인 내가 그 기술을 배우자면 투자 해야할 시간이 너무 많을 것 같다. 돌멩이 굴러다니는 빈 터가 아닌 정원을 만들고 싶은 소망만 간직할 수밖에.


이 글은 블로그를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해준 아래 기사를 참고해 썼다.
인터넷에 '나'만의 집을 짓는다 - 안인용 기자, 한겨레 21 62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