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이 공간
페이스북 같은 경우는 온전히 지인들을 위한 공간이고, 그래서 솔직히 솔직하지 못한 말들을 많이 적는다. 힘들어도 너무 징징대면 사람들이 별로 안 좋아하기에 감추고 별 거 아닌 일도 재밌는 양 꾸며대고 난 오프라인에서 볼 수 없는 이런 면도 있다고 과시한다.
그런데 사실 어떤 게 진짜 모습이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우리는 사람들이랑 같이 있을 때가 진짜 모습일까. 아니면 혼자 있을 때가 진짜 모습일까. 알 수 있나? 혼자일 때라고 답하겠지만, 어차피 혼자 살 수 없는 사회에서 진짜 모습이란 게 있을까. 속마음이 진짜일까. 현실의 현실이라고 불리는 진심이 진짜일까. 그러나 진심은 아무도 모른다. 진심이란 건 언제나 행동으로 드러날 뿐. 자신의 진심을 말하라 그러면 그 질문을 듣는 순간부터 사람들은 진심을 만들어낸다. 애초에 진심이란 것은 언어가 아니기에.
그러니 페이스북에서 꾸며진 모습이 내 모습이 아니라고도 할 수 없다. 자기 자신은 평생 알지 못하며 죽는다.
잠시 흐름이 샜는데 트위터는 페이스북에 비하면 훨씬 솔직하다. 오프라인에서 아는 사람의 비율도 적어서다. 물론 너무 징징대면 (심지어 숫자로 제시되어 있는) 팔로워가 줄어드니 자제하게 되지만 페이스북에 공개적으로 할 수 없는 얘기도 곧잘 올린다. 트위터 초기에 주변에 아는 사람들에게 알려 몇명은 오프 사이가 온라인으로 이어졌지만 몇명 안 되는 그 사람들도 좀 부담스럽긴 하다. 더 솔직한 얘기를 못하기 때문이다.
여기는 어떨까. 확인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몇 명의 지인들이 rss로 글을 읽고 있다. 그래서 여기가 제일 솔직하다고는 할 수 있지만 완전히 오프라인과 분리된 공간은 아니다. 다른 블로거들과 교류는 거의 안 하기에 혼자만의 일기장 수준이라 개인적인 얘기든 어떤 얘기든 비교적 다른 매체에 비해 자유롭게 얘기한다.
여기도 마찬가지로 나를 아는 사람이 많다면 아무래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다행히 지금 생활권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니 어떤 얘기를 적어도 상관없다.
그런데 가끔, 정말 가끔 혹시나 하는 것은 옛날 여자친구가 들어오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아마 성격상 두번 다시 들어오지 않았겠지만 혹시 또 모르니. 지금은 결혼할 나이를 훌쩍 넘겼는데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아마 결혼했을 것이기에 연락해보기도 그렇다. 혹시 보고 있나? 아주 가끔은 들어와 볼까? 아니 주소를 기억이나 할까. 4년 전부터 죽어버린 그사람의 블로그는 1년에 한 번 정도 들어가보긴 한 것 같다. 그정도는 할까. 그래도 여긴 들어올 때마다 새글이 있을테니. 그래서 그 사람이 의식되어 감정에 대한 얘기를 할 때 꺼려지기도 한다. 물론 봐도 무슨 상관이냐지만 자의식이 과잉된 나같은 사람에게는 크게 작용할 때도 있다.
최근에 헤어진 여자친구는 어떨까. 한번도 블로그 얘길 안 했으니 들어올 리 없지만 찾을 수 없는 건 아니다. 트위터 얘기는 맨날 했으니 거기에 걸린 링크로 찾아오려면 올 수 있다. 근데 그 친구가 트위터를 하는 것도 아니고 아마 못들어오겠지. 그래도 자의식 과잉인 나는 전혀 신경이 안 쓰일수가 없다. 좋은 감정 나쁜 감정 어느 것도 솔직하게 풀어내지 못하는 게 있다. 보고 있니? 그렇다.
그런데 웃긴 건 지나간 사람들이 봐주길 바람도 있다는 것이다. 신경이 쓰인다는 것은 어쨌든 신경을 쓴다는 말이니까.
그러니까 나는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는 공간에 새로운 계정을 만들어 쓴다면 나를 아는 지인들은 아무도 못 들어오겠지만 들어와서 볼 일말의 가능성이 없다면 감정을 얘기하는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또 들어올 가능성이 있는 공간은 마음대로 말을 하지 못하니 부분적인 의미밖에 없다. 그러니 나는 내 감정표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참 끈덕져 떼어내지 못하는 그것들로부터.